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정 대신 '아지트' 찾는 7080 "단돈 2천원으로 문화생활 즐겨요"

이지안(cup@mk.co.kr) 2024. 1. 1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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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평으로 된 방에 사는데 집에만 있으면 갑갑해서 영화를 보러 종종 나오곤 합니다."

기자가 평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허리우드극장.

허리우드극장에서는 55세 이상이면 단돈 2000원으로 고전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다.

김은주 허리우드극장 대표는 "우리만 지원을 받는 상황이어서 지방에 있는 민간 실버 극장 필름 값을 우리가 대주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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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상영 종로 허리우드극장
15년째 '55세 이상은 2000원'
관람후엔 또래끼리 모여 담소
하루 400~500명가량 찾아와
전문가 "노년기교류 매우 중요
문화예술 활동 지원 늘려야"
17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허리우드극장 매표소 앞을 관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한주형 기자

"2평으로 된 방에 사는데 집에만 있으면 갑갑해서 영화를 보러 종종 나오곤 합니다."

기자가 평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허리우드극장. 노인들을 위한 영화관인 이곳에 들어선 순간 극장 로비를 가득 채운 1974년 올드 팝송 '유아 더 퍼스트, 더 라스트, 마이 에브리싱(You're the first, the last, my everything)'이 들려왔다. 이용객들 취향을 고려한 선곡이었다.

극장에서 만난 양삼준 씨(75)는 2평밖에 되지 않는 좁은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답답해 한 달에 네 번 정도 영화관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친구를 기다린다는 양씨는 "영화가 끝나고 근처 공원에 가서 또래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덧 하루가 지나간다"며 웃었다.

허리우드극장에서는 55세 이상이면 단돈 2000원으로 고전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다. 일반 영화관의 관람 가격이 1만4000원(평일 낮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저렴한 수준이다. 영화 관람료는 허리우드극장이 문을 연 2009년 이래로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

기자가 방문한 날 극장에서는 1984년 작 '사랑의 찬가'를 상영하고 있었다. 극장 객석은 어르신들이 좌석 번호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큰 글씨로 표시돼 있었다. 외국 영화는 눈이 침침한 어르신들을 위해 자막 크기가 전체 스크린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확대됐다. 극장에 따르면 어르신 관객은 하루 평균 1000명이었지만 코로나19로 급격하게 줄었다가 현재는 서서히 회복돼 평균 400~500명이 방문한다. 어르신 관객은 주로 75세 이상이고, 최근 들어서는 80대 관객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80대 관객을 다수 찾아볼 수 있었다. 집에 영화 CD 3000개를 소장하고 있다는 영화 애호가 김영성 씨(80)는 "CGV나 메가박스 같은 일반 영화관도 가지만, 이곳은 추억의 영화를 상영해주고 그것도 저렴하게 볼 수 있어 자주 온다"며 "나이가 들고 나니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이런 곳이 귀하다"고 전했다.

전국에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 실버 극장은 총 4개뿐이다. 이곳 허리우드극장을 포함해 서울 낭만극장, 안산 명화극장, 천안 인생극장이 실버 극장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곳은 허리우드극장과 안산 명화극장 두 곳 뿐이다. 허리우드극장은 개관 이후 올해 처음 정부에서 약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김은주 허리우드극장 대표는 "우리만 지원을 받는 상황이어서 지방에 있는 민간 실버 극장 필름 값을 우리가 대주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김 대표는 시대마다 노인들 특성이 변화한다며 그에 따른 정부 지원도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어르신들은 복지관, 노인정을 가는 것보다 '자율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새로운 유형의 노인 세대"라며 "국가에서 노인들의 문화적 거점 공간 투자에 힘을 실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1년 발간한 '노인의 여가 및 정보화 현황'에 따르면 문화예술 작품을 관람하는 노인은 극소수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가활동을 하는 노인은 80.3%인데 이 중 3.5%만 '문화예술 작품 관람'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허리우드극장을 이용하는 고객 중 한 명은 "노인들이 즐길 만한 '아지트'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인들의 교류·문화 공간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년기는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도 많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굉장히 절실한 기간"이라며 "타인과의 교류나 문화 체험 활동이 치매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축적돼 있는데, 이런 면에서 문화 체험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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