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적 격려보다 묵직한 위로… 원로배우들의 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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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고목을 배경으로 고고(신구)와 디디(박근형)가 어깨를 맞대고 바위처럼 서 있다.
고도를 기다리던 이들 앞에 포조(김학철)와 짐꾼 럭키(박정자)가 등장하고, 네 사람은 무의미한 말을 떠들어대며 겨우 시간을 때운다.
아일랜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대표작으로 주인공 고고와 디디가 고도라는 실체 없는 인물을 50여 년간 기다리는 부조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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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이다. 아일랜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대표작으로 주인공 고고와 디디가 고도라는 실체 없는 인물을 50여 년간 기다리는 부조리극이다. 국내에서는 극단 산울림이 1969년부터 50년간 1500회가량 공연한 뒤 연극 ‘라스트 세션’ 등을 만든 파크컴퍼니가 바통을 이어받아 새롭게 제작했다. 연기 경력 도합 227년에 달하는 네 배우가 단일 캐스트로 출연한다.
공연은 단조로운 조명 아래, 음악도 없이 2시간 10분간 이어진다. 난해한 희곡대로라면 관객에게도 이는 버티기 힘든 긴 시간일지 모른다. 맥락 없는 만담을 주고받으며 관성처럼 고도를 기다리는 장면이 계속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로배우들은 ‘고도를 기다려 본’ 내공을 살려 파편화된 대화를 잘 짜인 퍼즐처럼 소화해 낸다. 나이를 믿기 힘들 정도로 울림 큰 발성과 뛰어난 암기력이 황무지 같은 무대 세트와 대비를 이뤘다.
기승전결이 없는 서사임에도 희극과 비극을 수없이 오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데에는 배우들의 공력이 큰 역할을 한다. 이완과 수축이 적절히 안배된 두 주인공의 자연스러운 연기에선 끝없는 기다림에서 비롯한 옅은 희망과 무력감이 동시에 배어났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실감하려는 듯 고고와 디디가 신발 한 켤레로 우스꽝스럽게 시간을 때우는 장면에선 연민 섞인 웃음이 객석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2시간 넘게 이어지는 이 실험적 연극을 끝까지 감내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2막 후반부는 백 마디 통속적인 격려보다 묵직한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이 짓 더는 못하겠다”는 고고의 말에 디디는 “다들 하는 소리”라고 짤막히 답한다. 객석에 앉은 우리 모두가 저마다 버티는 삶을 함께 살고 있음을 곱씹게 만든다.
다음 달 18일까지. 5만5000∼7만7000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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