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공천룰, 컷오프는 최소·물갈이는 최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둘째)이 17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4선 이상 의원들과 오찬을 갖기에 앞서 물잔으로 건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현역 의원 중 컷오프(경선 배제) 대상을 7명으로 최소화했다. 하지만 여당에선 오히려 영남권을 중심으로 현역 물갈이 폭이 역대급으로 클 거란 전망이 제기된다. 같은 지역에서 세 번 이상 당선된 경우 35%까지 페널티를 적용받고, 청년 정치신인에게 최대 20%의 가점을 주는 등 현역 의원들에게 불리하게 공천 규칙을 설정한 탓이다. 컷오프를 최소화해 현역 의원의 신당 이탈을 막는 동시에 물갈이 효과는 극대화하려는 이중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주로 영남 출마를 노리는 대통령실 출신 정치신인들에게 길을 터주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공관위는 전날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각 권역별 ‘교체지수’ 하위 10% 이하는 컷오프시키기로 했다. 권역별로 소숫점 아래는 버림하다보니, 대상의원 90명 중 컷오프 대상자는 7명에 그쳤다. 교체지수는 앞서 진행한 당무감사 30%, 공관위가 시행하는 컷오프 조사 40%, 기여도 20%, 면접 10%로 측정한다.

앞서 인요한 혁신위원회는 현역 의원 20% 컷오프를 요구했고, 당무감사위원회는 당협위원장 204명 중 46명(22.5%) 컷오프를 권고했다. 총선기획단은 현역 물갈이 비율을 ‘20%+α’로 설정했다. 그런데 공관위가 이보다 크게 낮은 수준으로 컷오프 비율을 정한 것이다. 공관위는 권역별 하위 10~30%(18명)는 컷오프 대신 경선득표율의 20%를 삭감하기로 했다.

공관위의 이 같은 결정은 소속 의원들이 ‘이준석 신당’을 비롯한 제3지대로 이탈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당내 경선에 참여한 뒤에는 결과에 불복해 같은 선거구에출마할 수 없다. 다만 컷오프는 경선 참여를 원천 배제하는 것이라 컷오프당한 뒤 탈당해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가능하다. 컷오프 규모가 클 경우 현역 의원 이탈로 신당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컷오프당한 의원들이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재투표에서 대거 찬성표를 던지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무력화될 여지도 있다. 당 관계자는 “컷오프를 20~30%나 할 경우 그 반발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며 “안 그래도 신당에서 ‘이삭줍기’를 하려고 하니, 이를 고려해 적당한 수준에서 정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개혁신당(이준석 신당)으로 이탈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컷오프 규모가 작은 물갈이 폭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정영환 공관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그게(컷오프가) 10%지만, 나머지 (페널티를 받는) 20%가 있다”며 “실제로 돌려보면 더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역 의원 교체 규모가 상당할 거란 뜻이다.

영남권·중진의원들의 불안감과 반발이 크다. 공관위는 동일 지역 3선 이상 의원에게는 15% 페널티를 적용키로 했다. 수도권에서 윤상현 의원, 강원에서 권성동 의원, 충청에서 이상민·정우택·정진석 의원, 영남에서 김기현 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등 총 22명이 해당한다. 이들 중 하위 10~30%에 속하는 의원들은 경선득표율의 35%가 깎인다. 공관위는 과거 5년 내 탈당 후 무소속이나 다른 당 소속으로 출마한 경우 최대 7%를 깎기로 했는데, 권성동·윤상현·김태호 의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 영남권 중진의원은 “같은 지역에서 여러 번 당선된 것은 지역민 선택을 받은 것”이라며 “이에 감점을 주는 것은 정치 혐오에 호응하는 포퓰리즘 의미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시스템 공천’을 내세웠지만, 평가 배점 중 절반에 가까운 당무감사 결과·기여도·면접이 정성평가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 공천이 이뤄질 거란 의구심도 가시지 않는다. 정우택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지역별 민심과 정세를 면밀히 분석해, 더불어민주당에 의석을 내어줄 가능성이 큰 지역은 보정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한 위원장과 4선 이상 중진의원 간 오찬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공천 규칙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신인 등에게 부여되는 가산점을 고려하면 현역 정치인의 페널티는 더 크다. 정치신인의 경우 만 34세 이하는 경선득표율의 최대 20%, 만 35~44세는 15%, 만 45~59세는 7%의 가점을 받는다. 한 초선의원은 “전반적으로 처음 정치에 뛰어든 대통령실 출신에게 유리하게 룰을 정한 느낌”이라고 밝혔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