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문화도, 말도 어서 타세요…‘세계행’ 열차 출발합니다[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기자 2024. 1. 1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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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특별시 서울역
지난해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월20일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이 기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상행·하행 구분이 지역 차별 불러…부산행 열차는 부산행일 뿐
비둘기호 등 느린 열차 사라지며 서울말의 지역 전파도 빨라져
역사 표지판, 언어 약자 배려 부족…통일로 ‘런던행’ 가능해지길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 예정된 시간표대로 떠나야 하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1992년에 발표된 송대관의 ‘차표 한 장’, 30년 넘게 세월이 흘렀으니 이 노랫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2024년 서울역 풍경 속에 차표 한 장을 손에 들고 떠나는 이는 극히 드물어졌다. 창구에서 표를 끊고, 개찰구에서 역무원의 검표를 받고, 열차에 올라 수시로 승무원의 검사를 받고, 도착해서도 차표를 보여줘야 했던 풍경은 이제는 잊힌 지 오래다. ‘상경’과 ‘귀성’이란 말이 흔히 쓰이던 시절에는 ‘상행’과 ‘하행’ 역시 흔히 보이던 글자였는데 지금은 어디에도 없다.

길은 오고 가라고 있는 것, 그 길 중에 철도는 반드시 그 길로만 다니라고 두 줄의 선로가 깔려 있고 그 위를 크고 긴 열차가 달린다. 아무 데서나 내리고 탈 수 없으니 주요 지점마다 역이 설치되는데 수도 서울에 있는 서울역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가장 많은 노선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가니 가장 많은 사람이 오고 간다. 사람이나 화물 등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말과 문화를 비롯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열차를 타고 오고 간다.

‘한양’에서 ‘서우얼(首尔)’까지

서울은 아주 오래전부터 서울이었다. 이 땅이 조선의 도읍으로 정해지고 ‘한양(漢陽)’이란 한자 지명이 붙여지기도 했지만 민간에서는 자연스럽게 서울이라 불렀다. ‘서울’의 어원을 신라의 수도 경주의 옛 이름인 ‘서라벌’에서 찾기도 하고 서울이 한 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하니 ‘대한민국의 서울은 서울’이란 말장난도 가능하다. 어찌 되었든 오늘날의 서울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자 가장 많은 열차가 목적지로 삼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가? 서울로 향하는 열차는 ‘상행(上行)’이고 서울에서 다른 모든 지역으로 떠나는 기차는 ‘하행(下行)’이니 이런 엉뚱한 질문이 가능하다. ‘북상(北上)’과 ‘남하(南下)’라는 말도 흔히 쓰이니 같은 맥락에서 ‘북쪽은 남쪽보다 위에 있는가?’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임금이 계신 곳, 흔히 지도상에서 북쪽이 위쪽에 놓이다 보니 관습적으로 쓰이게 된 말들이다.

그러나 적어도 2024년의 서울역에서는 상행과 하행이란 단어가 보이지 않아 마음이 놓인다. 위는 좋은 것, 아래는 나쁜 것이란 이분법에 따르면 서울이 아닌 모든 지역, 그리고 상대적으로 남쪽에 있는 지역은 소외되고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남쪽의 부산과 여수로 가는 열차는 그저 ‘부산행’과 ‘여수행’일 뿐이고 북쪽의 행신으로 가는 열차 또한 ‘행신행’일 뿐이다. 이래야 비 내리는 호남선의 남행열차와 고래 잡으러 동해로 떠나는 기차 여행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열차는 국적을 불문하고 이용할 수 있으니 외국인들을 위한 서울의 표기가 흥미롭다. 한·중·일 삼국이 한자를 공유하고 있어 ‘漢陽(한양)’ ‘京城(경성)’ ‘漢城(한성)’으로 쓰고 중국과 일본식 발음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서울이 ‘경성’이었고 중국에서는 한때 서울을 ‘漢城’의 중국식 발음인 ‘한청’으로 부르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아니다. 중국 사람은 ‘서우얼(首尔)’로, 일본 사람은 ‘소우루(ソウル)’로 부른다.

로마자로는 ‘Seoul’로 통일되어 있는데 이 표기의 역사가 재미있다. 우리는 이 표기가 ‘Seo-ul’로 분절된다고 여겨 로마자 표기법에서도 ‘어’를 ‘eo’로 적는데 이건 우리의 오해다. 이 표기를 고안한 것은 프랑스 사람이고 프랑스 사람들이 ‘울’을 ‘윌’이 아닌 ‘울’로 발음하도록 ‘Se-oul’로 적은 것이다. 이리 적어도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세울’이 되고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소울’이 된다.

서우얼과 소우루, 그리고 세울과 소울이 정확히 ‘서울’로 발음되는 길은 단 한 하나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전 세계를 누비게 되는 그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문화를 동경해 서울로 몰려들 때 비로소 그들 스스로 서울의 바른 발음을 찾게 될 테니 말이다.

열차의 속도는 표준어의 전파 속도

서울역에서 열차가 무더기로 사라졌다. 비둘기처럼 다정하게 작은 간이역마저도 빼놓지 않고 달리던 비둘기호, 통일을 향한 염원을 담았다지만 반도의 남쪽만을 달렸던 통일호 열차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비둘기호는 2000년에, 통일호는 2004년에 운행이 종료되었다. KTX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고속열차가 달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느린 열차들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열차들은 향수와 함께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비둘기호 열차는 사람뿐만 아니라 각지의 말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열차였다. 서울을 떠나 수원쯤 지날 때면 깍쟁이들의 말투가 들리다가 천안 어름에 다다르면 열차만큼이나 말이 느려 터져진다. 대전을 지나 추풍령을 넘으면 오르내림이 심한 말이 들리기 시작하다 더 남쪽으로 가면 ‘어데 가노?’와 ‘서울 가나?’와 같이 의문의 말끝 ‘나’와 ‘노’가 구별되지만 ‘살’과 ‘쌀’의 발음이 구별되지 않는 말이 오고 간다. 그리고 대전에서 서쪽으로 꺾어 금강을 건너면 ‘진한 말, 징한 말, 짠한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러나 두 시간 반 안에 부산에, 세 시간 반 안에 여수에 도착하는 고속열차는 중간의 작은 도시들을 죄다 무시하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종착지를 향해 달린다. 사람과 화물은 빨리 가서 좋다지만 이 속도만큼이나 서울말, 혹은 표준말이 달리니 이 땅의 모든 말에 빠르게 변화가 나타난다. 여기에 고속열차보다 훨씬 더 빠른 전파까지 더해져 서울말이 사방에 퍼져 나가 각 지역의 고유한 말을 밀어내게 된다.

각 지역 고유의 말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방언 소멸을 염려한다. 방언 소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지방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이니 이와 맞물린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기울어진 기차역의 문제이다. 기차는 여행객들을 위한 것이고 여행은 떠났다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상행선’을 탄 이들은 돌아오지 않고 ‘하행선’을 탄 말들은 각 지역에 눌러앉는다. 어쩌다 ‘귀촌’이나 ‘귀어’를 한 이들은 서울말까지 싸 들고 내려와 퍼뜨린다.

그러나 고속철도의 시대에는 방언은 물론 이 땅의 모든 말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방언은 서울말과 다른 말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쓰고 있는 말이다. 기차와 전파를 타고 온 말, 그리고 돌아온 이들의 말이 섞여도 그 지역의 말은 곧 방언이다. 외려 서울말이나 표준말과 달라야 한다고 믿는 것이 편견이다. 말은 박물관이나 민속촌에 가둘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니 고속철도의 시대에도 방언은 여전히 살아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고객을 위한 배려?

서울역은 친절하다. 문명의 이기를 잘 따라가고, 어려운 우리말도 알고, 외국어도 좀 읽을 줄 아는 ‘고객’에게는 표를 사고, 열차를 타고 내리고,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플랫폼의 따뜻한 ‘고객 대기실’은 찾아가 편안하게 열차를 기다릴 줄 아는 ‘고객’에게는 괜찮지만 ‘교통 약자’이자 ‘언어 약자’인 ‘승객’에게는 불친절할 수밖에 없다.

기차를 타려는 이들은 승객이지 물건을 사려는 고객이 아니다. 잠깐의 착오로 승객 대신 고객을 썼다고 보기에는 서울역 전체가 상업성과 너무 밀착돼 있다. ‘Connect Place’ ‘Station Zone’이 ‘Renewal Open’을 했다고 안내판에 쓰여 있는데 고객이 아닌 승객은 어찌해야 하는가? ‘Namanecard와 함께 Namane Station 가자’라고 쓰인 커다란 안내 부스가 있는데 ‘나만의’가 아닌 ‘우리의’ 승객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역사 곳곳에 교통 약자를 위한 배려는 보이는데 언어 약자를 위한 배려는 부족해 보인다.

이런 안내판을 붙인 이들은 어차피 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객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만의 카드’는 ‘우리 모두의 카드’가 되어야 승객 모두가 편안할 수 있다. 게다가 ‘Let’s Korail 여행센터’는 틀림없이 승객들을 위한 공간 아닌가? 이와 반대의 불편함을 한국어를 모르는 이들은 더 크게 느낄 것이다. 이들 또한 대한민국의 고객이자 서울역을 찾는 승객이니 균형 잡힌 배려가 더 필요해 보인다.

“오호차특씰팔에이삐”, 플랫폼까지 배웅 나온 딸이 부산행 열차를 타기 직전까지 팔순이 넘으신 듯한 부부에게 암호처럼 알려준다. ‘5호차’ ‘특실’ ‘8’까지는 다 읽으실 줄 아는데 ‘A’ ‘B’가 문제인 듯하다. 이분들을 위해 ‘ㄱ’ ‘ㄴ’ 또는 ‘가’ ‘나’로 바꾸어야 할까? 아니다. 그리하면 외국에서 오는 고객들이 낭패를 본다. 비둘기호가 아닌 KTX가 다니는 시대이니 이분들도 KTX와 같은 알파벳을 읽고 간단한 회화 정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옳다. 이제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마을에 필요한 것은 한글학교가 아닌 영어학교다.

정동진역에서 두 칸짜리 비둘기호를 떠나보내는 역무원(위 사진)과 익산역을 떠나는 구형 새마을호 1160편 장항선 열차. 경향신문 자료사진·연합뉴스

유라시아 열차의 출발역을 꿈꾸며

‘들어가는 곳’과 ‘나오는 곳’, 서울역을 비롯한 모든 역은 이론적으로는 들고 나는 이의 숫자가 같아야 하니 출입구마다 이 문구가 보인다. 그런데 드나드는 사람의 숫자에서 제외되는 이가 있으니 “역 시설에서 노숙 행위를 금지합니다!”란 문구 아래에 자리를 잡은 노숙인들이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 머무는 안타까운 이들이다. 이들에 대한 대책은 복지 행정에 잠시 미루고 ‘노숙(露宿)’이 아닌 ‘정좌(井坐)’, 즉 우물 안 개구리로 앉아 있는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본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론적으로 부산에서 런던까지 가는 기차표를 끊을 수 있었다. 북녘의 지도자는 중국 대륙을 기차로 종단해 베트남까지 가기도 했다. 휴전선이 가로막지 않는다면 북행열차를 타고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널 수 있다. 이곳에서 다시 북행을 택해 만주벌판을 지나 흥안령 산맥을 넘으면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될 수 있고 남행하면 유라시아 대륙 어디든 갈 수 있다. 하늘길과 뱃길뿐만 아니라 서울역의 기찻길을 통해 들고 날 수 있는 날이 꼭 와야 하는 이유이다.

필자 한성우



한국어의 방언과 말소리를 연구하는 국어학자이다. 삶 속의 말과 글을 쉽게 이해하고 깊게 생각하도록 돕는다.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박사까지 마쳤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어규범정비위원회 위원이며, 한국방언학회 수석부회장이다. 문화방송(MBC) 우리말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방언정담> <우리 음식의 언어> <노래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꿈을 찍는 공방> <방언, 이 땅의 모든 말> 등의 책을 썼다.

한성우 국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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