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공실 투성인데…상가를 더 짓는다고?" 시화호 상권 침체 '비상'
멈춰 있는 에스컬레이터…불 꺼진 중심상가
공실 점포 곳곳 '임대문의' 안내 표지 붙어
3200여 상가 입점률 13%, 10곳 중 8곳 공실
주변엔 상가 포함된 복합건물 신축공사 한창
일부 관광시설·호텔 사업은 '무산 또는 답보'
상인들 "지금도 비었는데 상가 무더기 공급"
시흥시, TF 운영 등 대책 마련 위해 고심 중
전문가 "수요분석 실패, 과잉 공급 조절해야"
"지금도 여기저기 텅텅 비었는데 몇 백 개나 더 들어온대요. 다 같이 죽으라는 거 아닙니까."
지난 16일 경기 시흥시 거북섬에 있는 인공서핑장 웨이브파크 인근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최모(40대)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는 '시화MTV 복합시설' 간판이 걸린 공사현장을 가리켰다. "서핑장 주변 상가들이 대거 공실인 데다 겨울에는 찾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데, 상가만 우후죽순 늘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길 건너 갈대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씨는 "저렇게 버려둘 땅이 아니었다"며 "서핑장과는 별도로 추진 중이던 관광시설 건립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고 했다.
최씨는 "키즈파크처럼 사계절 즐길 수 있는 놀이시설이 예정대로 들어오고 관광이 살아나야하는데, 그마저도 지지부진"이라며 "관광시설은 물론 배후단지에 추가로 추진되고 있는 대규모 주상복합건물까지 더해지면 상가들이 더 늘어날 게 불 보듯 뻔하다"고 토로했다.
중심상가조차 썰렁한데…여기저기 신축 공사 '한창'
점심시간인데도 거리에는 작업복 차림의 직장인 네댓 명 정도가 다 였다. 4~5층 정도의 상거건물 수십 채가 몰려 있는 중심가도 마찬가지. 분양 홍보 직원들 외 행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주점과 편의점 등을 제외하고는 간판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덩그러니 매달린 전기배선들만 눈에 들어왔다.
텅 빈 건물 안 점포들의 유리 통창에는 '임대문의'라고 적힌 A4 용지가 곳곳에 붙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상층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서핑장에 가까운 건물에는 카페와 식당 등 몇몇 업체들이 문을 열었지만, 한 집 건너 서너 점포는 줄줄이 비어 있는 상황이다.
서핑장 옆으로는 '주상복합' 신축공사가 한창이었다. 레미콘 차량과 덤프트럭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3년 전 웨이브파크 맞은편에 편의점을 연 김동휘(60대·여)씨는 "초반에 힘들어도 주변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하고 버텨 왔다"며 "원래 들어서려던 관광시설은 더뎌지고 상가들만 계속 더 늘어난다니 끔찍한 악몽이 될 것 같다"고 답답한 심정을 호소했다.
공실률 90% 육박에 관광시설 확충 답보, 상가 공급만↑
경기 시흥시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K-골든코스트의 구심점인 시화호 거북섬 관광지 내 상가 공실률이 90%에 육박했다.
17일 시흥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거북섬 일대 총 상가 점포수는 3253개로 상반기 대비 6개월여 만에 800여 개 늘었지만, 입점률은 13%에 그쳤다. 10곳 중 8곳 이상이 비어 있는 실정이다.
해당 지역은 한국수자원공사와 지자체 등이 협력해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한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상권 기대감이 높았던 곳이다.
특히 시가 민선 7~8기에 걸쳐 신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주력해 온 관광벨트의 중심축으로 주목받아 왔다. 이른바 K-골든코스트로 서부권 15㎞의 해안선을 따라 해양레저 관광산업과 바이오-의료 첨단산업 등 미래 먹을거리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상가건물 대부분은 비어 있고, 그나마 입점해 있던 일부 점포들은 임대료와 대출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여름 성수기를 제외한 평일과 심야에는 '유령 도시'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인근의 또 다른 해양관광시설 아쿠아펫랜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실내 시설로 계절 영향을 받지 않는 구조이지만, 4개 동으로 나뉜 1층 중심부에 관상어·애완용품 판매점들을 제외하고는 외곽과 2~3층 상가들 대부분이 공실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주변 주거단지 조성과 함께 주상복합건물 형태로 상가 공급이 계속 이뤄진다는 것.
이와 관련해 관광시설 확충 등 전체 상권을 살리기 위한 사업들이 답보 상태인데, 상가만 지속적으로 과잉 공급하면 상권이 더 악화할 것이라는 게 지역내 대체적인 전망이다.
실제로 웨이브파크와 연계해 지으려던 대관람차 사업은 사업자가 자금난 등을 이유로 사실상 포기 의사를 밝혔다. 대형 호텔 건립도 PF발 건설업 위기 여파로 부지가 공매에 넘겨지는 등 사업 전망이 어둡다.
2년 전 일부 유통용지가 주거시설 부지로 용도변경 되면서 인구유입에 대한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대규모 상가를 포함한 주상복합 건물로 계획되면서 효과가 미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역의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빈 상가들이 넘쳐나는데도 수십, 수백 개씩 더 공급하겠다는 계획에 경악스럽다"며 "국책사업이자 지자체 정책사업이라면서 서둘러 홍보할 땐 언제고, 관광객 늘릴 시설들은 줄줄이 무산되거나 지연돼도 방치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시흥시 대책 마련 '고심'…밀려드는 요구사항
이에 시는 시화호 상권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담기구(TF)를 꾸려 민·관 대책회의를 개최하는 등 고심하고 있다.
임병택 시흥시장도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거북섬은 시화호 활성화 사업의 대장선이지만, 상인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다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사업들"이라며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시흥시 관계자도 "코로나19 여파와 부동산 경기 침체, 건설업계 위기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며 "기존 유통부지를 주거시설로 용도변경하는 등 수자원공사, 국토부 등과 적극 협의하며 역할을 하고 있고, 입주민 증가와 향후 관광시설 등이 탄력을 받으면 차차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수요분석 부족, 상가 과잉 공급 조절해야"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제대로 된 사업성 분석도 없이 과도하게 상가를 공급한 게 주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세밀한 수요분석으로 상가 비율을 설정하고, 상시 관광객 유치가 가능하도록 특화된 놀이시설과 먹을거리, 주차·휴식공간 등을 구축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대학원) 교수는 "특정 계절에만 활기를 띄는 등 수요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정상적으로 분양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신도시의 전형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수자원공사의)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방향을 잘 설정해 적정 규모의 상가 비율과 시설물 조성 계획을 세웠어야 했다"고 분석했다.
금융권의 한 부동산 연구위원은 "관 주도의 대규모 개발은 옛날 방식이다. 일방적으로 상가들을 과잉 공급해 놓고, 정작 제반시설들은 간과한 것 아닌가 싶다"며 "영업이 온라인 마케팅화되고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상황에 오프라인 상가들을 쏟아내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전시성 행정과 마구잡이식 개발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CBS노컷뉴스 박창주 기자 pcj@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권익위, 金여사 '디올백'건 아직 신고인 조사도 안 해
- [단독]차규근 전 본부장 법무부에 사표 제출…총선 출마 시사
- [단독]'수강료 77만원' 주식 전문가, 알고보니 문체부 공무원
- [단독]서울 동도중학교 안전등급 'D' 나왔는데…교육청은 '늑장행정'
- "얼굴 맞았는데 카드 없었다" 레바논전도 비긴 中, 고형진 심판에 불만 토로
- 與 '10%+α' 물갈이 폭…'깜깜이' 2차 컷오프에 달렸다
- 美, 후티 반군 '국제테러리스트' 재지정…자금줄 '압박'
- 양천·구로구 3만7천세대 난방·온수 끊겼다…복구는 18일 오후 3시쯤
- [르포]"공실 투성인데…상가를 더 짓는다고?" 시화호 상권 침체 '비상'
- '총선앞' 감세 드라이브…커지는 '세수 펑크' 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