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 너머의 얼굴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남종영 ㅣ 환경논픽션 작가
대왕판다 ‘푸바오’의 영상이 인기다. 푸바오가 사는 에버랜드동물원은 오픈런을 마다치 않는 사람들로 관람시간 제한까지 두고 있다. 나도 지난 주말 푸바오 영상에 푹 빠졌는데, 조회수 2천만회가 넘는 ‘판다 할배와 팔짱 데이트’는 수십번 봐도 질리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보는 사육사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늘어지는 푸바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왔기 때문이다.
푸바오는 2014년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중국이 대여한 대왕판다 ‘러바오’와 ‘아이바오’의 세살 난 딸이다. 원래 두 곰은 짝짓기를 꺼렸는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관람객 숫자가 줄어들자 그제야 합사가 되었다고 한다.
2020년 7월 에버랜드에서 출생한 푸바오는 유튜브 영상이 확산하면서 점차 유명세를 탔다. 최근에는 일거수일투족이 인터넷 기사로 보도되고, 공중파 방송에 한달짜리 프로그램이 편성되기도 했다. 중국 쪽 정책에 따라 올해 봄에는 부모 고향인 중국으로 옮겨갈 예정이라 팬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사람들은 왜 푸바오에 열광하는 걸까?
우리는 아기의 모습에 끌려 귀여워하고 예뻐하는 경향이 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후손을 보호해 자신의 종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게 하기 위한 진화적 적응이다. 아기의 얼굴에 본능적으로 끌리기 때문에 우리는 머리가 크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아기 같은 얼굴’을 선호한다.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지금은 고전이 된 책 ‘판다의 엄지’에서 미키마우스 변천사를 다룬다. 20세기 중반만 해도 미키마우스는 쥐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머리가 커지고, 뾰족한 코가 굵어지고, 흰자위가 생기며 눈이 커졌다. 인간의 본능적 선호를 반영한 ‘문화적 진화’가 미키마우스에서 나타난 것이다.
주변에서 찾아보면, 고양이야말로 아기 같은 얼굴을 잘 담고 있다. 겁 없고 게으르면서도 호기심과 장난기 넘치는 천진난만한 얼굴이다. 암모나이트처럼 몸을 동글게 말고 자는 ‘냥모나이트’, 앞발은 가슴팍 아래로 뒷발은 엉덩이 안으로 밀어 넣은 채 앉아 있는 ‘식빵자세’ 사진 등을 교환하며 노는 랜선집사(고양이를 키우지 않지만 인터넷으로 고양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채팅방도 있다. 이런 랜선집사 문화가 유튜브 버전으로 확대된 것이 푸바오 열풍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푸바오 또한 유아의 얼굴을 과장해 담고 있다. 어쩌면 저출생 시대 우리의 역설적인 모습인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동물의 얼굴이 그게 다일까? 이달 초 책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에 출연한 김혼비 작가는 ‘사로잡은 얼굴들’이 푸바오 열풍이 휩쓴 2023년 ‘올해의 책’으로 적당하다고 말했다. 사진가인 이사 레스코가 농장동물 생크추어리(보호시설)를 돌아다니며 10년 동안 찍은 사진집이다. 카메라 앞에 선 동물 대다수는 늙은 가축이다.
공장식 축산에서 가축은 제 수명대로 살 수 없다. 자연상태에서 10년을 사는 닭은 양계장에서 1년 반 만에 죽는다. 15~20년을 사는 돼지는 최단시간 비육돼 6개월을 살고 죽는다. 공장식 축산 시대에 동물의 늙은 얼굴은 볼 수 없다. 사육, 도살 과정에서 구조된 동물들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는 생크추어리에서 사진가가 이들을 찍고서야 우리는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레스코는 고정관념에 기대어 동물을 찍지 않았다. 귀여움, 애교, 천진난만으로 삶의 다양성을 획일화하지 않았다. 그가 대신 선택한 건 한 존재의 시간과 무게가 담긴 ‘초상 사진’이었다. 동물의 얼굴에도 기쁨과 불안, 노여움과 진중함, 열중과 단호함이 나타난다. 노년에야 얼굴에 깃들 수 있는 위엄과 복잡성, 품위 같은 것도 있다. 김혼비 작가는 “푸바오 사진이 (귀여워서) 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불편했다. 하지만, 나라면 푸바오처럼만 찍히고 싶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스코도 이렇게 덧붙인다. 귀여운 동물의 얼굴은 세상의 복잡성과 고유성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고. 또 따뜻한 포옹의 태도가 때로는 세상을 우리가 보고 싶은 방식으로만 보도록 한다고도.
푸바오 너머의 다양한 얼굴들이 여전히 우리와 대면하길 원한다. 이들을 만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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