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오뒷세이아』 번역 이준석 “중간에 링 밖으로 걸어 나오진 않겠다, 케이오가 되더라도”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4. 1. 1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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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냄새지? 피 냄새 아닌가? 어느 날 갑자기 방 어디에선가 피 냄새가 확 끼쳐 왔다. 고개를 돌려서 방을 한 바퀴 둘러봤다. 어디에서도 피가 나오는 데는 없었다. 왜 피 냄새가? 이때 그는 자신이 전투 장면을 번역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전장에 들어가 있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헥토르가 죽고 그의 아내 안드로마케가 절규하는 장면을 번역할 때에는 안드로마케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기도 했다.

“어느 순간 작품 속 인물로 빙의하기도 했고, 작품 속 현장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한참 번역하고 나면 침도 질질 흘리기도 했지요. 정신을 차리면 이미 버스도 끊겨 있을 때가 있었고요.”

이준석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가 서양 고전 『일리아스』를 번역하겠다고 구체적으로 결심한 때는 스위스 바젤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거의 다 썼을 무렵이었다. 바젤 시내의 조그마한 집에서 아내와 아이 셋이 살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논문을 준비했던 그였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음 단계로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리아스』를 번역하자, 다음으로 『오뒷세이아』도⋯.’

대학 시절부터 서양 고전에 매료됐던 그는 이들 고전을 늘 완역하고 싶었다. 다만 번역을 하려고 덤빌 때마다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희랍어도 알아야 했고, 고전 공부도 쌓여야 했다. 계속 미뤘다. 마치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마지막에 먹으려고 남겨놓듯. 공부야말로 최고의 준비였다. 논문을 쓰는 동안, 그는 자주 구상했다. 어떤 텍스트 번역 원본을 뭘 할 것이냐, 어떤 방향으로 번역할 것인가.

논문을 완성하고 귀국한 얼마 뒤인 2016년 1월부터,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번역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라틴어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수업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번역에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산과 절벽은 계속 나타났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스위스 친구들이나 선생들에게 물어볼 수 있었지만, 다시 한국어로 옮기는 건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다.

“논쟁이 되는 구절뿐만 아니라 책에서 한 번만 나오는, 용례가 전혀 없는 구절도 있었습니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도 그 말뜻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도 있었죠. 모두 혼자 딛고 일어서야 했어요. 아마 호메로스를 번역한 모든 번역자들이 겪었던 과정이겠죠.”

작고한 천병희 선생의 번역판을 비롯해 각 언어권별 판본을 보면서 선배들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를 참고했다. 늘 번역을 생각했다. 밥 먹을 때도, 잠잘 때에도. 자다가도 일어나서 고치기도 했다. 며칠 동안 한 구절도 나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관련 주석이나 논문, 책들을 읽어보면서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버리면서 자갈밭을 걸어갔다.

『일리아스』의 1만5693행을 한 행씩 들여다보고 되뇌고 옮긴 지 2년 반 만에 마지막 행까지 마칠 수 있었다. 2018년 여름, 이 교수는 아무도 없는 어두운 연구실에서 눈물을 흘렸다. 아니 그것은 통곡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홀가분한 기쁨이 조금은 있을 줄 알았는데, 애태워 사랑하던 이의 마지막처럼 서럽기만 했습니다. 자신을 소진하며 빠져들던 그 황홀과 고통을 다시는 맛보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죠.”

이 교수는 2019년부터 『오뒷세이아』 번역에도 착수, 2년 반 만에 끝마칠 수 있었다. 서너 번의 교정 원고가 그와 출판사 사이를 왕복한 끝에 지난해 6월과 10월 『일리아스』(아카넷)와 『오뒷세이아』(″)를 차례로 번역 출간했다. 두 고전이 한국에서 희랍어 완역으로 출간된 것은 1982년 천병희 선생의 완역 이후 무려 40여년 만이었다.

젊은 서양고전학자 이준석 교수가 천병희 이후 40여년 만에 완역한 두 고전은 어떻게 다를까. 야심만만한 젊은 학자의 행로는 어디일까. 이 교수를 지난 5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에서 만났다.

―「옮긴이의 말」에서 고전 번역의 환희와 고통을 이야기했는데.

“사실은 즐거움이 더 많았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과 진짜로 아름다운 것은 좀 많이 다른데, 진정한 아름다움에 들어가 2년 반을 폭 담겨져 있다 나온 느낌이다. 황홀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제가 좋아서 달려든 것이다. 무슨 역사적 사명 가지고 한 것도 아니다. 친구와 가족들에게 좀 미안하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이 생각만 하고 있어서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했다. 아이들에겐 특히 미안하다. 아이들과 있는 동안에도 번역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잘 놀아주지 못했다. 되돌아보면 약간 미쳐 있었다.”

―천병희 선생에 이어서 40년만의 완역인데, 특징이나 차이는 무엇인가.

“천병희 선생의 판본을 대체해야 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제가 경험한 어떤 기쁨과 아름다움을 함께 나눠보고 싶었다. 이를 위해선 호메로스를 최대한 왜곡 없이 그대로 옮겨야 된다고 생각했다. 저는 맛있게 지은 밥을 먹었는데, 만약 다른 사람의 식감을 고려해 분쇄하고 이유식으로 만들어 준다면 이것은 호메로스 자체가 아닌 저를 통해서 한 번 씹혀지고 소화된 호메로스일 것이다. 같은 재료이더라도 전혀 다른 것이다. 향과 식감이 조금 낯설지 모르더라도, 그대로 전달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의역과 직역을 나누는 게 부질없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자구 하나를 똑바로 세우지 못하는데, 무슨 수로 뜻을 바르게 전달할 수 있는가. 똑바로 세워놓고, 있는 것은 모두 번역하고, 없는 것은 하나도 끼워 넣지 말아야 호메로스가 비로소 살아난다고 생각했다.”

좀더 원형적으로 번역하려 했던 구체적 사례를 작품 속에서 적시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일리아스』 제3권을 편 뒤, 트로이의 파리스가 그리스 메넬라우스와 결투를 앞두고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서자 헥토르가 질책하는 대사를 가리켰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파리스, 겉모습만 대단한 녀석, 정신이라곤 온통 여색에 팔아먹은 사기꾼 놈! 차라리 네놈이 고자였다면, 그래서 짝도 못 찾고 죽어버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남들 앞에서 이 지경으로 비웃음거리가 되고 굴욕 덩어리가 되느니, 차라리 그편이 훨씬 더 나았겠지.”(94쪽)

그는 헥토르의 대사 가운데 ‘고자’를 그대로 번역했다고 말했다. 천병희의 『일리아스』(2015년 개정판, 도서출판숲)를 찾아보니 좀더 완곡한 문장으로 번역돼 있었다. “가증스러운 파리스여, 외모만 멀쩡하지 계집에게 미친 유혹자여!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거나 장가들기 전에 죽었어야 했다. 그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지. 이렇게 만인이 보는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멸시받느니 그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102쪽)라고.

새 번역에서 “네 이빨 울타리를 빠져나온 그 말은 대체 무엇이냐”라는 문장은 기존 천병희 판본에선 “너는 무슨 말을 그리 함부로 하느냐”로, 새 번역의 “날개 돋친 말을 건네었다”는 표현 역시 “물 흐르는 듯 거침없이 말했다”로 표현으로 각각 번역돼 있었다.

―왜 이런 차이가 나온 것인지.

“천 선생이 『일리아스』의 완역판을 처음 펴낼 때는 1982년이었다. 당시에는 원전을 읽어본 사람도 많지 않을 때였고, 완역 역시 국내에서 처음이었다. 처음이라서 고자라는 말을 써도 될까, 고민을 하셨을 수도 있다. 시대 상황을 감안해 한 번 잘게 씹어주신 게 아닌가 생각된다. ‘기자님, 이것 해 주십시오’와 ‘형, 이것 좀 해줘’에서 ‘좀’이라는 말의 유무와 맥락에 따라서 어감이나 말의 온도가 많이 달라진다. 우리말의 ‘좀’ 같은 말을 조각말이라고 하는데, 희랍어에는 조각말이 아주 풍부하다. 천 선생은 조각말까지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번역하실 생각을 하지 않으신 것 같다. 몰라서가 아니라 일단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렇게 번역하신 것 같다.”

고전 『일리아스』는 고대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아간 전쟁을 배경으로 그리스의 맹장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마지막 십 년의 51일간을 노래한 서사시이고, 『오뒷세이아』는 트로이아 전쟁 영웅 오뒷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귀향 모험담이다.

―작품 속에서 가장 마음이 간 인물은 누구인가.

“인물이나 캐릭터간 우와 열을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마음이 더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헥토르를 꼽고 싶다. (약간 의외다) 보통의 전쟁 서사시라면, 주인공 편인 아킬레우스는 절대선이 돼야 하고 카운터 파트인 헥토르는 절대적 빌런이나 악마가 돼야 한다. 하지만 두 작품에서 헥토르는 그렇지 않다. 아킬레우스에 걸 맞는 상대로 나온다. 헥토르는 인간적이다. 패배에도 다시 일어나고, 자신이 오판해 손실을 일으킨 것을 자신의 죽음으로 갚으려 한다. 특히 전쟁 도중 잠시 트로이성 안으로 들어와서 어머니와 제수 헬레네, 아내와 아들 등을 만나고 나오는데, 헥토르는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인지, 그들에게 헥토르는 어떤 존재인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처참하게 죽고 시신을 찾아서 장례식을 치르는 마지막 권이 헥토르에게 헌정된다. 호메로스가 그에게 각별한 지위를 부여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아울러 아킬레우스가 돌진해오는 장면에서 헥토르의 긴 독백이 나오는데, 헥토르의 내면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시인도 우리에게 헥토르의 내면을 더 살펴보길 원했던 것 같다. 아킬레우스는 여신의 아들이기도 하고 우리가 큰 포부를 품는다고 해서 따라갈 만한 인물이 아니다. 아킬레우스는 우리와 갭이 크지만, 헥토르는 큰마음을 품고 한번 닮아볼까 하면 비슷하게 갈 수 있다고 느껴진다.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헥토르는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이다.”

―현대인들은 왜 이 고전들을 읽어야 하는가.

“서사시는 기원전 8세기 전후 시인 호메로스에 의해 쓰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호메로스가 이 같은 스타일의 이야기를 처음 썼다곤 생각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즐기고 전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권에 전쟁 이야기나 모험을 하고 온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한다. 패턴은 천편일률적이지만, 호메로스의 책이 왜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모든 문학가들의 꿈이나 원형이 됐는지는 설명이 필요하다. 다른 전쟁 서사시는 슈퍼 히어로 물처럼 박수를 쳐줄 수 있지만 몰입은 잘 되지 않는다. 대리 충족만 된다. 하지만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는 다른 서사시 영웅처럼 피지컬한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정서적인 면, 진노와 연민을 바탕으로 한다. 작품의 처음이 진노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아킬레우스가 죽은 헥토르의 시신을 프리아모스 왕에게 내주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연민을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진노에서 시작해 연민으로 가는 감정의 궤적을 따라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다른 전쟁 서사시에서 느낄 수 없는 몰입과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항상 내 이야기가 되고 현재적이 된다. 『오뒷세이아』도 마찬가지다. 모험을 하는 동안 인간의 조건에서 벗어난 존재들을 계속 보여주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한다. 보통의 설화나 동화는 집을 나간 남편이 갖은 고생을 하고 돌아와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오뒷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와 20년 만에 재회하는 순간 자기에게 남은 노역과 고역을 이야기하고, 페넬로페 역시 그동안 잃어버렸던 젊음이나 상실을 이야기하는 등 휴머니티를 보여준다. 우리가 이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현재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분 전환이나 유쾌함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면 자신이 처한 삶의 조건, 인간의 조건을 성찰하게 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지혜나 힘을 얻도록 돕기 때문이다.”

―출간 이후 반응은 어떤지.

“특별히 체감하는 건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젊을 때 번역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잘 번역해서가 아니라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시작했기 때문이다. 선배들 가운데 번다한 일을 먼저 끝낸 뒤 전문 분야 번역을 하려다가 체력을 비롯해 여러 문제로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몰입해야 할 수 있는 일을 노년에 배당하는 건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수많은 고전을 번역 출간한 천 선생이 대단하셨던 것 같다. 그리스로마 연구를 사람 가운데 천 선생의 은혜를 입지 않은 학자는 거의 없다. 저도 이제 나이가 50대가 되니 예전과 같지 않더라. 더 속도를 붙여서 할 것 같다.”

“이준석씨, 다음 부분부터 번역해 보세요.” 60명이 넘는 학부생들이 듣는 여름 계절학기 교양강좌인 ‘라틴어1’ 두 번째 수업시간. 강의를 맡은 강대진 교수의 입에서 갑자기 그의 이름이 떨어졌다. 어,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강 교수가 그 많은 수강생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도 소식이 들려오던 시절이었다. 나라도 망했고, 개인들도 망해 있었다. 대학 도서관은 독서실로 변했고. 모든 게 망해 있어서 의욕이 없었다. 1998년 제대를 하고 3학년으로 복학했을 때, 한국 사회는 IMF체제였다. X세대라는 호칭까지 들으며 자유로움을 만끽한 입학 당시의 분위기는 온데 간데 사라졌다. 기존과 다른, 새롭고 의미 있는 무엇을 찾아야 했다.

부모 세대나 선배들의 조언은 차마 들어줄 수 없었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했다가 모두 망했는데, 그것을 또 하라니. 웃기는 이야기였다. 다양한 강의실을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여름 계절수업으로 라틴어1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대학원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들이 진행한 강의였다.

“수업도 재밌게 진행하셨습니다. 보통 재밌기만 한 수업은 남는 게 없는데, 라틴어 수업은 남는 것도 많았지요. 정말 좋은 수업이었지요. 그때 라틴어 수업이 아니었으면 제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감이 잘 오지 않군요.”

라틴어 수업이 재미있었던 복학생 이준석은 3학년 2학기 때에는 ‘라틴어 2’를, 이어서 ‘히랍어’를, 그 다음에는 ‘그리스 비극’을 차례로 들었다. 이 세계에 빨려 들어가고 있구나. 자신의 몸이, 어떤 기운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가, 나중에 굶어 죽을 때 굶어 죽더라도 이걸 하다가 가는 게 낫겠군.

그는 서양고전 협동과정 대학원에 들어갔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해 그리스 비극을 공부하면서 소포클레스 비극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호메로스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스위스 바젤대에 유학을 떠났다.

1974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준석은 2015년 스위스 바젤대에서 호메로스 서사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부터 본격적으로 서양 고전 번역에 나섰다. 지난해 호메로스의 명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연달아 완역했다. 2018년부터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법이나 원칙은 무엇인가.

“번역은 의역과 직역의 이분법 구도가 무너져야 된다. 똑바로 세우지 못하면 뜻도 전달하지 못한다. 최대한 고스란히 가지고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왜곡을 없애는 최고의 길이고, 번역자를 지우면서 저자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방법이다. 중간에 들어가서 주인공이 뭐라고 했대, 하고 전해주면 맛있지도 않고 생생하지도 않다. 번역가는 충격은 충격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고스란히 손상 없이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지.

“머리만 좀 하얘지지 않을까? 천 선생처럼 죽을 때까지 공부할 것이다. 이미 번역할 목록들이 다 짜여 있다. 연구실 문을 걸어 잠그고 계속 번역을 하겠다. 중간에 링 밖으로 걸어 나오진 않겠다. 케이오가 돼 죽는 일이 있더라도. 본연의 일을 해야 현재도 행복하고, 나중에도 평가받을 수 있다.”

“혹시 가능하시다면 약력에 어릴 때부터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회원이었음을 적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느냐고 묻자, 이 교수는 주저주저하면서 말을 꺼냈다. 삼미 슈퍼스타즈 어린이 회원? 목소리는 마치 배우 한석규의 그것 같고, 턱수염은 북극곰을 때려잡고 막 돌아온 북유럽 전사의 그것 같은 그가.

“삼미 슈퍼스타즈는 어떻게 보면 패배의 화신이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어떤 달관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꼭 이겨야겠다가 아니라, 안 되는 것도 있고,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헥토르에 대한 연민이 언제부터 생겼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아마 어릴 적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을 할 때부터 생겼던 게 아닌가 싶어요.”

헥토르에 대한 연민과 삼미 슈터스타즈 어린이 회원 경력 간 방정식은 과연 변수가 몇 개이고 몇 차 방정식일까.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구실에서 서양 고전과 씨름을 하고 있는 이 교수는, 이날 비록 몸은 인터뷰 현장에 와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고전의 숲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남제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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