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한미약품에 빚투 억제 나선 KB증권… 타 증권사로 확산되나
미수금 폭탄 맞을라… 증권사, 증거금률 상향
‘장남 대 모녀’ 구도로 한미약품 오너 일가가 갈등을 빚으면서 주가가 급등락하자 복수의 증권사가 관련 주식의 증거금률을 높이고 있다.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주가 상승을 노린 개인 투자자들의 ‘빚투(빚내서 투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현재 기존 증거금률을 그대로 유지하는 증권사들 역시 주가 추이를 지켜본 후 필요하면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은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의 신용보증금률을 45%에서 50%로 올렸다. 과거엔 한미약품·한미사이언스 1주를 사려면 한주 가격의 45%의 자금만 계좌에 있어도 나머지는 KB증권으로부터 빌려 온전한 1주를 살 수 있었는데, 이젠 50%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난 16일 KB증권은 두 종목의 위탁증거금률도 올렸다. 위탁증거금이란 상환 기간이 2일인 미수거래를 할 때 투자자가 내야 하는 최소한의 보증금이다. 한미약품의 위탁증거금률은 20%에서 40%, 한미사이언스는 30%에서 40%로 상향됐다.
레버리지를 일으키기가 비교적 용이해 라덕연 일당이 주가 조작하는 데 악용한 차액결제거래(CFD)의 증거금률도 올랐다.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 모두 기존엔 40%였으나, 16일 기준 50%로 조정됐다.
이처럼 증권사가 선제적으로 증거금률을 올린 이유는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가시화되면서 주가가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계기가 된 것은 12일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 발표였다.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를 확보하고,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등은 OCI홀딩스 지분 10.4%를 취득해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과 임 사장이 각자 대표를 맡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곧바로 다음 날 임주현 사장의 오빠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은 해당 계약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모친인 송영숙 회장과 여동생이 주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결의안에 대한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까지 검토 중이다.
이 과정에서 주가가 오르기만 하면 문제가 없으나, 급락 전환해 투자자들이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손실은 고스란히 증권사의 몫이 된다. 실제 지난해 10월 영풍제지가 돌연 폭락하면서 키움증권은 고객에게 받지 못한 4333억원을 손실로 떠안았다. 이 탓에 아직 발표되진 않았지만 키움증권의 지난해 4분기 영업실적은 적자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황현순 키움증권 대표는 영풍제지 미수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삼성증권은 한미약품 오너 간 갈등이 불거지기 전인 10일부터 한미사이언스의 미수거래를 줄이기 위해 위탁증거금률을 30%에서 40%로 올렸다. 삼성증권은 CFD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아 위탁증거금률만 조정됐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내부 프로세스에 의해 증거금률을 올린 것”이라며 “(한미약품의) 경영권 분쟁과는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한미사이언스의 주가는 위태로운 상태다. 임종윤 사장이 공개적으로 반발한 바로 다음 거래일인 15일 주가는 12.76% 상승 마감했다. 16일에도 29.79% 오르며 상한가를 기록했으나 전날엔 11.30% 하락했다. 이에 비해 한미약품의 주가는 등락 폭이 작다. 15일부터 전날까지 한미약품의 등락률은 마이너스(-) 4.25%, 0.89%, -3.08%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등 다른 증권사 역시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의 주가를 주시 중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가 변동성뿐만 아니라 재무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증거금률을 결정한다”며 “당장 두 종목의 주가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 역시 “주가 변동성이 계속될 경우 증거금률 상향 등 가능성을 열어두고 추가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증거금률이 상향된다고 해서 기존에 신용거래와 미수거래를 한 투자자에게 소급 적용되는 건 아니다. 이들이 새롭게 신용·미수거래를 할 경우 상향 조정된 증거금률이 적용된다. 다만 CFD 거래엔 곧바로 적용돼 기존에 CFD 서비스를 이용한 투자자는 상향된 증거금률에 맞게 추가 증거금을 납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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