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성난 백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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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가 미국에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
여신이 딛고 선 기단부에는 "지치고 불쌍한, 자유를 갈망하는 무리들. 해안에 쓰러진 가엾은 족속들을. 머물 곳 없이 세파에 시달린 이들을 나에게 보내라. 내가 황금의 문 옆에서 횃불을 높이 들리니"라는 미국 시인 엠마 라자루스의 시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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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섬 옆 엘리스 섬에는 이민자 박물관이 있다. 초기 이민자들의 입국심사를 하던 곳이다. 박물관 한쪽에 이탈리아 이민자의 이런 사연이 적혀 있다. “처음 나는 거리가 온통 금으로 덮여 있다고 해서 미국에 왔다. 내가 미국에 왔을 때 세 가지를 새로 알았다. 거리는 금으로 덮여 있지 않았고, 아예 포장조차 되지 않았으며, 내가 그것을 포장해야만 했다.” 자유의 여신상 기단에 쓰인 글귀와는 달리 고달픈 이민사를 대변한다. 미국이 이민자의 희생 아래 건설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15일 혹한 속에 아이오와주에서 치러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코커스(당원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상대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2016년 대선 때 ‘정치 신인’ 트럼프를 당선시킨 이른바 ‘성난(angry) 백인들’이 이번에도 압승을 견인했다는 평가다. 이들은 흑인·히스패닉·아시아계 등 소수 인종이 늘며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분노, 이민자 유입으로 일자리를 잃었다는 불만 등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코커스 전날 유세에서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들을 쫓아내겠다”고 하자 이들은 “당장 쫓아내라”고 외쳤다. 미 대선이 다가올수록 이런 배척의 구호가 더욱 난무할 듯싶다.
같은 날 이민자들 삶의 애환을 풍자적으로 그려낸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 8관왕을 차지했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은 수상 무대에서 “편견과 수치심은 우리를 외톨이로 만들지만, 연민과 은혜는 우리를 한데 모이게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대니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미국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다. 극단화하는 팬덤 정치에 매몰된 우리도 귀담아들을 일이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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