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연수 지각자 내쫓더니, 돌연 ‘자격증 발급’...제멋대로 농아인협회
열차 지연에 지각하자 감독관 “돌아가라”
3분 늦은 지각자에겐 참여 허락해 ‘논란’
이후 지각 관련 규정 없다며 자격증 발급
이수진씨(30)는 지난달 15일 ‘국가공인 민간자격 수화통역사’ 자격증 시험의 3차 합격자 연수를 받으러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씨는 서울 도봉구 도봉숲속마을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는 연수에 참여하려고 일찍 집을 나섰다가 지하철에서 발이 묶였다. 이씨가 열차를 기다리던 서울 도봉구 창동역에선 “우천으로 인한 안전 운행으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으니 양해 부탁드린다”는 방송이 거듭 나왔다고 한다. 이씨는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20분쯤 늦게 연수장에 도착했다.
연수장에 겨우 도착해보니 앞서 도착한 5명의 2차 실기시험 합격자들이 연수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씨에 따르면 연수 감독관 A씨는 이들에게 “지각을 하는 건 통역사 연수를 받는 데 부적합하다”며 “기본 자세가 안 돼 있다. 1년 뒤에 다시 연수를 받아야 합격 가능하다. 돌아가라”고 이야기했다.
지각자 중 한 명은 (사)한국농아인협회 측에 전화로 “비가 와서 늦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해 “조금 지각하는 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고 한다. 그런데 A씨가 3분 늦은 지각자까지만 연수 참여를 허락하고 그 이상 늦은 지각자에게는 “돌아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시험이 아니라 연수지 않냐. 오전부터 오후 수업까지 있는데 이렇게 연수 기회를 박탈시키는 게 말이 되냐”며 ‘연수 지각 시 입실 불가’ 규정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A씨는 “지각자들이 말이 많다. 지각자와는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며 “저희(한국농아인협회)나 주관하는 상위기관에 민원을 넣으시는 건 자유”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씨는 “감독관이 이름을 물으며 종이에 체크하는 시늉을 했다. 고압적인 태도를 느꼈다”며 “지각한 것은 잘못이지만 연수 자격까지 박탈한 것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이씨를 포함 6명은 연수를 받지 못하고 귀가했다.
그로부터 10여일 뒤인 지난해 12월 말, 이씨는 “연수를 받지 않아도 자격증 발급 처리를 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수어통역사 시험을 3년 준비해온 이씨는 합격에 안도하면서도 “결국 현장 담당자의 자의적 판단으로 연수를 받지 못한 것 아니냐. 응시생으로서는 독단적인 행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지난 3일 통화에서 “오전 8시50분까지 꼭 강의실에 입장해달라는 문구가 연수 공지에 쓰여있기는 하지만 정확히 지각을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없어서 내부적으로 자격증 발급을 해드리기로 결정했다”며 “규정을 보완하는 절차 중에 있다”고 했다. 또 “3분 늦은 분에 대해 입실을 허용한 것도 원칙적으로는 돌려보냈었어야 한 것은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보자가 누구신 줄 안다. 언론에까지 제보를 한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한국농아인협회가 발급하는 국가공인 수화통역사 자격증 시험은 연 1회 있는데, 1차 필기시험(한국어의 이해·장애인복지·청각장애인의이해·수화통역의 기초)과 2차 실기시험(필기통역·음성통역·수화통역)으로 이뤄진다. 실기시험 합격자 중 연수를 수료한 이들에게 자격증이 주어진다.
응시자들 사이에서 한국농아인협회의 독단적·폐쇄적 시험 운영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이씨는 “주변에 5~6년 이상 시험을 준비한 분들도 많다”며 “기준이 주관적인 평가인데, 합격 기준을 공개하지 않아 합격률이 매번 오락가락해서 중도 포기하는 수험생도 많다고 한다”고 했다.
2022년 7월 한국농아인협회중앙회 측이 “수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자가 통역사 자격증을 다수 취득한다”며 수어통역사 실기시험을 개편한 이후 2021년 83명(합격률 11.54%)이던 합격자 수는 2022년 25명(합격률 3.28%), 2023년 41명(합격률 5.73%)로 급감했다.
수어통역사 부족을 호소하는 전국 현장에서는 한국농아인협회의 시험 운영 방침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는 “자격증의 취지는 최소한의 자격에 이른 사람들에게 자격을 줌으로서 지속적으로 현업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완벽히 수어를 구사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수어 통역 접근성을 떨어뜨리면 그 피해는 청각장애인에게 돌아간다”면서도 “수어통역사 보수교육, 수어통역센터 인사 등을 주관하는 중앙회의 눈치를 보느라 문제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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