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살이도 억울한데 왜 보상금을 차별하나요?”
"똑같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는데, 왜 보상금이 다른 거죠?"
64살 이기탁 씨는 최근 제주지방법원이 내린 형사 보상금 결정 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취재진에게 털어놨습니다.
이 씨의 아버지 고(故) 이대성 씨는 2년 전 제주 4·3 수형인에 대한 특별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제주 4·3 사건 당시, 아버지는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었습니다.
70여 년 만에 억울함이 씻겨 내려갔지만, 아버지는 1986년 세상을 떠나 명예 회복의 기쁨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이 씨는 7년 6개월을 실제 복역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국가를 상대로 형사 보상금을 청구했습니다.
선량한 국민이 누명을 쓰고 실형을 살았으니 손해를 정당하게 보상해달란 겁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제주지방법원 제3형사부(오창훈 부장판사)는 이 씨를 비롯해 자녀 7명이 낸 형사보상 청구에 대해 2억 6,435만여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습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구금의 종류와 기간의 장단, 구금 기간에 입은 정신적 고통, 국가기관의 고의 또는 과실의 유무 등을 고려해 1일 보상금액을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씨 아버지의 구금 일수는 2,405일. 여기에 보상청구의 원인이 발생한 해의 1일 최저임금의 1.5배를 적용해 보상금액을 정한 겁니다.
하지만 이 씨의 가족들은 납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앞서 형사 보상금을 청구한 4·3 수형인 희생자들의 경우 구금 일수에 따른 최저임금의 5배를 지급하란 결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보상의 한도)는 "구금에 대한 보상금의 한도는 1일당 보상청구의 원인이 발생한 해의 최저임금법에 따른 일급 최저임금액의 5배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내가 아무리 법에 대해 상식이 미약하다지만, 형평성에 어긋난 법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비단 돈이 문제가 아니지만, 어떤 근거로 보상금에 차별을 두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분노했습니다.
또 "살아생전 아버지는 수형생활을 괴로워하며 술을 많이 드시고, 나도 '빨갱이 낙인' 때문에 연좌제로 중학교까지 밖에 다니지 못했다"며 "긴 세월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는데 왜 차별을 두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터트렸습니다.
이 씨와 같은 상황에 처한 유족은 또 있습니다. 또 다른 4·3 수형인 희생자인 고(故) 고윤섭 씨의 유족입니다.
고 씨의 유족 역시 마찬가지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형사보상금을 청구했지만, 이 씨와 같은 재판부의 결정으로 최저임금의 1.5배로 산정한 형사보상금을 받게 됐습니다.
제주4·3 도민연대와 제주4·3 기념사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보상금 축소는 희생자와 유족의 가슴에 다시 못을 박는 처사"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면서 "제주지방법원은 4·3사건의 역사적 의의와 형사보상법의 취지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의 5배로 판단했던 이전의 결정들과 1.5배로 축소한 이번 결정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명백히 밝혀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들 단체는 "4·3 형사 보상금 축소로 새로운 분란을 만들지 말고 4·3의 역사적 해결에 다해달라"고 덧붙였습니다.
양동윤 제주4·3 도민연대 대표는 "현재 이 같은 사례가 4건 파악됐다"면서, 앞으로 이뤄질 형사보상 재판에서도 법원 기준이 오락가락할 가능성도 우려했습니다.
일단 이 씨와 고 씨의 유족들은 재판부 결정에 불복해 고등법원에 항고했습니다.
유족과 시민단체의 반발에 대해 제주지방법원은 "사법 절차에 근거하지 않고 법이 정하지 않은 절차로 입장을 밝히는 건 곤란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제주지법 관계자는 "'일급 최저임금액의 5배'라는 건 보상금액의 (최고) 한도"라며 "재판부가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서 그 범위 내에서 적정하다고 생각한 금액을 정한 거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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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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