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 자생식물 이야기〈20〉 고욤나무(Diospyros lotus L.)
'감쪽같다’는 순수 우리말이 있다. 꾸미거나 고친 것을 전혀 눈치 챌 수 없을 때 ‘감쪽같다’는 표현을 쓴다.
원하는 나무의 가지를 잘라 다른 나무의 줄기에 붙이는 것을 접붙이기라고 한다. 접붙이기를 해도 접을 붙인 가지의 성질이 그대로 이어진다.
감나무는 종자를 받아 키우면, 작은 열매가 달리는 등 본래의 우수한 형질이 사라지므로, 고욤나무 줄기에 감나무 가지를 접붙여서 지속적으로 큰 열매가 달리게 한다.
접을 붙이고 한 두 해가 지나면 접을 붙인 흔적이 흐릿해지면서 원래 한 나무였던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래서 어떤 일의 흔적이 남지 않을 때 감접을 붙인 것 같다고 하여 ‘감접같다’라고 한 것이 ‘감쩝같다’로 된소리가 된 다음 ‘감쪽같다’로 변한 것이다.
국내 자생 감나무과에는 감나무와 고욤나무가 있다. 과실수로 흔히 재배하는 감나무는 추위에 약한 편이다. 고욤나무는 감나무에 비해 추위에 강하고 씨앗으로 묘목을 생산하며 생장이 매우 빠르다. 이러한 장점을 이용하여 감나무를 접붙일 때 대목(접을 붙이는 나무)으로 고욤나무를 쓴다. 한편, 감나무 씨앗으로 생산한 묘목을 키우면 고욤처럼 열매가 작게 달린다.
고욤나무(Diospyros lotus)는 중국, 대만, 일본에 분포하며, 국내에선 경기도 이남에 두루 분포한다. 낙엽활엽관목이며, 높이 15m 정도로 높게 자란다. 잎은 어긋나며, 타원형이다, 꽃은 암수딴그루로 5~6월에 연한 녹색으로 피며, 새가지 밑부분의 잎 겨드랑이에 달린다, 열매는 장과로 둥글며 지름 1㎝ 정도로 노란색에서 흑색으로 변하면서 10~11월에 익는다.
재배특성 및 번식방법
내한성이 감나무에 비해 강하며, 토심이 깊고 배수가 양호한 비옥한 사질양토에서 잘 자란다. 암수딴그루이므로 결실을 기대한다면, 암나무와 함께 수나무도 섞어 심도록 한다. 실생 또는 삽목으로 증식할 수 있다.
10~11월경 성숙한 열매를 채취하여 과육을 제거하고, 물에 1~2일 침지 후 파종하면 발아가 촉진된다. 과육을 제거하지 않는 경우라면, 노천매장을 활용해도 좋다. 늦가을에 노천매장했다가 이듬해 봄에 꺼내면 과육과 종자가 쉽게 분리된다.
분리된 종자를 파종상에 본파종하면 발아를 촉진할 수 있다. 삽목의 경우, 경화가 완료된 줄기 보다는 5~6월경 새로 나온, 적절하게 굳은 가지를 삽수로 쓰는 것이 좋다. 뿌리삽목도 가능한데, 굵은 뿌리에 작은 뿌리가 달린, 실한 뿌리를 10㎝ 정도로 잘라서 삽수로 쓴다.
원예·조경용
예전에는 마을 어귀나 집 옆에 10m가 훌쩍 넘는 키큰 고욤나무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 쉼터를 제공하는 정자목으로, 겨울이면 달디 단 홍시를 내어주는 유실수로 역할을 했다,
그 흔하던 나무가 개발을 하면서, 집을 신식으로 개조하면서 아름드리 채로 베어져 나갔다. 은행나무, 왕벚나무,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위주로 조성된 가로수길은 단조롭다. 고욤나무는 노랑색 단풍잎, 주황색에서 검은색으로 익어가며 한겨울 폭설에도 고집스레 매달리는 열매 등 볼거리가 적지 않다, 가로수, 공원수로 적극 활용해 볼 일이다.
식·약용
봄, 여름에 수확한 잎은 말리거나 덖어서 차로 이용한다. 고욤나무 잎에는 비타민C가 사과, 레몬, 귤 보다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떫은 맛을 내는 탄닌 성분은 지방 분해와 노폐물 흡착?배출을 도와서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며 고혈압에 좋다고 한다.
다만, 탄닌 성분을 많이 섭취하면, 변비가 오기 쉽고 칼슘 흡착 및 배출을 통해 빈혈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지나친 섭취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고욤나무 열매를 군천자(君遷子)라고 하며, 차로 마시면 당뇨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호박, 배, 도라지와 마찬가지로 고욤나무 열매로 즙을 내어 음복하기도 한다,
필자가 현장업무를 주로 보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산간양묘장 둔턱에도 고욤나무가 심겨져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눈속에서 꿋꿋하게 매달려 곶감처럼 익어가는 고욤 열매를 만난다.
어릴 적 함박눈이 쏟아지면 동무들과 뛰놀다 허기지면 고욤나무 가지를 꺽어서 달려있는 고욤 곶감을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유년시절의 기억이 더해져서 내게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열매는 고욤 곶감이다, ‘그 시절의 동무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에 그리운 친구들을 호명하면서 얼굴을 떠올려본다.
글을 쓰면서 잊고 지내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해 준 고욤나무에게 감사하다. 마음을 조금만 낮추면 감사한 일들이 많아진다, 열매를 내어주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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