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여전한’ 트럼프 현상

손제민 기자 2024. 1. 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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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Trumps Hate.” 2016년 미국 대선 현장에서 이 구호를 접하고 잠시 멈춰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trump’는 명사가 아니라 ‘이기다’라는 동사로 쓰였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이주민·여성 혐오 조장과 대비돼 꽤 근사한 구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해 대선에서 ‘증오가 사랑을 이겼다’.

8년이 흘러, 트럼프는 다시 아이오와주 공화당 경선에서부터 압도적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엔 그의 대선 가도에 90가지 이상 법 위반 혐의가 장애물로 버티고 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을 지도 모른다는 ‘패배주의’가 팽배하다. 8년 전 언론들이 결과 예측에 실패한 악몽 때문일까. 하지만 솔직히, 화면으로 본 트럼프는 예전같지 않다. 8년 새 얼굴 탄력이 줄었고, 목소리에도 힘이 빠졌다. 11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재대결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결과를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다. 세계 각국이 벌써 ‘미국의 후퇴’에 대비하는 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이번에도 가장 곤란에 처할 대상은 미국 내 소수자들과 그나마 충분치 않은 전 세계 기후위기 대응이 될 것 같다. 트럼프의 재기가 전 세계 극우 포퓰리즘을 선동하리라는 점도 암울하다.

왜 또 다시 트럼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 됐을까. 3년 전 트럼프 연임을 저지하고 “미국이 돌아왔다”고 한 바이든의 다짐이 금세 환멸로 바뀐 것과 관계있지 않을까 싶다. 바이든 재임기 세계 곳곳이 말 그대로 전쟁터가 됐고, 미국은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미국 국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이 시점에 8년 전 트럼프의 반대편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주류 문턱을 넘지 못한 또 한명의 아웃사이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기억하고 싶다. 샌더스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여전하다. 유대인인 그는 지난 16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며 상원에 미국의 이스라엘 무기지원 중단 결의안을 제출했다. 72 대 11로 부결됐다. 승산이 없음에도 옳다고 믿는 것을 계속 말하고 행동하는 것, 미국의 희망은 그런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사랑이 증오를 이긴다’던 그 시민들이 희망을 잃지 않기 바란다.

오는 23일 미국 뉴햄프셔주 공화당 경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지지자들이 16일 뉴햄프셔 앳킨슨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베트남계 미국인들, 트럼프가 미국을 또다시 구원한다’고 쓴 펼침막을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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