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민주주의가 증발된 민주당

김세희 2024. 1. 17. 18: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저를 포함한 오랜 당원들에게 이미 '낯선 집'이 됐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지난 11일 24년 동안 몸 담았던 당을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의 말대로 지금의 민주당은 너무나도 생소하다. 포용과 통합의 '김대중 정신'은 실종됐고, 극단화의 역설에 빠졌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대화와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당이라는 이름조차 어색하게 다가온다.

어느덧 집단린치도 불사하는 전체주의만 남았다. 이재명 대표의 뜻을 조금만 거슬르거나 그에게 불리한 발언만 해도 강성 지지층(개딸)은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행사한다.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이원욱 의원이 받았던 문자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강성 지지층은 이 의원의 휴대전화에 "현수막에 이원욱 얼굴 사진 거니 더 역겹습니다. 나대지마세요" "인간쓰레기. 민주당 탈당하세요" "해당행위 하는 쓰레기"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문자로 보냈다. 당의 사당화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극단화된 강성팬덤과 거리를 두라는 의견을 내던 사람이 표적이 된 셈이다.

심지어 이 의원의 사무실 앞에는 '나한테 단 한 발의 총알이 남아 있다면 왜놈보다는 매국노(매당노)를 먼저 처단할 것이다'라는 무시무시한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했다.

오매불망 공천만 기다리는 당내외 친명(친이재명)계 인사들도 다르지 않다. 이들 역시 '이재명 대표의 사당화'라는 취지의 비판을 제기하는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을 향해 득달 같이 달려들어 집단린치에 나섰다. 탈당한 비명계 인사들의 등 뒤에도 '거친 언어의 칼'을 꽂을 정도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낙연은 2021년 1월 박근혜 사면론으로 정치적 폭망의 길로 들어섰고, 2024년 1월 탈당으로 정치적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4선 중진 우원식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 결과를 거론하며 "선택받지 못했을 때 정치인의 진정한 바닥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고 남겼다. 이외에도 "제2의 안철수의 길"(윤준병), "야권 분열을 조장하는 저열한 정치형태"(송재호) 등의 맹비난이 나왔다.

비슷한 시기에 탈당한 원칙과 상식 3인방(이원욱·김종민·조응천)을 향한 린치도 매섭다. "안 되겠거든 탈당말고 은퇴하는 것도 정답"(정청래), "원칙과 상식? 공천과 탈당!"(김용민), "당내에서 기득권을 누릴 만큼 누린 정치인"(양이원영)이라는 거친 비야냥이 이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일부 비명계 의원들은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민정 최고위원과 홍영표 의원은 자신의 SNS에 각각 "결국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만들지 못했다", "안타깝고, 아쉽고 아프다"는 심정을 밝혔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 비서시장도 "이 분들을 담을 자리가 민주당에 없다는 현실도 안타깝다"고 전했다. 참고로 국민의힘만 해도 지난달 27일 이준석 전 대표가 탈당을 선언하자 "감사했고, 앞으로 뜻하는 바 이루길 바란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속마음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런 공식 입장이라도 내는 게 한 때 동료였던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일반 회사도 퇴직하거가 이직하는 사람한테 '건승을 기원한다'는 형식적인 인사말 정도는 한다. 민주당엔 최소한의 동료 의식도 사라진 듯하다.

어느덧 민주당은 자신들이 극복하고 뛰어넘었던 세력을 닮아가는 듯 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졌던 역대 독재 정권이다. 이들은 시대적 과제였던 반공과 경제발전을 내세우며 개인의 권리를 제약했고 민주화 요구를 탄압했다.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다른 것들은 버려도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이 올해 총선을 앞둔 민주당에도 투영된다. 마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가 분석했던 '총체적 지배'를 구축한 전체주의 정권을 보는 느낌이다. 총체적 지배는 무한히 많고 다양한 인간들을 마치 '한 사람'(One man)인 것처럼 조직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대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2일 피습을 당한 뒤 15일만에 복귀해서도 '단합', '통합' 등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다. 이 대표는 "많은 논란들이 있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통합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정한 혁신적인 공천을 통해서 우리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권 심판을 거듭 강조했다. 당내 상황보단 총선 승리가 우선이라는 인식인 것 같다. 그 동안 쓴소리를 하던 이 전 대표와 원칙과 상식, 이상민 의원이 빠진 상황이 오히려 홀가분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에 남는 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saehee0127@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