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 K팝, 냉소가 늘고 환상은 줄었다
2023년 K팝 산업을 이렇게 한 줄 평하고 싶다. “냉소가 늘고 환상은 줄었다.” 미국 대중문화 평론가 척 클로스터만의 책 <90년대>에서 1994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구단주와 선수단 간 이권 다툼이 파업으로 번지며 세계대전 때도 치러진 월드시리즈가 취소된 정황을 소개하며 쓴 표현이다. 팬들에게 상처를 입히며 팬들의 냉소를 자아내고, 환상은 앗아간 이 사건으로 메이저리그의 인기는 한동안 시들했고, 미국인의 삶의 양식으로 신화화된 야구의 이미지도 완전히 바뀌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2023년 K팝 산업의 사정은 훨씬 안 좋았다. 소비자의 냉소는 그 어느 해보다 컸고, 환상은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다. 많은 기획사가 글로벌 데뷔 팀을 꾸리고, 영어 음원을 발표하며 K팝에서 ‘K’를 떼려는 시도를 했지만 실제로 지워진 것은 ‘K’보다는 ‘팝(음악)’이었다. 작년 K팝 업계의 가장 큰 빅딜이었던 SM 인수전은 승기를 잡은 카카오의 시세조종 혐의로 투자총괄대표가 구속기소됐고, 피프티피프티의 전속계약 파기 사태까지 연달아 터지며 K팝 경제모델의 타락한 단면을 노출했다.
가장 냉소를 자아낸 사건은 독과점 구조의 탄생이다. 야구와 달리 명확한 룰도, 심판도, 직관 관중도 없는 이 머니게임은 재벌 기업에 비유하면 일종의 지배구조 개편을 이뤘다. 지주회사 격은 단연 하이브였다. 인수전에서 발을 뺀 것을 계기로, 자회사인 K팝 온라인 상거래·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에 SM이 입점하며, 소속 가수가 아님에도 하이브가 수익을 내고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위버스에 모든 K팝 아티스트가 입점한 것은 아니지만, 하이브가 K팝 전체의 가격과 표준을 정하는 지위를 차지하게 된 건 자명해 보인다. 독과점만이 문제는 아니다. K팝 간판 회사들의 부실과 정직하지 못한 경영 풍조 확산으로 산업 전체의 리스크가 높아졌다. 먼저, 하이브는 1조원 규모 인수·합병에 또다시 실패하며 방만 경영 실태를 보여줬다. 앞서 2021년, 1조2000억여원을 들여 미국의 종합 미디어 기업 ‘이타카홀딩스’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지만, 핵심 IP였던 아리아나 그란데와 저스틴 비버 등이 떠나며 실패한 인수·합병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하이브 등 대형 기획사들은 1년 내내 경마 중계하듯 역대 최고 분기실적을 홍보했지만, 실적지표의 주축이었던 앨범 판매량이 실제와는 다르다. 써클차트 기준, 2023년 ‘앨범차트’에서 100만장 이상 판매됐다고 집계된 단일 앨범은 총 34장이지만, 이는 출하량을 기준으로 한 수치다. 실제 판매량만 따진 ‘리테일앨범차트’에서 100만장 이상 팔린 앨범은 8장밖에 안 된다. 음악 시장이 스트리밍으로 옮겨간 시대에 실물 앨범 판매량을 핵심 성장지표로 삼는 자체가 현재 K팝 산업이 얼마나 독선적이고, 고립된 시장 형태를 가졌는지 보여준다. 환상을 자본으로 하는 산업이 제 손으로 그것을 해치며, 재무제표에는 드러나지 않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기도 했다. K팝 산업의 곪은 문제였던 팬 상대 경호원 폭행, 턱없이 높아져 가는 콘서트와 굿즈 가격 등에 대한 소비자의 비판이 지난해 유독 거세게 터져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K팝은 ‘탈K’ 할 수 있을까? 세계로 뻗어나갈 매력과 실력을 가진 아티스트가 많지만, 당분간은 어려워 보인다. K를 떼기 위해선 먼저 ‘팝은 무엇인가?’에 대한 파격적인 재정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굳어진 상식을 부수고 미래를 제시하는 역할은 역사적으로 참신하고 순수한 도전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2024년 현재 K팝 산업은 이 질문을 던지기에 너무 낡고 구태스러워 보인다.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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