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원규모 의견 왜 못 내나" vs "협상 당사자 무시"
의협, '적정 증원규모 요청'에 "醫·政간 신뢰에 찬물 끼얹어"
정부 "객관적 데이터로 논의하자면서 공식의견 못 낼 이유 없어"
2시간 회의에도 '평행선' 여전…의학교육 질 제고 논의 이어가기로
내년도 대학입시부터 적용될 의대정원 증원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정부와 의료계는 새해 두 번째 협상테이블에서 여전한 서로의 입장 차이만을 재확인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5일 '의사단체가 생각하는 적정한 의대 확대규모를 알려 달라'며 최후통첩 격의 공문을 보낸 지 이틀 만에 마주앉은 자리다.
정부는 "각계가 의대 증원 관련 입장을 표명하는 상황에서 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의견을 못 낼 이유가 없다"며 압박했고,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정 협의체에서 관련논의가 이미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화 상대를 무시한 처사라고 맞섰다.
의협은 처음부터 의대정원 확대를 밀어붙인 주체가 정부란 점에서 증원을 기정 사실로 전제한 '숫자'를 협회에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입장이다. 반면 복지부는 최소 '네 자릿수' 증원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는 시민사회계와 여론을 내세워 "이제는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와 의협은 17일 오후 4시쯤 서울 중구 소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제25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의대 정원 관련 논의를 이어갔다.
의협 측 협상단장을 맡고 있는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복지부가 예고 없이 보낸 공문부터 문제 삼았다.
양 의장은 "현재 의협이 적극적인 자세로 의대정원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시점에 정부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공문을 보낸 것은 대화와 협상의 당사자를 무시하는 행위이고 의-정 간 신뢰에 찬물을 끼얹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며 "의협은 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과연 의대정원 문제를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논의하려는 진정성과 의지가 있는 것인지 깊은 의문이 든다"며 의협은 지난해 1월부터 지속된 협의체에 매번 최선을 다해 임해 왔다고 강조했다.
복지부가 의협에 보낸 공문에는 '지역·필수의료 분야의 의사인력 부족으로 의료 공백이 심각한 수준에 달했고, 인구 고령화와 다양한 의료수요 증가로 의사인력이 더 필요해질 것'이라며 의대 정원을 신속히 확충해야 한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의협은 '의대정원 문제는 의·정 협의체에서 논의·결정돼야 한다'는 취지의 회신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답변을 거부한 셈이다.
양 의장은 "의협은 의대정원 문제에 대해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료계와 정부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하여 결론을 낼 것을 정부에 재차 요청한다"고 말했다.
또 "필요하다면 끝장 토론, 밤샘 토론을 통해서라도 의대정원에 대한 의협과 정부가 서로의 입장 및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공개하고 빠른 시일 내 의대정원 문제를 결론지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루 빨리 마무리할 것을 다시 한 번 제안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앞서 의협은 지난 10일 24차 회의 당시 증원 규모를 도출할 과학적 근거를 거듭 강조하며 복지부에 '끝장토론'을 제안한 바 있다.
정부도 2024년을 '의료개혁의 원년'으로 삼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특히 2025학년도 대입 일정을 감안할 때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의협의 적극적인 협조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9일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350명'을 적정 증원규모로 제시한 것과 관련해선 2000년 의약분업 당시 감축했던 인원을 '원상복구'하는 것 외 어떤 근거도 찾기 힘들다고 직격했다.
20여 년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5700억 달러에서 1조 7100억 달러 규모로 3배 가까이 커진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의대의 교육역량과 질(質)만 '제자리걸음'일 리는 만무하다고 선을 그었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정부가 실시한 대학별 수요조사 결과를 들어 "각 학교가 스스로 현재의 교육 역량과 발전적 투자를 통해 의대교육이 가능하다고 밝힌 규모, 즉 최소 2100여 명에서 최대 3900여 명과도 너무나 괴리가 크다"고 짚었다.
또한 "KAMC의 제안은 국민의 기대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이에 대해 소비자단체와 시민단체, 지자체에서는 2천여 명에서 3천여 명, 최대는 6천여 명까지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고 부연했다.
정 정책관은 "이런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위해서 정부가 의료계 대표단체인 의협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의협에서) 객관적 데이터를 가지고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논의를 하자고 하시면서, 공식적으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몰아붙였다.
추후 협의체 논의를 더 생산적,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의협의 공식 의견도 미리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정 정책관은 "이제는 정원 규모에 대한 논의를 가속화할 수 있도록 그간 의협 내에서 모아진 의견과 근거들을 공식적으로 제시해 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드린다"며 "정부는 의협을 비롯한 각계 의견을 모아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진지하게 토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초 시작 직후 '파행' 가능성도 거론됐던 회의는 2시간 가량 계속됐지만, 양측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복지부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필수조건'이 의대 증원임을 재차 강조한 데 반해 의협은 의사인력 재배치 및 필수의료로의 확실한 유입방안이 선결과제란 주장을 고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회의가 종료된 직후 김한숙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기자들과 만나 "협의체가 진행돼가면서 계속 파생되는 (각계의) 입장 표명들이 있잖나. KAMC가 발표한 내용도 (사회적 논의의) 물꼬를 텄다고 본다"며 "의협을 포함한 다른 단체들의 의견도 듣기 위해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의대 증원규모는) 최종적으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결정돼야 하는 사항"이라며 의협 측과 이견을 보였다.
서정성 의협 총무이사는 "정부는 '국민이 원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가 어떻다' 등의 얘기를 하는데 그럼 지역·필수의료를 위해 어디에, 얼마나, 무슨 방법으로 (늘릴 건지) 등을 제시하면서 의대정원이 이 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달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와 의협은 오는 24일 열리는 26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학교육 질을 제고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와 교수진 및 임상실습 등의 개선 논의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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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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