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피스킨병 소 살처분, 91% 고통사…마취제 사용 왜 안하나

[애니멀피플]
동물자유연대, 34곳 살처분 방법 조사
“32곳이 지침 어겨…‘고통사 방지 의무’ 만들어야”

충남 서산시 부석면의 한 축산농가에서 수의사가 럼피스킨병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서산시 제공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럼피스킨병으로 살처분한 소 91%가 고통사 한 것으로 나타났다. 럼피스킨병 살처분 지침에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약물을 투약하게 되어 있지만, 이를 지킨 지자체는 전체 34곳 중 2곳에 불과했다.

동물자유연대는 17일 “지난해 전국 108개 농가에서 럼피스킨병으로 살처분한 한우 및 젖소를 조사한 결과, 6416마리 중 5859마리가 마취약 투약 없이 근육이완제만 사용돼 고통사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이들은 “매년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동물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농림축산식품부가 고통사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자유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럼피스킨병이 발생한 지자체 34곳 중 살처분 때 마취제를 사용한 곳은 충남 당진시(484마리)와 경북 김천시(13마리) 단 두 곳뿐이었다. 나머지 30곳의 지자체에서는 동물에게 고통사를 유발하는 근육이완제만 단독으로 사용됐다. 강원 철원군과 전남 신안군에서는 정확한 살처분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살처분은 럼피스킨병 긴급행동지침과 동물보호법 등에 어긋난다. 럼피스킨병 긴급행동지침에는 약물을 사용해 살처분을 시행할 때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약물(자일라진, 염화트리메칠암모늄메칠렌, 바르비투르산염 등)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약물은 동물의 의식을 잃게 만들어 실제 사망 때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동물보호법 제13조(동물의 도살방법)도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동물을 죽이는 경우에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도살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럼피스킨병에 걸린 경남 창원시 대산면 한우농가의 소. 경남도 제공

그러나 이번 럼피스킨병 살처분의 경우 거의 모든 지자체가 의식 소실 과정 없이 바로 근육이완제(석시닐콜린, 석시콜린, 썩시팜 등)를 사용했다. 동물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근육이완제를 투여하게 되면 사망하기 전까지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때문에 동물호보센터 등에서 안락사를 시행할 때도 동물이 의식을 확실히 잃게 한 뒤 호흡과 심장박동을 멈추게 하고 있다. 미국수의학협회 또한 척추동물을 안락사 할 때 근육이완제의 단독 사용은 허용하지 않는다.

지침이나 법령을 위반하더라도 이에 대한 벌칙 조항이 없어 제재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 단체의 설명이다. 동물자유연대 강재원 활동가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살처분 명령에 대한 조항만 있을 뿐, 지자체의 잘못된 살처분을 예방할 근거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매년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살처분 과정에서 수많은 농장동물이 고통사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농림축산식품부는 가축전염병 발생에 따른 살처분 범위를 최소화하고, 설처분 시행 때 고통을 방지할 수 있는 법적 의무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