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대학 무전공 입학을 바라보는 시각

기자 2024. 1. 1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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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부는 2025학년도 대입 모집부터 일정 비율 이상을 전공자율선택(혹은 무전공)으로 선발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당해의 경우 모집정원 중 무전공 입학자 수가 20%(수도권) 혹은 25%(지방국립대)를 넘는 대학들에 대해서 대학혁신지원사업 예산 중 4426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 정책은 두 가지 요구가 서로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하나는 학생들이 입학 후 좁은 학과 단위 안에 갇혀서 폭넓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며, 다른 하나는 교수와 학과들이 학생을 인질로 삼아서 자기 변신을 소홀히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발빠른 대학개혁을 지체시키고 있다는 의심이다. 한편에서 학생들은 점수에 맞추어 적성에도 없는 학과에 꾸역꾸역 입학한 후 전과 등의 기회를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대학 차원에서 볼 때에도 새로운 수요에 따른 적절한 학과 정원 조정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전체 학생 중 최소한 3분의 1이 졸업 이전에 전공을 변경한 경험이 있으며, 대학도 수요가 넘쳐나는 전공에 대한 증원 요구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에서는 2000여명 입학자 가운데 컴퓨터 공학 전공자가 700명이 넘는다. 반면, 서울대학교의 동 전공자 수는 10년 전에 비해 크게 증가하지 못했다.

다른 건 몰라도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을 찾아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원칙만큼은 부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 구체적 시행에 있어서 전공 진입을 경쟁 없이 완전 자율에 맡기도록 한 교육부의 원안이 현실적인지는 따져볼 문제이다. 비교적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내가 보기에도 경쟁 없는 전공 진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미리 수용 가능인원을 조정해야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해당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전공기초과목들을 충분히 학습하였는지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객관적 기준 없이 선호도로만 결정한다면 대학 전체가 매년 크게 출렁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전공 진입에 필요한 전공기초과목 이수 성적이 진입의 중요한 선발 잣대가 된다. 또한 전공 진입 단계에서 경쟁을 유지하는 것이 입학 시점에서의 경쟁을 분산시킬 수 있는 버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 무전공 입학자 수가 전체의 20~30%에 이르기만 하더라도 학생 쏠림 현상이 만드는 내부적 출렁임은 대학 내 기존의 안정성과 균형점을 상시적으로 흔들어 놓게 될 것이다. 무전공 제도의 목적은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 수요의 방아쇠를 통해 대학 전공의 개설과 증원 문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자기조절과 변화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학은 마치 스스로의 창발적 변화를 모색하고 진화하는 생물과 같아야 한다. 생명체의 균형은 죽은 사물의 고정된 균형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하는 가운데 획득되는 비균형의 균형이며, 이 균형점의 변화가 결국 생명체를 활동하게 하고 진화하게 한다. 이런 차원에서 대학 안에서의 불안정성의 증가를 오히려 진화의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기학과의 질 저하 및 비인기학과의 고사를 막을 수 있는 방책 또한 요구된다. 각기 전공을 찾아 떼로 이동하는 학생들로 인하여 갑자기 불어난 전공들의 교육의 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인기학과 프로그램의 질을 유지하고 지원해야 한다. 수요에 대한 공급의 미스매치 현상은 언제나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대학들은 이런 변화에 민감할 필요가 없었다.

우선, 인기학과의 질 저하는 시간을 두고 투자를 통해 점차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니 상대적으로 심각한 것은 아니다. 반면, 비인기학과의 존폐에 관한 문제는 보다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비인기학과는 곧 대학에서 축출된다는 도식부터 깨야 한다. 지금까지 전공 프로그램 폐지는 곧 학과의 존폐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늘 강한 저항에 직면했다. 이러한 저항 탓에 학과의 신설이나 폐지 등이 쉽지 않았고, 늘 새 전공은 협동과정이나 연계과정이라는 임시변통적인 방법으로 신설되어야 했다. 차제에 ‘전공’이라는 개념을 ‘학과’라는 개념에서 분리하는 발상적 전환이 필요하다. 향후 지원자가 줄어드는 비인기 학과들의 경우 학부 전공은 폐지하되 학과 자체는 대학원 수준에서 강력하게 지원함으로써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전공을 복수의 학과들이 공동으로 개설하게 함으로써 비인기학과들이 인기학과와 함께 연계교육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는 파트너로 기능할 수 있도록 대학 전체 차원에서의 융합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필요도 있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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