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중 가장 부진”… 불처럼 치솟던 韓 증시, 해 바뀌니 확 가라앉네

전준범 기자 2024. 1.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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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용인데 파란 용이다 보니 아래쪽으로 날아가네요.”

1월 17일 장 마감 직후 한 개인 투자자가 주식 커뮤니티에 남긴 글.

작년 12월 한 달 동안에만 5%가량 오르며 ‘산타 랠리’를 과시했던 코스피 지수가 새해 들어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12거래일 중 10거래일에 파란색(하락) 그래프를 그리며 주요국 가운데 가장 실망스러운 증시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금리 조기 인하 기대감이 약해진 가운데 기업 실적 부진, 지정학 리스크 등의 악재가 잇따라 겹치며 기관 매도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일본 증시로 자금이 옮겨간다는 분석도 있다. 당분간은 주식 비중 확대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두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조선 DB

◇ 올해 니케이 6% 오를 때 -8% 기록 중인 코스피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655.28로 2023년을 마무리했던 코스피 지수는 2024년 들어 8.26%나 추락(1월 17일 종가 기준)했다. 이는 주요국 증시 중 가장 큰 낙폭이다. 같은 기간 미국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0.87%, 영국 FTSE지수는 2.26% 하락하는 데 그쳤다. 경기 회복이 더딘 중국의 상하이종합지수 등락률도 -4.85%로 한국보단 양호한 상태다. 일본 니케이225지수는 올해 들어 6.02% 상승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유가증권시장 분위기는 이렇지 않았다. 작년 11월을 2535.29로 마친 코스피 지수는 12월 한 달 동안 4.73% 올랐다. 공매도 금지와 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 등 정부의 증시 활성화 대책이 연거푸 나온 데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덕이다. 연간으로 보면 지난해 코스피 지수는 2022년 말과 비교해 18.7% 상승했다.

코스피 지수는 올해 첫 거래일인 이달 2일에도 0.55% 오르며 불기둥 랠리를 이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날인 3일 갑자기 방향키를 틀더니 15일을 뺀 나머지 거래일에 모두 약세를 기록했다. 특히 17일에는 2.47%나 빠지면서 작년 12월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월 기준으로 보면 2022년 12월 이후 가장 부진한 상황”이라고 했다.

코스피 지수가 2.46% 주저앉은 1월 17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 뉴스1

◇ 기관 매도에 낮아진 이익 기대감까지 ‘악재 속출’

신년 초 한국 증시의 예상보다 깊은 부진에 대해 전문가들은 금리 조기 인하 기대감 후퇴와 기관 수급 악화, 이익 모멘텀 약화, 국내외 지정학적 불안 등을 이유로 꼽았다. 작년 말 급등세를 보인 만큼 어느 정도의 숨 고르기는 예상했지만, 겹악재가 쌓이면서 투자 심리가 더 크게 흔들린다는 분석이다.

이경민 연구원은 “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이 다시 후퇴하면서 3월 금리 인하 확률(CME Fed Watch 기준)은 76.9%에서 63.3%로 낮아지고, 동결 확률은 19.0%에서 35.1%로 급등했다”며 “이와 더불어 최근 중동 지역 중심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가세하면서 달러 강세를 자극하고 있다”고 했다. 17일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2.4원 오른 1344.2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은 이틀 새 24원 급등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올해 들어 기관은 7조원가량 순매도 중인데, 절반인 3조5000억원이 반도체에 집중됐다”며 “국내 기관은 운송·디스플레이·유틸리티를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매도 우위를 보인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9일 삼성전자 실적 발표 이후 이익 모멘텀 약화도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며 “국내 상장사의 2024년 영업이익 추정치를 276조5000억원에서 271조2000억원으로 1.9% 낮췄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업종에 대한 기관 수급을 세분화해보면 은행(-2조2000억원)과 금융투자(-7000억원)가 매도를 견인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최근 삼성그룹 오너 일가 세 모녀가 상속세 납부를 위해 계열사 주식 2조7000억원어치를 매도한 영향으로 추정된다. 김 연구원은 “당분간은 국내 주식 비중 확대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17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 정보가 표시돼 있다. / 뉴스1

◇ “日 증시로 자금 이동… 추가 낙폭은 제한적일 것”

한국 증시가 주요국보다 유독 부진한 배경에 일본 증시의 상승세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한국 증시의 상대적 약세는 이미 작년 6월부터 시작됐는데, 이 시기에 일본 증시는 급등세를 보였다”며 “일본은 산업 구조나 주식의 롱숏 관점에서 한국과 대비되는 시장”이라고 했다. 그는 “엔화 약세나 공급망 재편 등에 따른 일본 수출·실적 개선 기대감이 자금 이동을 만드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모멘텀 둔화 외에도 다수의 부담 요인이 중첩되면서 1월 증시 조정이 심화하고 있다”며 “경험적으로 지금과 같은 급락이 발생한 이후에는 빠른 반등보다는 바닥 모색 과정이 수반된 경우가 평균적이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너무 일찍 좌절할 필요는 없다며 투자자를 달랬다. 악재 틈바구니에 호재도 상존한다는 이유에서다. 강진혁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실적 눈높이 하향 과정에서 추가 하락 가능성은 있지만, 인공지능(AI) 테마가 아직 살아있고 반도체 투자세액공제 연장 등 정책 모멘텀도 존재한다”고 했다.

강 연구원은 이어 “삼성가의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로 단기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이슈가 해소됐다”며 “기저효과에 따른 미국 1월 CPI(소비자물가지수) 둔화 기대 등으로 추가 낙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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