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환의 진화의 창] 음모론과 가짜뉴스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 사건은 민주당원이 휘두른 나무젓가락에 목이 세게 눌린 자작극이다.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마약 의혹 수사는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덮기 위한 공작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당이 내려보낸 고정간첩이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2012년 대선은 투표지 분류기를 조작한 부정선거다.
안타깝게도 괴담, 악성 루머, 가짜뉴스는 전 세계를 어지럽힌다. 다시 예를 들자. 코로나19 백신은 빌 게이츠가 사람들에게 마이크로칩을 몰래 심어서 조종하려는 술책이다. 미국 민주당은 워싱턴DC의 피자가게 지하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한다. 9·11 테러는 미국 정부가 저지른 내부 소행이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허구다. 지구는 공 모양이 아니라 평평하다.
왜 사람들은 이처럼 터무니없는 유언비어에 휘둘릴까?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정답’은 이렇다. 대중은 본래 어리석어서 남의 말에 잘 속아 넘어가기 때문이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배우 백윤식이 말한 명대사가 있다. “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입니다. (중략)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대중은 우매해서 (물론 자신만 빼고) 남의 말을 너무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은 오랫동안 인지심리학과 사회심리학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이를테면, 길이가 다른 세 선분 가운데 주어진 선분과 길이가 같은 것을 고르는 쉬운 문제를 줬을 때, 다수가 먼저 특정한 오답을 고르면 참여자는 눈을 멀뚱히 뜬 채 엉터리 오답을 그대로 따른다는 동조 실험이 유명하다.
그러나 ‘대중은 원래 잘 속아 넘어간다’는 일반적인 통념은 틀렸다. 장구한 인류의 진화 역사를 보면, 남이 하는 말이라면 무턱대고 참말로 믿었던 조상은 성공적으로 자손을 남기지 못했다. 호구로 찍혀서 남들에게 실컷 이용만 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번식에 도움이 될 만한 양질의 정보를 잘 골라내고, 미심쩍은 저질 정보는 피했던 조상의 직계 후손이다(외부의 실재를 100% 정확하게 반영하는 정보가 아니라, 먼 조상의 번식을 높였던 정보임에 유의하자). 대중은 우매하다는 연구 결과들은 대부분 과장되었다. 정치 선동가, 설교자, 광고 기획자, 선거운동원 등 실생활에서 일반 대중을 설득하려 애쓰는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폭삭 망한다.
진화적 시각을 따르면, 대중은 별로 어리석지 않다. 이는 첫머리에 제기한 문제를 더 풀기 어렵게 한다. 왜 남의 말에 잘 설득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음모론과 가짜뉴스에 빠져드는가?
첫째, 앞으로 닥칠 위협과 관련된 정보는 우리의 마음에 설치된 방호벽의 높이를 낮추어 마음속에 들어온다. 인류의 조상은 살면서 포식동물, 전투, 자연재해, 전염병, 독소 등 수많은 위협과 맞닥뜨렸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죽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지나치게 조심하자. 특히 ‘복어알을 먹으면 죽는다’처럼 치명적인 위협에 대한 경고는 복어알을 직접 먹고 그 진위를 시험할 수도 없다. 그저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죽는다’처럼, 대다수 괴담과 가짜뉴스는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커다란 재앙이 벌어지리라고 경고한다. 야당 대표가 칼에 찔렸다는 자작극을 능숙히 연출할 정도로 거대한 악의 세력이 있음이 분명한데, 애국 시민이 분연히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노파심에서 덧붙이면, 이 문장은 내 생각이 아니다)?
둘째, 마음속에 들어온 어떤 믿음은 자신이 현재 소속된 집단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동료들에게 알리는 ‘충성의 배지’가 되기 때문에 구성원들 사이에 전파된다. 인간은 공통의 목표 달성을 위해 한 팀을 이뤄 경쟁 팀을 물리치려는 연합 심리를 진화시켰다. 좌우 정파, 직장 내 파벌, 조기 축구팀, 중·고교 일진, 교전 당사국 등이 그 예다.
내가 우리 부족에 정말 충성하고 있음을 입증할 방법은 무엇일까? 한 가지 방책은 터무니없고 비합리적이어서 오직 부족 내에서만 통용되는 견해를 선뜻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군가 ‘지구가 평평하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면 대다수 외부인에게 웃음거리가 되기 쉽다. 하지만 평평한 지구 학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충성스러운 회원으로 인정받아 지위가 높아진다. 극단적인 믿음일수록 오히려 부족에 대한 충성을 더 효과적으로 알리는 신호가 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서늘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음모론과 가짜뉴스에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는 다음에 이야기하자.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무료 공영주차장 알박기 차량에 ‘이것’ 했더니 사라졌다
- ‘블랙리스트’ 조윤선 서울시향 이사 위촉에 문화예술계 등 반발
- 최동석 ‘성폭행 혐의’ 불입건 종결···박지윤 “필요할 경우 직접 신고”
- 미납 과태료 전국 1위는 ‘속도위반 2만번’…16억원 안 내고 ‘씽씽’
- 고작 10만원 때문에…운전자 살해 후 차량 불태우고 달아난 40대
- 평화의 소녀상 모욕한 미국 유튜버, 편의점 난동 부려 검찰 송치
- “내가 죽으면 보험금을 XX에게”···보험금청구권 신탁 내일부터 시행
- 경북 구미서 전 여친 살해한 30대…경찰 “신상공개 검토”
- 가톨릭대 교수들 “윤 대통령, 직 수행할 자격 없어” 시국선언
- 김종인 “윤 대통령, 국정감각 전혀 없어” 혹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