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이 3년 적자 레고켐 인수한 3가지 이유
① ADC 항암제 시장 폭발적 성장
② 레고켐의 ADC 핵심 기술 ‘콘쥬올’
③ 신약개발에 대한 양측의 의지
오리온이 바이오 벤처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이후 이틀 만에 회사 시가총액 1조 원이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름 안정적인 제과업이 주력인 기업이 실패 가능성이 큰 바이오벤처에 5474억 원을 투입한 것에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느낀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선 레고켐의 최근 3년의 경영 실적을 숫자로만 보면 이번 인수가 비합리적으로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레고켐이 지난해 3분기까지 3년 연속 영업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레고켐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400억~500억원에 이른다. 오리온 실적에 새로 인수한 레고켐이 포함된다면 오리온 영업익은 10% 이상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고서도 있다. 하지만 제약 바이오 업계에선 오히려 오리온이 레고켐을 싸게 샀다는 얘기기 나온다. 오리온의 주가가 떨어진 것과 별개로 레고켐의 주가도 이틀 연속 10%가량 하락했다.
◇ ADC 시장 폭발적 성장…2030년 28조 원 전망
레고켐은 LG생명과학 출신의 김용주 대표가 지난 2006년 5월 설립한 바이오벤처 기업이다. 항암제의 ‘유도미사일’이라고 불리는 항체·약물 접합체(ADC)의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글로벌 ‘강소’ 바이오벤처로 꼽힌다.
기존 화학 항암제는 혈관을 타고 흐르면서 암세포뿐 아니라 건강한 정상 세포까지 파괴해서 부작용이 심했다. ADC 항암제는 암세포만 골라서 파괴하도록 고안됐다. 암세포 표면에 있는 특정 항원과 결합하는 항체(미사일)에 독성항암제(폭탄)를 붙여 투입한다. 항체 종류(미사일)만 바꾸면 정상 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어떤 종류의 암세포도 파괴할 수 있어 항암제 분야에서는 극강의 무기로 통한다.
가장 대표적인 ADC 항암제로는 일본 다이이치산쿄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개발한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가 있다. 엔허투는 지난 2019년 미국에서 인간표피성장인자수용체2(HER2 허투) 유방암 항암제로 승인을 받았다. 지난 2022년 연 매출이 13억1000만 달러(1조 7600억원)에 이른다.
엔허투의 성공 이후 암세포를 추적하는 항체 기술이 발달하면서 ADC 시장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360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ADC 시장은 오는 2030년까지 205억1000만 달러(약 28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제조(CDMO)를 주력으로 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도 ADC 기술 확보에 나서고 ADC 항암제 전용 공장을 인천 송도에 따로 짓고 있을 정도다.
◇ 글로벌 제약사 인정받은 자체 링커 기술 ‘콘쥬올’
엔허투는 트라스투주맙이라는 HER2 항원을 표적 하는 항체에 데룩스테칸이라는 고전적인 항암제를 결합했다. 데룩스테칸은 세포를 살상하는 약효가 너무 세서 환자 치료에 잘 쓰이지 않았는데, 다이이치산쿄는 그런 약물을 ADC의 폭탄으로 활용했다. 암세포만 ‘정밀 타격’하는 자체 ADC 기술에 자신감이 있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유도미사일이 잘 작동하려면 미사일(항체)이 폭탄(항암제)을 표적까지 잘 싣고 가서 표적을 만나면 빠르게 분리돼 타격해야 한다. 폭탄이 배달 과정에서 새도 안되고, 미사일이 작동을 멈췄을 때도 폭탄이 터지지 않게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
엔허투의 사례처럼 암세포를 조준하는 항체와 세포를 살상하는 화학항암제는 이미 많이 개발돼 있다. 이런 이유로 링커 기술이 ADC 항암제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고켐은 미사일과 폭탄을 연결하는 자체 ‘링커(Linker)’ 기술을 갖고 있다. 이 기술을 ‘콘쥬올(Conjuall’)이라고 부르는데, 콘쥬올은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이미 성능을 인정받았다.
레고켐은 콘쥬올 관련 기술의 이전 실적만 5개를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얀센과 최대 17억 달러(약 2조 2400억원) 규모로 기술을 수출한 항암제 신약 후보물질이 콘쥬올을 활용했다. 레고켐은 얀센으로부터 기술이전 선급금으로만 1억 달러, 약 1300억원을 받았다. 이 회사는 지난 2022년 암젠과도 1조6000억 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레고켐이 지금까지 계약한 신약기술 이전 계약금을 전부 합치면 8조7000억원에 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 대표가 레고켐을 너무 싸게 넘긴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오리온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5만9000원에 796만3283주를 배정 받았다. 구주는 창업자 김 대표와 박세진 사장으로부터 기준가 5만6186원에 140만 주를 매입한다.
지난해 연말 레고켐의 주가는 6만7100원까지 오른 뒤 지난주까지 6만원 대를 유지했다. 이틀 연속 하락한 이날 주가도 5만1200원으로 김 대표가 매도한 금액에서 큰 차이가 없다. 통상적인 인수합병(M&A)에서 프리미엄을 얹어서 계약하는데 오히려 낮춰서 가격을 책정했다는 것이다.
◇ “오리온과 레고켐 진심 6개월만 지나면 알 것”
제약업계에서는 오리온인수했지만 신약개발의 메커니즘을 알지 못해 특유의 연구개발(R&D)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오리온에 신약 개발 연구실 운영비 영수증 하나하나를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제과업을 하던 사업 철학으로 제약업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다.
레고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이 이번에 협의한 주요 내용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또 레고켐을 싸게 매도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레고켐의 주가가 최근 급하게 오른 데 따른 착시 효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얀센의 기술 수출 이후 지난해 연말 주가가 급등하긴 했지만, 레고켐 주가는 지난 2~3년 동안 주당 3만~4만원 대에서 머물렀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임부회장은 “레고켐의 경영권을 넘기는 M&A 계약이었다면 김 대표가 인수 규모를 더 키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며 “현재의 경영진과 운영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신약개발의 먼 미래에 방점을 찍고 투자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레고켐 정철웅 연구소장은 “협상 과정에서 신약개발에 대한 오리온의 진심을 봤고, 이 같은 오리온과 레고켐의 진심은 6개월 정도 지나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온도 사실 제약·바이오 산업 진출을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지주사인 오리온홀딩스는 2020년 바이오 사업 진출을 선언한 후 백신 개발 업체 큐라티스, 진단기기 업체 수젠텍 등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난 2022년에는 치과질환 치료제 바이오벤처 ‘하이센스바이오’와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출범했다. 중국에서는 지난 2021년 산둥루캉의약과 합자 법인을 설립하고, 900억 원 규모 결핵 백신 공장을 짓고 있다.
오리온과 레고켐의 주가가 빠지는 것은 현재 주식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 경제 불안, 금리 인상 등의 우려로 외국인 투자가들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대량 매도하고 있다. 오리온의 지분 절반은 외국인 지분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전날(16일) 오리온 62만 주를 매도했고, 이날도 10만 주가량을 매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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