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에 국가 SOC 사업도 멈췄다… 대형사업 8건 모두 유찰
지난 15일 정부 발주 공공사업 입찰을 진행하는 조달청 나라장터 홈페이지. 서울 강남역 일대에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 프로젝트 입찰 결과가 공개됐다. 사업비 총 3934억원짜리 공공사업이었지만, 의향서를 제출한 건설사가 단 한 곳도 없었다. 유찰된 것이다. 이 사업은 2022년 8월 집중호우로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이 침수돼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서울시가 대규모 지하 빗물터널을 만들겠다며 추진하는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집중호우 피해를 막기 위한 필수 인프라지만,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지금 가격으론 재입찰을 해도 사업자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건설자재 값 인상과 고금리로 공사 비용이 대폭 오르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는 ‘국가 SOC(사회간접자본)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차질을 빚고 있다. 올해 들어 입찰을 진행한 1000억원 이상 공공사업 8건은 모두 유찰된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수도권 교통망의 핵심인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A노선의 환승센터, 국내 해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 중인 진해신항 등 모두 국토 개조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이 같은 국가 핵심 인프라 사업이 공사비 때문에 시작조차 못하는 것은 공사 비용 급등이 1차적 원인이지만, 물가 상승을 공사비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공공 발주처의 경직된 예산 편성 관행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공공 기관들은 “과거 유사한 프로젝트와 물가 변동을 참고해 사업비를 책정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며 “그나마 발주처가 책정한 사업비를 재정 당국이 무조건 일정 비율 삭감하는 관행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의 공공사업 예산 정책이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사업 지연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핵심 인프라가 제때 건설되지 못할 경우, 국가의 중장기 개발 계획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입찰 결과가 공개된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GTX-A 환승센터)도 상징성이 큰 프로젝트다. GTX-A와 C노선, 위례신사선 등 수도권 신도시들의 서울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줄 핵심 교통망이 이곳을 지나게 돼 있다. 철도가 뚫린다 해도 핵심 환승역을 이용할 수 없으면 반쪽짜리에 그치게 된다. 서울시는 2022년부터 이 공사의 시공사를 구하기 위해 수차례 입찰을 진행했으나 실패했다. 이번엔 지난번 추정했던 공사비(2928억원)보다 200억원 넘게 증액해 재공모를 했지만, 참여한 기업은 없었다.
국가 경쟁력, 도시 기능, 주거 복지 등과 관련된 핵심 인프라들이 공사비 문제에 막혀 줄줄이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이 같은 공공사업 지연은 정부가 침체된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올해 편성된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의 약 60%를 상반기 중 집행한다는 계획과도 모순된다. 특히 사업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공사비 책정 구조가 꼽히면서, 정부 스스로 정책 기조의 효과를 감퇴시키는 ‘모순’에 빠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심도 빗물터널은 서울시의 대표적인 ‘집중호우 재난 관리’ 사업이다. 2022년 침수 피해 후 서울시는 강남역(공사비 3934억원), 광화문(2432억원), 도림천(3570억원) 등 3곳을 1차 사업지로 정했다. 하지만 3곳 모두 지난 15일 마감된 1차 시공사 선정 입찰에 건설사가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아 유찰됐다. 이로써 2027년까지 완공하겠다던 서울시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진해신항은 부산시가 부산항을 2040년까지 세계 3대 항만으로 육성하기 위해 추진 중인 개발 사업이다. 하지만 공사의 첫 단추와도 같은 방파호(파도로부터 매립지 등을 보호하기 위한 제방) 공사부터 사업자를 구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공공 프로젝트의 공사비는 과거 유사한 사업의 공사비에 물가 변동을 반영해 발주처가 책정한다. 국민 세금으로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최대한 기업 이윤은 적게 배정한다. 이렇게 책정된 공사비는 기획재정부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 심의에서 관행적으로 예산이 삭감된다는 것이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 10대 건설사 관계자는 “보통 사업비의 7~10%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삭감되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고 말했다. 사업비 책정부터 공사 발주까지 2년 가까이 걸려, 그 기간의 공사비 인상분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부는 올해 SOC 예산을 작년보다 5.3% 늘어난 20조7776억원으로 편성하고 상반기 중 약 60%를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기적으로 공사비 인상이나 하락분을 반영해 시공사들이 사업을 수주하고, 일정에 따라 추진할 수 있는 예산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ditorial: S. Korea should find safer ways to protect shareholders than amending the commercial law
- DP Leader Lee Jae-myung awaits verdict with assembly seat on the line
- 서울 중구 대형마트 주말에도 문 연다…서초·동대문 이어 서울 세번째
- 대구 성서산단 자동차 부품 공장서 큰 불…5시간 만에 진화
- 멜라니아, 백악관 상주 안 할 듯…“장소·방법 논의 중”
- 금산서 출근길 통근버스 충돌사고…22명 경상
- 트럼프, 법무장관은 최측근...법무차관엔 개인 변호사 발탁
- 대기업 3분기 영업이익 34% 증가…반도체 살아나고 석유화학 침체 여전
- 손흥민 A매치 50골... 가장 많은 골을 터뜨린 나라는?
- 홍명보호, 요르단·이라크 무승부로 승점 5 앞서며 독주 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