팬데믹은 국가를 가리지 않는다, 외계인 침공처럼
문명의 위기 앞에서 각자도생은 없다
“당신은 태양에도 특허를 낼건가요?”
조너스 소크(1914~1995)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모습은 소아마비 바이러스의 후유증을 잘 보여준다. 조너스 소크는 백신을 개발해 많은 어린이의 희생을 막아냈다. 그리고 이 소아마비 바이러스 백신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상용 백신이다. 그런데 미국 젊은이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그가 자주 꼽히는 것은 이런 과학적 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는 소아마비 공포가 극에 달해 있었고, 개발만 성공하면 엄청난 부가 보장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크는 완전 무료로 기술을 공개하였다. 저렴한 백신 덕에 집단면역은 빠르게 증가하였고 소아마비 유행이 잠재워졌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 이런 결정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한 라디오 쇼에서 사회자가 왜 특허를 포기했는지 질문하자, 소크는 태양에도 특허를 낼 것인지 되물었다. 인류의 집단 지식인 과학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소신이 담겨 있는 발언이었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인류 공동 위기가 찾아오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170개 국가들이 백신 공동 개발을 위한 국제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개발의 선두에 있던 미국과 중국만 여기서 빠졌다. 인류 최초의 백신이 개발되고 70년이 흘러 과학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과학 ‘정신’은 거꾸로 흘러간 것이다.
인간 유전자 크기의 십만분의 일도 되지 않는 원시적인 유전자는 놀라운 속도로 문명의 일상을 잠식해 나갔다. 상황이 급변하자 세계 각국은 국경을 먼저 폐쇄하였다. 그리고 세계의 공장이던 중국의 물류 공급이 멈추자 각국의 공산품의 재고는 빠르게 소진되었다. 특히 의료 물자의 부족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초기 방역에 치명적이었다. 집단 면역이 전무한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는 들불처럼 퍼져 나갔고 방역 일선에서는 장비 부족을 호소했지만, 각국은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팬데믹 초기에는 가장 기본적인 방역 물품인 마스크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만약 각국의 초기 방역이 충분히 강력했다면, 비록 팬데믹이 시작은 되었어도 천일 동안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류 공동위기 대응은 시작부터 각자도생이었다.
백신은 팬데믹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백신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백신이 개발된 것과 예방접종을 수행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대량 접종을 위해서는 생산, 유통, 가격, 품질, 안전성 등이 확보가 되어야 하고, 백신에 대한 거부감도 큰 장벽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는 고사하고 예방접종이 빠르게 진행된 국가조차 집단 면역이 70% 수준으로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한 백신 확보가 각국 정치의 중심 이슈가 되면서, 세계적 협력은 고사하고 백신 확보를 위해 경쟁하는 국가 이기주의만 심화되었다.
수건돌리기 같은 바이러스 복제와 감염
결과적으로 팬데믹을 끝낸 것은 제4차 유행의 오미크론 변이다. 바이러스의 변이가 반복되면 전파속도는 빨라지고 치명률이 낮아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는 우연이 아닌 자연 법칙으로, 바이러스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바이러스의 목적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복제를 통한 자기 유전자 보존이다. 스스로 유전자를 복제할 능력이 없는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로 들어가 필요한 재료를 훔쳐서 자기 유전자를 복제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내면 유전자는 보존되지 않는다. 바이러스에 시달리는 숙주 세포는 어느 순간 죽기 때문이다. 그럼 복제된 바이러스 유전자도 같이 소멸된다. 감염이 시작된 순간부터 숙주 세포는 빨리 탈출해야 하는 ‘불타는 배’가 되는 것이다. 복제된 바이러스 유전자는 껍데기에 포장되어 입자 형태로 빠르게 배출된다. 이 입자는 탈출 구명정처럼 험난한 외부에서는 짧은 시간만 버틸 수 있다. 구명정이 망가지기 전에 다시 새로운 세포를 감염시켜야 또 다시 복제가 가능하다. 바이러스가 유전자를 보존하는 과정은 복제와 감염의 순환을 반복하는 수건돌리기와 유사하다.
멈추면 소멸되는 죽음의 게임을 하는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감염 세포를 오래 살려두는 것이 유전자 보존에 유리하다. 실제로 정교한 복제 조절기전을 가진 복잡한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일수록 숙주 세포를 오래 살려두고 입자를 천천히 배출한다. 자기가 타고 있는 배에 불을 지르지는 않는 것이다. 반면 단순한 바이러스는 감염 후 가능한 빨리 왕창 증식한 뒤 세포를 탈출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바이러스다. 이 경우 새로운 숙주를 감염시키는 입자의 능력이 유전자 보존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입자가 빨리 숙주세포 속으로 들어가야 수건돌리기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자의 관점에서는 사람의 체내에 있을 때와 체외에 있을 때의 상황이 다르다. 인체 내부에서는 숙주세포의 주변에 다른 세포와 접촉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인체 외부에서는 아예 새로운 사람을 감염시켜야 수건돌리기를 계속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인체의 내부에서 면역이 작동하기 시작해 입자의 감염을 방해시키고 감염된 세포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외부 환경에 노출된 입자가 가능한 빨리 전파되도록 유전자 변이가 진행된다.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를 결정하는 건 뭘까
그런데 무생물인 바이러스 입자의 전파 속도가 빨라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무생물이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다.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을 이용하도록 변이가 진행된다는 의미다. 코로나는 호흡하는 공기를 통해 감염이 일어나는 바이러스다. 이 경우 입자의 전파는 비말을 내뿜는 감염자 주변의 공기 흐름이나 습도, 거리두기, 마스크 같은 물리적 환경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그런데 방역 강도는 변하지 않았는데도 오미크론의 전파는 급속도로 일어났다. 이전 변이보다 빠르게, 백신이나 감염으로 형성된 집단 면역도 뚫었다. 이처럼 전파 효율을 결정하는 물리적 환경 변화가 없는데 무생물 입자의 전파 속도가 빨라진 것은 감염 ‘확률’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확률이 올라가면 세포를 감염시키는데 필요한 입자의 수가 줄어들고, 이것이 바이러스 전파가 빨라지는 현상으로 관찰이 되는 것이다.
이는 바이러스의 관점이고 숙주인 사람의 관점에서는 집단 면역이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를 결정한다. 먼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면역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 사람들은 바이러스 전파의 방화벽 역할을 한다. 방화벽이 불길의 전파를 늦추는 것처럼 면역을 가진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빠르게 전파되는 것을 막는 장애물 역할을 한다. 전체 인구 중 면역을 가진 사람의 비율을 집단 면역이라 하는데 집단 면역이 높을수록 전파속도는 낮아지고 집단 면역이 낮을수록 전파속도는 빨라지는 것이다. 남아프리카 지역은 방역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본 의료 역시 열악하다. 이는 기존 면역에 대한 저항성과 높은 감염력을 가진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바이러스 유전자는 복제될 때마다 일정한 확률로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돌연변이 중에서 기존 면역을 회피하는 것이 나타나면 집단 면역 뚫고 빠르게 전파되어 새로운 우세종이 된다. 코로나 변이의 등장은 단순한 확률 문제다. 집단 면역의 증가 속도가 느릴수록, 바이러스 유전자 복제가 많이 일어날수록 집단 면역을 무력화하는 변이가 나타날 확률도 커진다. 유행이 일어나 감염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바이러스 유전자의 다양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선택 압력이 없는 상황에서 변이가 우세종이 되지는 않는다. 집단 면역이 증가해서 유행의 정점이 꺾이는 시점부터 변이에 대한 선택 압력이 작동한다. 그럼 다양한 바이러스 유전자 중 집단 면역에 저항하는 것만 속도 경쟁의 우위에 서게 된다.
인류가 공격받는데 국가만 수비하는 꼴
꼬리를 물고 일어난 변이의 유행 배경에는 바이러스 전파와 방역 범위의 불일치가 자리 잡고 있다. 다른 국가들이 아무리 방역과 백신 접종을 잘해도,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에서 감염자가 많아지면 변이가 출현해 세계로 퍼져 나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숙주는 인간이라는 단일 생물종이다. 원시적인 바이러스에게 인간이 설정한 국가나 국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를 막는 방역은 국가 단위로 작동한다. 바이러스의 공격은 ‘인류’가 범위인데, 수비는 ‘국가’의 범위였다. 이런 공격과 방어의 틈새로 변이가 반복해 출현한 것이다.
“올빼미들! 쪼그려 뛰기 10회, 마지막 구호는 생략합니다!” 논산 신병훈련소에서 울려 퍼지는 이 소리는 변이가 반복 유행했던 팬데믹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신병 수백명이 단체로 체조 동작을 하면서 “하나”, “둘”, “셋”… 구호를 크게 외친다. 그러다 마지막 숫자는 절대 외치면 안 된다. 마지막 구호를 누군가 외치면, 횟수를 두 배로 늘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렇게 20, 40, 80 횟수는 계속 늘어나고 체조는 끝없이 계속된다. 이게 뭐가 어렵나 싶지만 실제 해보면 마지막 구호를 외치는 사람은 꼭 나온다. 한 번 실수한 사람이 다음에는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또 실수를 한다.
이런 훈련의 근거는 공동체의식을 기르기 위한 것이라 한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는 한명의 실수로 부대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힘들어도 한마음이 되는 훈련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항상 그러하듯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실수는 확률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실수할 확률이 1%밖에 안 되어도 백명이 모이면 큰수의 법칙에 의해 실수를 하는 한 명은 나오게 되어 있다. 더구나 힘든 상황이 닥치면 언제 끝나는지 학수고대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지라 머리에는 마지막 횟수에 대한 생각만 가득하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 구호를 시원하게 외치는 실수를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실수로 체조를 반복하다 보면 서로에 대한 믿음은 고사하고 원망과 증오만 커지게 된다. 각국의 각자도생 방역으로 변이가 계속 출현한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변이 출현이 반복되자 국가들의 신뢰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가 이기주의는 공멸의 지름길
최근 기후 변화로 알래스카의 영구동토층이 녹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여기는 지난 수십 수백만년 동안 죽은 세균과 동식물의 사체가 차곡차곡 보관되어 있는 거대한 지구의 냉동실 같은 곳이다. 동토층이 녹는다는 것은 냉동고가 고장 나서 사체(유기물)의 부패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상황이다. 그 결과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90배에 육박하는 메탄가스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기 시작하고 있다. 메탄가스는 기온 상승의 뇌관이다. 온실효과를 높여 동토를 더 많이 녹이고 이는 더 많은 메탄가스를 분출하게 만드는 악성 연쇄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지구의 가장 큰 지질학적 사건이었던 페름기 대멸종을 일으킨 원인이 이 메탄효과였다. 그때와의 차이점이라면 지금은 약 20배 빠른 속도로 온도가 상승 중이라는 것이다.
현대 문명은 개인의 실수에 대해 연대 책임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얼마 전까지 남아 있던 ‘반역을 하면 삼족을 멸한다’는 왕정 시대의 유산인 연좌제 관련법은 폐지된 상황이다. 그런데 군대에서 여전히 연대책임에 대한 강조를 하는 이유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일 것이다. 전쟁은 문명사회에서 일어나는 가장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내부적 정치상황으로 곤경에 처한 군주에게 전쟁 위기는 행운으로 여기라는 말을 하였다. 외부의 적이 등장하면 집단 내부 갈등이 억제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본질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국가들이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지켜본 국가 이기주의는 현재 인류 문명이 도달한 한계이며,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 우리가 생각할 것은 국가 이기주의가 통하는 문제와 통하지 않는 문제의 구분이다.
전쟁과 팬데믹의 공통점은 대응주체가 국가라는 점이고, 차이점은 대응이 필요한 위기의 범위다. 문명 내부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나 경제 경쟁은 국가 이기주의가 통하는 문제다. 하지만 문명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인 팬데믹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국가 이기주의는 공멸의 지름길이다. 세계가 한 마음이 될 때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할 때라는 농담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외계인의 침공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문명의 외부에서 온 태고의 유전물질은 인간 문명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복제라는 이기적 유전자의 원리에 의해 모든 인간을 숙주로 평등하게 대접했다. 기후변화도 마찬가지로 지구 환경이라는 문명의 외계에서 인류에게 연대 책임을 묻고 있는 상황이다. 생태계에 떠 있는 문명이라는 배에 함께 타고 있는 공동 운명체는 우리의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주철현 | 울산의대 미생물학·의학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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