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으로 선수 줄자… 세계 무대서 사라지는 한국 구기
한국 여자 하키 대표팀(세계 13위)은 17일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하키 최종 예선 조별 리그 A조 3차전에서 아일랜드(14위)에 1대3으로 지면서 1승 2패로 탈락했다. 지난 도쿄올림픽에 이어 2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과거 두 차례 올림픽 은메달(1988년·1996년) 성과를 일궜던 여자 하키는 이제 메달은 고사하고 올림픽 무대에 서보지도 못하는 신세다.
이미 한국 구기(球技) 종목 대표팀들은 7월 파리 올림픽 전선에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남녀 농구, 남자 핸드볼, 여자 축구는 파리행 탑승이 불발됐다. 남녀 배구도 사실상 탈락한 상태. 파리 올림픽 출전이 확정된 건 여자 핸드볼뿐이다. 남자 축구는 4월 U-23(23세 이하) 아시안컵에서 파리행을 다툰다. 여자 핸드볼은 지난해 연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참가 32국 중 22위에 그쳐 역대 최악 성적을 남겼다. 한국 구기 종목 대표팀은 직전 도쿄 올림픽에선 남자 축구와 여자 농구·배구·핸드볼까지 4종목에서 세계 강호들과 겨뤘는데 파리에선 최대 2종목으로 줄게 됐다.
◇선수 인원 맞추기 급급
이처럼 구기 종목들이 줄줄이 세계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건 기본적으로 선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저출생 후유증이 체육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하키만 해도 작년 기준 등록 선수(대한체육회)는 1638명(여자 594명). 유럽 국가들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다른 종목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달 찾은 대전 중구 대전여상 체육관에선 농구 부원 2명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농구장 시설은 프로 구단 못지않았지만 정작 이 시설을 활용할 농구 부원이 없었다. 그동안에도 농구 부원이 6~7명 수준으로 많진 않았지만 이젠 그마저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5명으로 겨우 대회에 출전했지만 올해 3명이 졸업하고, 입학이 확정된 신입 부원은 없다. 이예나 코치는 “일단 1~2명만이라도 등록해 농구부 폐지를 막은 뒤 1년 동안 선수를 구하러 다닐 생각”이라고 말했다.
좋은 선수 발굴은 고사하고 선수 자체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게 초·중·고 구기 종목 지도자들 처지다. 최명도 군산고 농구부 코치는 “작년 선수단 줄부상, 퇴장 악재로 5명을 채우지 못해 몰수패를 당한 경험이 있다. 올해 그런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든 선수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유소년 지도자들은 영업 사원
서울 한 명문 남고 배구부 김정근 감독은 “2001년부터 코치 생활을 했는데, 많을 때는 선수가 20명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달 찾은 이 학교 체육관은 썰렁했다. 훈련 중인 선수는 단 8명. 졸업을 앞둔 선수 4명이 빠지긴 했지만, 6명이 한 팀을 이루는 배구에서 자체 연습 경기도 치르기 어려운 지경이다. 김 감독은 “부모님을 설득해 학생들을 ‘모셔오는’ 게 감독들 역할”이라며 “감독은 결국 영업 사원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재능 있는 선수가 1명이라도 보이면 치열한 영입 경쟁이 벌어진다. 키만 크면 일단 무조건 관심 대상이다. 최 코치는 작년 광주광역시에서 배구를 하는 학생을 농구 선수로 전환시키기 위해 4~5차례 출장 설득을 벌인 끝에 결국 성공했다. 잘하건 못하건 일단 인원을 채우는 게 지상 과제다 보니 선수들 수준도 저하되고 있다. 배구계 관계자는 “지금 고교 졸업 선수들 실력은 20년 전에 비해 50%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 구기 대표팀들이 고전하는 이유다.
배구·농구계에선 “키 큰 순서대로 망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있다. 키가 커야 유리한 종목들인데 이젠 선수가 없어 키가 크건 작건 받아들이고 보는 추세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육성 전략이 없다
저출생 문제는 단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닌데 유독 구기 종목 경쟁력에 타격을 입는 건 결국 종목별 협회의 선수 육성 대책이나 경기 전략 마련이 미흡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많다. 농구계 관계자는 “한국 연령별 대표팀은 경기가 있으면 그때마다 모여 며칠 급하게 손발을 맞추고 대회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일본은 1년 중 수시로 모여 함께 훈련을 하니 팀 스포츠 특성상 조직력 측면에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과거엔 한국 연령별 대표팀은 아시아권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신장, 개인기를 바탕으로 승부를 유리하게 이끌고 갔다. 그러나 이젠 선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조직력을 다듬지 않고선 국제 무대에서 빛을 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역대 첫 ‘노메달 수모’를 겪은 배구계는 프로 구단들이 나름 유소년 클럽을 만들어 운영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곤 있다. 하지만 안정적인 육성 체계 마련보단 홍보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있다. 배구협회는 ‘항저우 참사’ 이후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청회를 열고 ‘학생 훈련 시간 보장 방안’ ‘유소년 집중 육성 방안’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문제 제기만 했을 뿐 해결책은 내놓지 못했다. 배구인들은 “협회가 비전이 있기는 한 거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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