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안부를 건네는 분투에 앞서
셈을 해보니 일주일에 한 번꼴로 서울이라는 내 생활권을 벗어난다. 여러 지역에서 여러 이야기를 그러모아 글로 풀어내는 일이 내 직업이다.
사람과 장소, 문화적 유산에 이르기까지 대상과 영역이 꽤 방대한데, 이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지역성’을 토대로 이야기를 엮는 데 있다. 지역성이라는 말이 따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다른 지역과 구별되어 나타나는 한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가리켜 지역성이라 한다. 나는 이 지역성에 줄곧 기대를 갖고 기대어왔다. 지역의 매력을 발견하는 일 자체도 재미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컸다.
지난가을께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라는 책을 펴냈다. 춘천문화재단과 고성의 바닷가 마을에서 책을 만드는 출판사 온다프레스가 춘천이라는 지역을 놓고 오늘날 지역 담론의 화두인 ‘로컬’의 본질을 탐구해보자는 취지로 기획한 출판 프로젝트에 집필을 제안받았다. 그간의 작업들과 같은 결이기도 하거니와 오랫동안 서울과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고민해왔기에 나는 춘천의 지역성을 살펴보는 동시에 내 삶의 새로운 근거지로 춘천이라는 지역을 가늠해보기로 했다. 미리 고백하건대 이 글은 반성문이다.
우연히 발견한 현수막에 호기심이 일어 작정하고 취재에 나선 날이었다. 현수막에는 “매일 오전 5시 이곳에서 새벽시장이 열립니다” 하는 문구가 나풀대고 있었다. 오일장으로 운영되는 춘천풍물시장 자리라고는 했지만 고가로 설치된 경춘선 복선전철의 하부 공간은 평소 한낮에도 이렇다 할 유동 인구가 없어보였다. 더구나 오전 5시라면 새벽시장에 나서기보다 새벽배송으로 주문한 상품이 문 앞에 쌓이는 쪽이 내게는 훨씬 자연스러운 시간대다.
반신반의하며 찾아간 새벽시장은 봄에서 가을 오일장이 열리는 날을 제외한 날에 지역의 농가에서 수확한 것들을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로 운영되고 있었다. 상설시장이 열려도 무방한 공간인데 장날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까워서 춘천시와 상인회가 힘을 보태 일련의 등록 절차를 거친 지역의 소규모 농가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시장을 구경하다가 춘천 도심에 연중 새벽 장보기가 가능한 시장이 몇 곳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양강변의 춘천번개시장이 원조 격이고, 가장 활성화된 곳은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후평동과 석사동 경계에 난전 형태로 형성된 애막골새벽시장이다.
춘천은 댐 건설로 ‘호반의 도시’라는 낭만적인 수식을 얻게 됐지만 오랫동안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이 제한됐다. 이는 지역발전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했다. 춘천 사람들은 이러한 여건 속에서 도농복합도시의 성격을 띠게 된 춘천에 특유의 공동체 의식이 형성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 공동체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 가운데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믿고 소비하는 생활문화가 있고, 도심 내 다수의 새벽시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더욱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형할인마트의 출현, 온라인 장보기의 보편화 등 불가피한 환경 변화로 춘천의 새벽시장도 그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내가 만난 대다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천의 새벽시장이 오래도록 그네들 곁에 남아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더라는 점이다.
춘천의 새벽시장은 내게 지역성, 그러니까 지역의 서사를 만드는 주체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케 했다. 그러곤 묻게 했다. 나는 어디에서 어떤 서사를 만들고 있는지를. 이제 와 스스로 딱히 지역성의 주체가 되어본 적 없이 그저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벗어나기만을, 다른 어딘가를 저울질하기 바빴다는 것을, 그리하여 누군가가 애써 만든 매력적인 지역 서사에 무임승차하려는 심보가 있었음을 알아챈다.
해를 넘기며 몇 가지 다짐한 것이 있다. 동네를 자주 어슬렁거릴 것, 단골 가게를 만들 것, 그리고 안부를 건네는 이웃이 될 것.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분투하는 날들을 보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나요?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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