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6000명 늘리자는 얘기도 있다"… 의협 압박하는 복지부
의협, 의대 증원 의견 대신 협의체서 '끝장 토론' 제안
의과대학 증원을 추진 중인 정부가 막바지 조율 작업에 나선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에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라며 압박에 나섰다. 이에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협은 유감을 표하며 의료현안협의체 내에서 문제를 풀어가자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의대 증원 확정 발표를 앞두고 있지만 의협과의 논의는 신경전을 이어가며 도돌이표를 그리는 양상이다.
보건복지부와 의협은 17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소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제25차 의료현안협의회를 개최했다. 회의 시작에 앞서 양측은 서로에게 보낸 공문을 두고 농담 섞인 공방을 이어가기도 했다. 복지부 측이 공문에 대해 "반사하셨던데"라고 하자 의협 측은 "제대로 담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 1년은 걸린다"고 맞섰다.
앞서 지난 15일 복지부가 의협에 구체적인 적정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의견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의협은 하루 뒤인 지난 16일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논의하는 시점에 별도 의견을 요청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공문을 발송했는데 이를 두고 양측이 신경전을 벌인 것이다.
이후 이어진 모두발언에서도 양측은 기존에 밝힌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며 대립했다. 의협 측 협상 단장인 양동호 광주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지난 23차 회의에서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서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밤샘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협의체 내에서 풀어나가자고 강력히 제안했으며 지금도 이 문제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복지부는 일방적으로 대한의사협회로 공문을 보내 의대 정원 규모와 의협의 의견 그리고 현재 의료 현실에 대한 대책을 물어왔다"며 "현재 대한의사협회가 적극적인 자세로 의례적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가 이렇게 위협해 일방적으로 공문을 보내는 것은 대화와 협상의 당사자를 무시하는 행위, 의정 간의 신뢰에 찬물을 끼얹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인 바, 대한의사협회는 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바"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의료계와 정부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해 결론 낼 것을 정부에 재차 요청한다"며 "의대 정원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와 정부가 서로의 입장 및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공개하고 빠른 시일 내에 의대 정원 문제를 결론지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루 빨리 마무리할 것을 다시 한 번 제안한다"고 했다.
이에 복지부는 지역·필수의료 확충을 위해 의대 증원이 필요하며 소비자단체, 지자체 등이 구체적 의견을 표명하는 상황에서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위해 의협의 의견도 필요하다고 재차 밝혔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모두발언에서 "2024년을 지역과 생명을 살리는 의료 개혁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필수의료, 지역의료를 소생시키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며 "의료사고 부담 완화 등, 필수 의료에 대한 집중적인 보상과 같은 제도적 지원 방안과 함께 올해로 19년째 동결돼 있는 의사 정원 확대를 위해서도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정책관은 "소비자 단체와 시민단체, 지자체에서는 2000여명에서 3000여명, 최대는 6000여명까지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며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해서 각계가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상황에서 이런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위해서 정부가 의료계 대표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논의를 하자고 하시면서 공식적으로는 의견을 제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필수의료 인력 확충의 시급성과 2025년도 대입 일정에 늦지 않게 입학정원을 확정하기 위해서 의사 정원 규모에 대한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정책관은 "대한의사협회는 그간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사 인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표명해왔다"며 "이번에 복지부에 보낸 공문을 통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유연성 있는 자세로 논의와 검토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이제는 정원 규모에 대한 논의를 가속화할 수 있도록 그간 의사협회 내에서 모아진 의견과 근거들을 공식적으로 제시해 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드린다"며 "정부는 의사협회를 기록, 각계 의견을 모아서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진지하게 토론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 정책관은 최근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가 적정한 증원 규모로 350명을 제시한 데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350명 수준은 20여년 전에 교육했던 정원의 복원이라는 것 외에 다른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며 "20여년 동안 우리나랕는 크게 변했다. GDP(국내총생산) 규모는 2000년 5700억달러에서 2023년 1조7100억달러로 3배 가까이 커졌고 대학 교육의 규모와 질적 수준도 그만큼 올라갔다. 이러함에도 의과대학 교육 역량과 질은 제자리걸음이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각 학교가 스스로 현재의 교육 역량과 발전적 투자를 통해서 의대 교육이 가능하다고 밝힌 규모, 즉 최소 2100여명에서 최대 3900여명과도 너무나 괴리가 크다"며 "현재의 지역·필수의료 부족 상황,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국민의 기대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복지부는 조만간 2025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지을 계획이며 다가오는 설 연휴(2월9~12일) 이후 이를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1월 복지부가 각 의대를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했던 '의과대학 입학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40개 의대는 올해 고3이 되는 학생들이 진학하는 2025학년도에 2151~2847명, 2030학년도까지 2738~3953명을 증원할 여력이 있다고 했다.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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