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신용의 세계와 그 적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업 주체의 신용도를 보지도, 담보를 요구하지도 않고, 오직 사업의 미래 실적만을 '믿고' 거액을 빌려주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같은 금융 기법은 초심자인 내게 가히 '센세이션'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금융의 세계에 입문했던 건 1년 7개월 전 경제부로 발령 나면서다. 금융의 세계는 곧 신용의 세계였다. 믿을 만한 상대에겐 소정의 이자만 붙여서 돈을 빌려주지만 반대의 경우 내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리스크)만큼 이자를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것. 그것이 금융의 기본이라 이해했다. 그래서 사업 주체의 신용도를 보지도, 담보를 요구하지도 않고, 오직 사업의 미래 실적만을 '믿고' 거액을 빌려주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같은 금융 기법은 초심자인 내게 가히 '센세이션'했다.
신용의 회복 탄력성 또한 신선했다. 가령 지방자치단체처럼 견실한 이가 돈을 갚지 못하는 뜻밖의 부실이 발생했을 때, '다른 이들도 못 갚을 것'이라는 불신이 들불처럼 번지기는 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이 등판해 불신으로 돈줄이 마른 곳에 수십조 원의 지원을 퍼붓거나 고위 인사가 부실 우려 금융사에 공개적으로 돈을 맡기며 '이제 괜찮다'고 다독이면 신용 프로세스는 차츰 재작동했다. 이곳에서의 신뢰는 일반 사회에서보다 훨씬 단단하고 뿌리 깊은 가치였다.
무결한 세상은 없듯, 이곳에도 '외딴섬'은 존재한다. 공매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곳, 주식시장이 그렇다. 신뢰의 회복 탄력성은커녕 오래된 불신으로 소통이 굳어버린 곳. '공매도는 절대 악'이라는 강성 개인투자자의 확증 편향 앞에선 '공매도는 과대평가된 주식 가격을 조정한다'는 설명은 일개 메아리로 돌아오는 곳.
최근엔 공매도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대차거래) 판 다음 주가가 떨어지면 싼값에 되사 차익을 얻는 기법이다. 보유 주식이 없는데도 매도 주문을 넣고 결제일(주문일 이틀 후) 전에 재빨리 주식을 빌려서 메꾸는 무차입 공매도는 불법이다. 따라서 불법 공매도 감시의 핵심은 대차거래 여부를 전산으로 실시간 파악하는 것이다.
관계 기관은 현실적인 이유로 "어렵다"고 항변하고 개인투자자는 "의지의 문제"라고 반박한다. 현실적인 이유란 이러하다. ①주문과 대금 결제의 시차(2일), 주문과 잔고 관리 업체의 분리 때문에 제3자가 대차거래 여부를 즉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②대차거래 플랫폼을 만들어도 장외거래는 누락될 것이고 플랫폼 이용을 강제하면 독점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접점을 찾아보겠다며 연말 토론회까지 열었지만 개인투자자들의 반응은 이랬다. "지금 하신 말씀은 윤석열 대통령님 말씀을 100% 역으로 부정하시는 겁니다."
뿌리 깊은 불신은 누가 만든 것일까. 답 역시 같은 토론회에서 나왔다. "2018년에도 당국은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후 '도저히 안 된다, 무리'라고 했으면 되는데, '천문학적 비용과 시스템 과부하'를 번복 사유로 들었다. 할 수 있는데 돈 때문에 포기한 것으로 시장이 받아들이면서 신뢰가 무너졌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의 말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 불신의 굴레를 만든다는 얘기다. "미국에선 대차거래 플랫폼 이용률이 70%, 80%라고 하니 그 정도 선에서 맞춰가지 않겠어요." 투자업계 관계자 전망이다. "올해 안에 될까요" 물었더니 멋쩍은 웃음만 짓는다. 비단 공매도뿐일까. 불신을 잉태하는 말들은 오늘도 쏟아지고 있는데. 선거가 코앞이란 이유로.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2314390002382)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0710300005121)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10114100004481)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10414080005814)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교 모욕 논란 부처빵 봉투에 "빵은 신이 아니다" 성경 구절 쓴 이유
- 26년 장수 '세상에 이런 일이' 폐지설에… SBS PD들 집단 반발
- 강남 성형외과에서 지방흡입 수술받은 20대 중국인 여성 사망, 경찰 수사 착수
- "안락사 직전 복도 뛰게 했다"... 실험비글 내보낸 한 연구원의 고백
- [단독] '솔로지옥3' 유시은 "최민우 덕분에 연애세포 부활"
- "망해도 경험? 누군가에겐 생업"... 탕후루 가게 낸 67만 유튜버 비난 쇄도, 왜
- '솔로지옥3' 메기 조민지 "내 모습 반성... 연애 경험 적어" [직격인터뷰]
- 숨진 채 발견된 치매 아버지와 간병 아들… 국가 지원은 없었다
- 백일섭 "나는 바지 아빠였다"...졸혼 9년 만 심경 고백 ('아빠하고 나하고')
- '한강 의대생' 손정민씨 친구... 경찰 이어 검찰도 무혐의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