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살릴 마지막 희망" 전국민 서명운동…'1년에 2억' 유방암 약 뭐길래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엔허투' 급여 등재 위한 전국민 서명운동 시작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 '트로델비', 급여 촉구 청원 5만명 동의
건보 재정 부담되는 정부 "약값 깎아오라"
혁신적인 유방암 신약의 건강보험 적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한유총회)는 '엔허투'의 급여 등재를 촉구하는 전 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한 달 약 2억원 비용이 드는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 '트로델비'의 급여 촉구 청원은 5만명 동의를 받아 국회로 회부됐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한유총회는 전날 엔허투 급여 등재를 촉구하는 전 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곽점순 한유총회 회장은 "엔허투 급여에 또다시 제동이 걸린 상황에 더 이상 정부의 의지를 믿고 기다릴 수만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전국의 환자, 가족분들과 함께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우리 목소리가 닿을 때까지 정부와 사회에 계속 호소하겠다"고 강조했다.
엔허투는 아스트라제네카·다이이찌산쿄가 개발한 유방암 혁신 신약이다. 수술이 불가능한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 치료에 사용된다. 재작년 12월 국내에서 허가받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3주 1회 주기로 치료받고 주사 1회당 비용은 약 65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엔허투의 급여 적정성을 평가하고 있다. 엔허투는 지난 11일 열린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에서 '재심의' 판정을 받았다. 곽 회장은 "엔허투 급여 등재를 기다려온 우리 한유총회 회원, 환자, 가족들의 실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며 "엔허투로 치료받으면 기존 치료제 대비 4배 이상 질병 진행 없이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처방 대상이 되는 환자는 간절함과 치료제가 있는 데도 쓸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토로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엔허투의 약가 부분 또는 전체적인 (건강보험) 재정 상황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제약사에서 약값을 좀 더 깎아오라는 뜻이다.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엔허투의 조속한 급여를 위해 약가를 전 세계 최저가 수준으로 제시한 데 이어 RSA(위험분담제)를 통한 재정분담안까지 수용했다"며 "재심의 결과의 상세 내용을 파악하는 대로 급여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엔허투 급여 적정성 심사 안건은 내달 초 약평위에 다시 올라간다.
또 다른 유방암 치료제 트로델비도 건강보험 이슈가 터졌다. 지난달 20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트로델비의 건강보험 적용을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지난 15일을 기점으로 5만4527명이 동의했다. 국회청원심사 규칙에 따라 5만명 동의를 채운 청원은 국회로 회부된다.
해당 청원은 공개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지역 맘카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유방암 환우 커뮤니티에 공유되면서 관심을 얻었고 청원 동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청원인은 아내가 2010년 삼중음성유방암에 걸렸고, 이미 두 차례 재발을 겪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2년간 10가지 넘는 다양한 항암제를 사용했으나 모두 효과가 없고, 암이 온몸으로 퍼져서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치료받는 대학병원에서 트로델비를 맞았는데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한 번 주사 맞는 데 530만원, 한 달 세 번 주사 맞아야 해서 월 1600만원이 들었다"며 "1년이면 2억원에 가까운 큰돈이다"고 호소했다.
전체 유방암 환자의 15~20%가 삼중음성유방암을 겪는다. 암이 전이되면 5년 생존율이 12%에 불과하다. 재발률이 높은 데다가 환자 연령대도 주로 40대로 젊다.
트로델비는 지난해 10월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로 국내 허가됐다. 곧바로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급여 기준이 설정돼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약평위에서 급여 적정성을 인정받고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약가 협상까지 마치면 급여 목록에 등재된다.
정부로선 건강보험 재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가의 유방암 치료제에서 잇따라 급여 이슈가 생긴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엔허투의 급여 지연도 결국 최저가로 이미 약값을 책정했다는 제약사와 더 깎아 오라는 정부의 신경전 때문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건강보험 재정이 돈을 벌어오는 게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받은 돈으로 운영되는 건데 우리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지 솔직해져야 한다"면서도 "환자가 보험으로 항암제를 사용해 치료됐을 때 절약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 측면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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