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피해선 안 될 대통령의 숙제
국민들 듣고 싶은 질문은 켜켜이 쌓여
이번에도 안 하면 임기 내내 숙제 못해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하기는 해야지만, 선뜻 손대기 부담스러운 숙제가 있다. 차일피일 미루다 더 하기 어렵게 된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에겐 신년 기자회견이 그런 듯하다. 벌써 새해가 보름 넘게 지났지만 한다, 안 한다 딱 부러지게 말을 못한다. “여러 가지로 검토하고 있다”고만 한다.
이해할 측면은 있다. 학창시절 MT 단골메뉴이던 ‘진실게임’에서 난처한 질문을 받고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자회견이 딱 그렇다. 답하기 싫은 질문에도 답을 해야 한다. 게임에서는 끝내 답을 못하겠으면 벌칙으로 술 한잔 벌컥 마시면 그만이지만,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에서는 그럴 수 없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에게도 기자회견은 쉬운 숙제는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 때마다 질문지 사전 유출, 각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만들고 직접 SNS에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기자회견에는 인색했다. 한 보수언론이 "문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즉답을 해야 하는 자리는 피하고,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하는 '대국민쇼'에 집중한다"고 질타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달라야 한다. 청와대 문을 닫고 용산 시대를 연 명분은 오직 하나, ‘소통’이었다. 당선인 시절 김은혜 대변인은 용산 이전의 배경을 두고 “워낙 청와대라는 곳이 구중궁궐로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이란 파격적 카드를 꺼내고 61회나 실행에 옮긴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소통에 진심이었을 걸로 믿는다.
그런 윤 대통령이 지금은 불통의 대명사라던 박 전 대통령보다도 못하다는 얘길 듣는다. 박 전 대통령은 ‘수첩공주’라는 비판을 안고도 기자회견을 5차례 했다. 선택이 아니라 책무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작년 8월 취임 100일 회견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바이든-날리면’ 논란 이후 다른 소통 방식을 말했지만, 해외 순방 때마다 외신 인터뷰를 하고 국무회의 생중계를 하는 등 일방통행이 전부였다. 새해 들어서도 용인 고양 수원 등을 차례로 돌며 현장 민생 토론회를 하지만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데서 국민들의 갈증은 해소될 리 없다. 그때 그 보수언론의 신랄한 지적을 ‘복붙(복사해서 붙이기)’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국민들이 듣고 싶은 질문은 켜켜이 쌓이고 있다. 민생, 돌려막기 인사, 검사 카르텔, 특별감찰관, 방송 독립, 남북관계, 역사인식 등등 하나하나 답을 듣자면 몇 시간도 부족하다. 다 제쳐두고라도 국민들은 ‘김건희 여사 리스크’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접 설명을 듣길 간절히 바란다. “100점 만점에 40점짜리 문제를 피하면서 어떻게 (총선 승리) 커트라인인 70점을 넘길 수 있겠느냐”(김경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는 지적이 적확하다. 영부인이 아무런 설명 없이 한 달째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해법일 순 없다.
수시로 진솔하게 소통할 기회가 있었다면 기자회견을 하기가 이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준비 과정이 국정을 되짚고 여론을 읽는 시간이다. 풀기 어려운 숙제도 고민해야 답이 찾아지는 법이다. 8년 재임 동안 158차례 기자회견을 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식에서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나를 단련시켰다”고 했다.
기자회견을 결국 하지 않기로 방향을 잡았다는 일각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이번마저도 건너뛴다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숙제에 손을 대기조차 힘들 것이다. 임기 내내 딱 한 번의 기자회견을 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싶은가. 용산 이전의 뜻을 다시 상기했으면 한다.
이영태 논설위원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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