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이괄의 난 평정한 이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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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야산의 한 비각 안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1624년 1월 일어난 이괄의 난을 평정한 이시발(李時發·1569~1626)이 주인공이다.
1623년(광해군 15) 한성부판윤을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고 이듬해 이괄의 난을 수습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괄의 난은 임금이 한양을 떠나야 했던 큰 사건이었다. 이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이 우리 마을에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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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뉴시스] 강신욱 기자 = 17일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야산의 한 비각 안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1984년 충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시발 신도비(李時發 神道碑)'다.
1624년 1월 일어난 이괄의 난을 평정한 이시발(李時發·1569~1626)이 주인공이다.
400년 전 인조반정 공신 이괄(李适·1587~1624)이 일으킨 반란을 잠재운 당시 체찰부사(體察副使) 이시발이 관심을 끌고 있다.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장대리에서 태어난 이시발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박춘무(朴春茂) 휘하에 들어가 종사관으로 활약했다.
1596년(선조 29)에는 이몽학의 난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장악원장(掌樂院正·정3품)으로 승진했다.
1623년(광해군 15) 한성부판윤을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고 이듬해 이괄의 난을 수습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됐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묘소는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지전마을의 경주 이씨 묘역에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괄의 난은 임금이 한양을 떠나야 했던 큰 사건이었다. 이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이 우리 마을에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sw6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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