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오르면 가업승계 불가능”…상속세 완화 불 지핀 尹, 세계 최고수준 세율 떨어지나 [투자360]
"과도한 할증과세라는 데 국민공감 필요"
삼성일가 11일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지분 블록딜
상속세 실질 최고세율 60%, 日보다 높아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상속세 완화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하향조정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 삼성가(家)에서 상속세 납부를 위해 보유주식을 대량매도하고 있는데, 세율이 떨어질 경우 국내 주요 그룹들의 세부담이 경감될 뿐 아니라 주식 정리에 따른 가격 변동성 확대도 제한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상속세가 과도한 할증 과세라고 하는 데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개최한 민생 토론회에서 "소액 주주는 주가가 올라야 이득을 보지만,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 거기다 할증세까지 있다"면서 "재벌,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상장 기업들이 가업을 승계한다든가 이런 경우에 주가가 올라가게 되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독일과 같은 강소기업이 별로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는 우리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 국민들께서 다 같이 인식하고 공유해야 이런 과도한 세제들을 개혁해나가면서 바로 이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향후 국민 여론을 바탕으로 한 상속세 완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울러 정부에 대해선 신속한 세제 개편을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상속세를 비롯한 현행 세제가 국내 증시 저평가로 이어지고, 결국 대다수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만큼 근본적인 세제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여전히 재산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 많이 과세해서 나눠 가져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좀 단편적인 이런 생각들을 좀 더 우리가 성숙하게 볼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주식 투자"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과거 주식 투자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면 지금은 주식 투자자가 우리 5000만 국민 중 1400만명이나 되고,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금들의 재산이 제대로 형성되고 구축된다면 그게 결국 국민들에게 환원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들께서 뜻을 모아 여론의 지지를 해줄 수 있도록 증권시장에 활동하는 여러분이 이런 부분을 많이 알려 달라"고 당부했다.
향후 국민 여론을 바탕으로 일각에서 과도하다고 지적되는 상속세 부담 완화 작업 등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에도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기업이 영속성을 갖고 잘 운영돼야 근로자의 고용안정도 보장된다"며 집권 시 상속세 개편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정부 역시 출범 직후 상속세 과세 체계를 현행 유산세(전체 유산에 대해 과세)에서 유산취득세(개인이 취득한 재산에 따라 과세)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야권 일각에서 상속세 개편은 곧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제기되며 상속세제 개편 작업은 일단 미뤄진 상태다.
삼성 오너 일가가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지분 일부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형태로 매각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증여세수 비중이 지나치게 커 기업 승계에 부담이 되므로 상속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업계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장 마감 후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삼성전자 지분 총 2조1900억원어치(2982만9183주)를 블록딜로 매각하기 위한 수요예측에 나섰다.
매각을 추진하는 삼성전자 지분은 홍라희 전 관장 0.32%, 이부진 사장 0.04%, 이서현 이사장 0.14%다. 주당 매각가는 이날 종가인 7만3600원에서 1.2∼2.0% 할인된 수준이다. 이부진 사장은 삼성물산(0.65%), 삼성SDS(1.95%), 삼성생명(1.16%)의 일부 지분도 블록딜 형태로 매각에 나선다.
세 모녀가 이번에 매각을 추진하는 주식은 총 2조8000억원 규모다. 이는 지난해 10월 이들이 상속세 납부를 위해 삼성 계열사 지분 처분을 목적으로 하나은행과 유가증권 처분 신탁 계약을 맺은 물량이다. 블록딜 거래는 11일 개장 전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별세 이후 삼성 일가가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원이다. 유족들은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지난 2021년 4월부터 5년에 걸쳐 상속세를 분할 납부하고 있다.
한편, 한국경제인연합회(전 전경련)는 2021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상속·증여세수 비중(0.7%)이 프랑스, 독일과 함께 공동 1위로 과중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세 최고세율은 한국이 50%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이나 최대주주 등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으면 할증이 적용돼 실질적으로는 최고 60%가 된다고 한경련은 설명했다.
한경련은 "기업 승계 때 상속세는 기업 실체의 변동 없이 단지 피상속인의 재산이 상속인에게 무상 이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세로 기업 승계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줄 때 상속세를 일부 공제하는 가업상속공제가 있으나, 적용 대상이 한정적인 데다 대표자 경영 기간, 업종 유지, 자산 유지 등 요건도 엄격해 활용이 저조하다고 전경련은 지적했다. 국내에서 2016∼2021년 가업상속공제 연평균 이용 건수는 95.7건, 총 공제액 2967억원 수준이지만 관련 제도가 활성화된 독일은 연평균 1만308건, 공제액 163억유로(약 23조8000억원)에 달한다.
재작년 2월 별세한 넥슨 창업자 고(故) 김정주 회장의 유족이 물려받은 지분의 상당수도 상속세로 정부에 물납한 상태다. 물납은 상속인이 일정 요건에 따라 현금 대신 유가증권이나 부동산으로 상속세를 납부하는 절차다. 정부는 물납받은 주식에 대해 공개 매각을 진행 중이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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