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도 간 CES, 재드래곤 안보인 까닭…“AI 뛰어야하는데 발목잡혀”
CES 이어 다보스까지 방문 광폭행보
‘사법리스크’ 발 묶인 이재용 삼성 회장
26일 판결 앞두고 국내서 내부일정 소화
“미래 판도 중요한 시기에 국가적 손실”
맥밀런 CEO는 월마트의 새로운 AI 챗봇을 소개하던 중이었다. 무대에 오른 나델라 CEO는 “월마트의 독자적 데이터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조합으로 차별화한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거의 동시간대 한국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행보가 포착됐다. 한국시간으로 10일 이 회장이 새해 첫 경영행보로 서울 서초구의 삼성리서치를 찾아 6G를 포함한 차세대 통신 기술 동향과 대응방안을 점검한 것이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새로운 기술 확보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있다”고 강조하며 초격차 기술 선점과 미래 준비를 당부했다. 그러나 AI가 경제·사회·안보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중대한 시기인 만큼, 이 회장이 서울보다는 글로벌 CEO들이 모이는 현장을 찾았어야 했다는 것이 산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 회장의 빈자리가 컸다는 시각이다. CES 2024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주요 국내 그룹 총수들도 참여했지만, 이 회장은 글로벌 산업계에서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기에 상징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이처럼 중대한 시점에 국내에 머무른 것은 재판에 발이 묶인 탓이다. 오는 26일 부당합병·회계부정 재판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 됐다는 해석이다. 이 회장은 2022년 회장으로 취임했던 날과 지난해 있었던 취임 1주년에도 법원에 출석했을 정도로 모든 일정을 재판을 중심으로 세우고 있다. 이 회장은 이같은 사법리스크에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로도 등재되지 못하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라면 해외에서 투자·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다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IT 업계 리더들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IT 업계의 미래 판도를 결정지을 수 있는 합종연횡이 활발한 상황에서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인 상황은 안타깝고 위험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AI시대 주도권을 잡고자 글로벌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글로벌 기업 리더들의 행보를 보면 ‘사법리스크’에 발목잡힌 이 회장의 행보는 더 아쉽다.
팻 갤싱어 인텔 CEO, 크리스티아누 아몽 퀄컴 CEO 등 AI시대 주도권 경쟁에 들어간 주요 기업 CEO들도 CES가 열렸던 라스베이거스에 이어 다보스를 찾을 예정이다. 이들 기업 리더들은 화두로 떠오른 AI와 관련해 협업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와 달리 이재용 회장은 16일 서초구에서 삼성 명장들과 오찬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국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1심 선고일까지 국내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회장은 2021년 4월 부당합병·회계부정 재판이 시작된 이후 106번의 공판 중 95회를 직접 출석했다. 불출석한 10여회도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해외 순방에 동행하는 일정들이었다. 공판 1회에 평균 6~7시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총 600여시간을 법원에서 보낸 셈이다.
이 회장의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가 삼성의 핵심 자산이자 국가 차원에서도 중요한 자산이기에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안타깝다는 시각이다. 이 회장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팀쿡 애플 CEO 등 전세계 유수의 기업 경영인들 다수와 친분을 맺고 있다. 이 회장은 도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 부자, 시진핑 중국 주석,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나렌드라 모디 총리 등 주요국 전현직 지도자들과 교류해왔다.
이 회장은 해외 네트워크를 동원해 개별 기업의 비즈니스 뿐 아니라 국가적 현안 해결에도 나섰던 바 있다. 이 회장은 2019년 일본의 반도체 부품·소재 수출 규제 당시 일본을 직접 방문해 일본 재계 네트워크를 가동하며 분쟁 조기 해소에 힘썼고, 코로나19 사태 당시 국내 백신 공급이 부족해지자 화이자·모더나 최고경영진과 직접 협상하며 코로나 백신의 국내 위탁생산을 성사시켰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미국에 22일간 머물며 20여명의 CEO를 만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공판 일정을 고려해 출장을 갈 수 있는 기간에 몰아서 최대한 많은 일정을 소화한 것이다.
김용진 서강대 교수는 “CES를 둘러보니 인공지능(AI)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도 삼성전자의 혁신 동력은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적지 않았다”며 “결국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해외에서 제대로 뛰어다니지 못하는 상황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로 계속 발목이 잡혀있다면 삼성전자의 혁신·성장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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