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단어 공부를 하자

2024. 1. 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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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있다 보면 늘 젊고 어린 학생들과 생활하니 교수들은 그나마 나이를 잊고 지내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감에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교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늘 해오던 강의 중 거의 웃음바다가 될 거라고 예상한 부분에서 학생들 반응이 전혀 없이 썰렁해지면서 교수 혼자 어설프게 웃고 마는 상황 등 각자 서로의 경험담을 다투어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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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있다 보면 늘 젊고 어린 학생들과 생활하니 교수들은 그나마 나이를 잊고 지내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감에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교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더 빨리 느끼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이 강의 내용이 아니라 예시로 든 약간의 사적인 내용에 갑자기 고개를 들고 눈을 반짝이면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는 순간이 나이가 들어가니 없어지기 시작한다. 젊은 교수에게는 학생들의 관심도 그만큼 크기 마련이다.

동료 교수들끼리 강의하면서 점점 더 학생들과 거리감, 세대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고 서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늘 해오던 강의 중 거의 웃음바다가 될 거라고 예상한 부분에서 학생들 반응이 전혀 없이 썰렁해지면서 교수 혼자 어설프게 웃고 마는 상황 등 각자 서로의 경험담을 다투어 이야기하였다. 이런 경험이 자신의 탓이 전혀 아닌 듯한 착각으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우리끼리의 유대감만 돈독해졌다.

세대 간 차이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몇십 년 전 세대와 지금 세대가 똑같이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인류가 시작한 이래 어떤 문화, 어떤 국가에서든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의 갈등은 존재해왔다. 그걸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이 문제다. 꼰대, MZ와 같은 단어의 낙인효과로 서로가 서로를 따돌리는 사회적 갈등이 조장되고 있다. 세대의 특징을 지닌 용어들은 그 세대에 속한 개개인의 특성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나이 든 사람의 특징에 대한 고정관념을 연령주의라고 부른다. 연령주의는 주로 노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만 젊은 세대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젊은 사람은 책임감이 없다, 자기중심적이다와 같은 일반화로 세대 간 골을 깊게 한다.

그런데 세대 간 단절을 극명하게 느끼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유행 단어다. 유행하고 있는 용어들을 알지 못하면 살아가기조차 어려운 것 같다. 이전에는 직업상의 전문용어 차이 정도가 있었다면, 요즘은 세대 간 용어 차이가 존재한다. 원래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축약어 등이 마구 양산되고, 그것이 그냥 보편화되어가면서 어려움이 생긴다. 그게 표준어인지 아닌지는 이제 그다지 문제 되지 않는다. 이젠 세상을 알아가는 상식의 문제이다. 그저 속어라고 치부하기엔 뉴스기사 제목 헤드라인에까지 떡하니 달리고 있으니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갓생' '넘사벽' '중꺾마' 등을 접하다 보면 젊은 세대의 고민과 아픔, 절박한 사정을 짐작하게 된다. 그저 유행어라기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의미 있는 단어일 수 있다. 세대를 이해하는 지표가 된다.

아주 오래전 서울대 내 한 단과대 교수 회의에서는 최근 핫한 아이돌 그룹과 그 그룹에 속한 멤버 이름을 공부하는 강의까지 했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이야기에 나는 까르르 웃기만 했다. 아니, 그건 저절로 아는 거지 무얼 공부를 한담. 그룹 전체가 아니더라도 그중 '최애' 한 명 정도는 찜하고 있었던 나는 마치 내가 엄청난 신인류인 것인 양 비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돌 이름은커녕, 모르는 단어들이 계속 생산되고 있다. 그래, 공부하자. 새로운 단어 공부를 해야겠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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