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포퓰리즘에 멍드는 한국경제
개혁 뒷전, 선심성 대책 고삐 풀려
재정 거덜 내고 경제 재앙 부를 것
레이건·대처 리더십 되새겨 보길
“잠재성장률을 현 2%에서 4%로 2배로 올리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내놓았던 거시경제의 핵심공약이다. 경제 책사였던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당시 “규제혁신과 노동개혁, 공정경쟁 등을 통해 시장에서 민간 창의와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이겠다”며 재정 퍼주기나 선심성 정책이 최대한 자제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집권 초기 규제혁신과 노동, 연금, 교육개혁 의지가 강렬해 보였다. 그는 ‘문재인 케어’, ‘탈원전정책’을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포퓰리즘이라며 폐기했고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같은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보수정권이 가야 할 정도를 걷는 듯했다.
어디 이뿐이랴. 윤 대통령은 공매도 전면금지,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에 이어 올 초 증시개장식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선언했다. 어제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혜택을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1400만명 개미투자자의 표심을 의식한 것 말고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이나 글로벌 스탠더드는 안중에 없다.
새해 경제정책 방향에도 세금감면·면제, 취약계층 전기요금 할인, 노인 일자리, 생계급여 인상처럼 선심성 짙은 대책이 수두룩하다. 국토교통부는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확 풀어 지은 지 30년밖에 안 된 아파트도 안전진단을 사실상 폐지했다. 기획재정부도 올 상반기 중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의 65%를 푼다. 땜질식 처방은 잠깐 통증을 멈추는 진통제에 불과하고 외려 시장왜곡과 경제 고통을 심화시킨다. 더욱이 이런 대책의 상당수는 법안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국회를 장악한 야당의 반발로 흐지부지되거나 혼란을 가중시킬 게 뻔하다. ‘아니면 말고’ 식 대책은 정부신뢰에도 큰 상처를 낼 것이다.
가뜩이나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줄곧 30%대를 맴돌고 부정평가도 60% 안팎이다. ‘타키투스의 함정’이 떠오를 정도다. 로마 역사가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는 폭군 황제를 평가하며 “황제가 시민들에게 신뢰를 잃으면 그가 하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시민의 혐오를 가져온다”고 했다.
포퓰리즘은 나라 재정과 경제를 파탄 내는 망국병이 틀림없다. 한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과 호주에 필적했던 ‘풍요의 나라’ 아르헨티나는 좌파 포퓰리즘인 페론주의의 현금성 복지 중독에 빠져 1세기 만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9차례나 국가부도사태가 벌어졌고 서민들은 살인적인 고물가와 극도의 궁핍에 신음한 지 오래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두 지도자는 국가개조 수준의 개혁으로 쇠락하는 나라를 번영의 길로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구조개혁은 고통을 수반하고 저항도 거세다. 레이건은 ‘위대한 소통가’라 불릴 정도로 설득력이 탁월했고 호감도도 높았다. ‘철의 여인’ 대처도 굳은 신념과 놀라운 화술로 정평이 나 있고 국민 신뢰가 깊었다. 두 지도자는 이런 정치자산을 밑거름 삼아 개혁의 당위성을 설득해 국민적 공감대를 넓혔다. 윤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 레이건과 대처의 리더십을 새겨보기 바란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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