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민원⑲ 윤석열, 반년새 야권 방심위원만 5명째 해촉...방심위 합의제 기능 상실

홍우람 2024. 1. 17. 18: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을 동원한 ‘청부민원’ 의혹이 불거진 이후 진상 규명과 류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해왔던 야권 추천 방심위 위원 2명이 동시에 해촉됐다. 이로써 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와 실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방심위원들은 언제든 쫓아낼 수 있다는 인사권자, 즉 대통령의 비뚤어진 인식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대통령실은 17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류희림 위원장의 주도로 의결된 김유진, 옥시찬 방심위원 해촉 건의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앞서 두 방심위원의 해촉 건의안은 지난 12일 방심위 임시회의에서 비공개로 의결됐다. 공식적인 해촉 사유는 폭행 및 모욕, 비밀유지의무위반 등이다.

이날 해촉된 옥시찬 위원의 경우 지난 9일 방심위 방송심의 소위 정기회의에서 류 위원장이 청부민원 의혹과 관련된 논의를 묵살하려 하자 서류를 던지고 욕설을 하며 퇴장한 일이 빌미가 됐다. 옥 위원은 류 위원장의 집무실을 찾아가는 등 사과했지만 류 위원장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류 위원장은 폭행과 모욕을 사유로 옥 위원의 해촉안 처리를 강행했다.

야권 추천 옥시찬(가운데)·김유진(오른쪽) 방심위원이 지난 12일 방심위 임시회의에서 해촉안이 의결된 직후 또 다른 야권 추천 인사인 윤성옥 위원(왼쪽)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유진 위원은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유로 해촉됐다. 지난 3일 류 위원장의 청부민원 의혹과 관련해 임시회의가 소집됐으나 류 위원장과 여권 추천 위원들이 회의 2시간 전에 불참을 통보하면서 회의 개최가 불발됐다. 이에 김 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다뤄질 예정이었던 안건 내용과 자신의 의견을 기자들에게 서면으로 배포했다. 이 일이 비밀유지의무 위반이라는 해촉 사유로 둔갑했다.

두 방심위원의 해촉은 류 위원장의 청부민원 의혹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들은 방심위 안건 상정 등을 통해 청부민원 의혹의 진상규명, 방심위원들의 대국민 사과, 류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류 위원장은 진상규명과 사퇴 약속 대신 야권 방심위원들에 대한 보복에 나선 것이다. 이에 윤 대통령은 지체없는 해촉안 재가로 화답하며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 직무상 심각한 범법행위 의혹에 휩싸인 류 위원장을 감쌌다. “(대통령의) 권력 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옥 위원은 해촉 소식이 전해진 뒤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옥 위원은 “자기들 편의 훨씬 더 큰 죄는 묻어버리고, 묻지도 않고, 야권 측 위원은 꼬투리가 잡히면 침소봉대해서 몰아내왔지 않으냐”며 “그게 바로 윤석열 정부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유진 위원은 자신의 해촉에 대해 “류희림의 언론 통제에 맞선 대가라고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모두 해촉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류 위원장 위촉과 동시에 방심위 운영은 파행을 겪고 있다. 불과 6개월 사이, 야권 추천 위원 6명 중 5명이 임기를 보장받지 못한 채 줄줄이 해촉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모두 윤 대통령이 해촉안을 재가한 결과다. 가장 먼저 지난해 8월 17일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장 추천 몫으로 각각 위촉된 정연주 위원장과 이광복 부위원장이 근태 불량,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등의 사유로 동시 해촉됐다. 류 위원장이 상임위원으로 위촉되기 바로 전날 벌어진 일이다. 

표면적으로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심위 회계 검사 결과에 따른 해촉 인사였으나, 같은 지적을 받았던 여당 추천 황성욱 위원은 해촉을 면했다. 이 때문에 공정성을 결여한 ‘선택적 해촉’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9월에는 정민영 위원(국회의장 추천)이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끝에 해촉됐다.

위원 정원 9명의 민간 독립 합의제 기구인 방심위는 전날까지 여야 4대3의 7인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17일 두 야권 위원이 추가로 해촉됨에 따라 여야 4대1의 압도적인 여권 우위로 치우치게 됐다. 야권 추천 위원은 윤성옥 위원 홀로 남게 됐다. 윤 위원은 “아무리 류희림 위원장이라도 이 정도의 문제를 일으켰으면 대통령실에서 판단해서 바로 잡았어야 했고, 그럴 기회도 주어진 것 아니냐”며 “그런데 오히려 두 야권 위원을 해촉하고 류 위원장을 유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는 언론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런 시대와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조만간 윤 대통령이 공석이 된 대통령 추천 몫 보궐위원 2명 다시 위촉하고, 지난해 10월부터 미뤄왔던 야권 추천 후보 2명도 위촉하게 되면 여야 6대3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류희림 위원장 주도의 방심위 재편 작업은 완료된다. 그러나 해촉된 두 방심위원은 여야 6대3으로 완성될 류희림 체제 방심위는 합의와 타협을 상실한 기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유진 전 위원은 향후 방심위 여야 구도에 대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야 6대3 구성에 의미가 있으려면 소수의 의견이 어느 정도는 반영이 되는 합의제 정신을 살리면서 조직을 운영을 해야 되는데 지금 류희림 위원장 체제에서 그런 게 전혀 반영되지 않고 합의제 기구로서의 성격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또 “(류 위원장이) 지금 조직 운영 초점을 온통 자신의 의혹을 방어하는 데 다 쓰고 있는데 여야 6대3 구성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그런 위원장이 있는 체제에서 그 조직이 어떻게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겠나”라고 비판했다.

옥시찬 전 위원도 “방심위의 일이라는 것은 합의도 할 때가 있고 협의, 타협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 모든 것이 안 될 때야말로 다수결로 가는 것이지 않느냐”며 “합의도, 타협도, 협의도 없고 지금의 방심위는 말하자면 합의제 기구가 아니라 독임제 기구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대화가 실종된 상황에서는 (여야 추천 위원이) 한 명이라도 많으면 대책이 없다”며 현 여권 추천 위원들에 대해 “오로지 오더(지시)에 의해서 로봇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언론현업·시민단체들이 17일 서울 양천구 방심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류희림 위원장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방심위 안팎에서는 규탄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심위 지부는 윤 대통령이 두 야권 추천 위원을 해촉한 이날 성명서를 내고 “민원사주 의혹제기 봉쇄하는 해촉건의안 의결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언론노조와 민주언론시민연합, 새언론포럼 등 언론단체들은 류희림 위원장을 업무방해,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추가 고발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류 위원장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서 합의제로 운영돼야 할 기구는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서 전부 다 망가지고 있다”며 “오늘 야권 추천위원 2명이 또 다시 해촉당함으로 인해서 방심위는 최소한의 독립성과 균형성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고 말했다.

앞서 이들 단체는 지난해 10월에도 류 위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으나 현재까지 수사에 진척이 없다. 지난 5일에는 더불어민주당도 청부민원 의혹과 관련해 류 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사건은 관할 경찰서로 이첩됐을 뿐이다.

반면 검경은 류 위원장의 청부민원 의혹 제기한 공익신고자의 신변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류 위원장은 방심위 명의로 자신의 청부민원 의혹을 국민권익위에 신고한 익명의 제보자를 처벌해달라며 검찰에 수사를 외뢰했다. 검찰에서 이 사건을 넘겨 받은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15일 방심위를 압수수색하며 사실상 공익신고자 색출 작업에 나섰다.

뉴스타파 홍우람 wooramhong@newstapa.org

Copyright © 뉴스타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