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해풍 품은 '랑그도크' … 덤불 숲 허브향까지 만끽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의 와인 이야기]
프랑스 랑그도크루시용(Languedoc-Roussillon)은 스페인 국경에 접한 지중해 연안 와인 산지입니다. 프랑스 와인 애호가라도 랑그도크루시용 와인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주요 와인 산지는 보르도, 부르고뉴, 샹파뉴, 알자스, 루아르, 남북부 론과 남부 프랑스로 나뉩니다. 남부 프랑스는 랑그도크루시용과 프로방스를 포함합니다. 루시용의 와인 생산량이 많지 않아 랑그도크과 루시용을 묶어 랑그도크루시용으로 표현하지만 사실 두 곳은 성격상 전혀 다른 와인 산지입니다.
랑그도크는 과거 품질 좋은 와인 생산지로 유명했습니다. 랑그도크에선 1285년 포르투갈보다 400년 앞서 주정 강화 와인을 만들었고, 1531년엔 샹파뉴보다 150년 앞서 스파클링 와인을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랑그도크는 프랑스 중심도시 파리에서 너무 멀었기 때문에 주요 와인 산지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855년 랑그도크에서 파리까지 철도가 연결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랑그도크 와인 산업이 쇠락하는 원인이 됩니다. 먼 타지까지 와인 판매가 가능해지자 랑그도크의 와인 생산자들은 품질보다 생산량에 주력하게 됩니다. 랑그도크 지방은 한때 프랑스 전체 포도밭의 25%, 전체 와인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랑그도크는 저렴한 와인을 대량생산하는 지역이란 이미지가 강해집니다.
1970년 이후 프랑스 와인 소비가 감소하면서 와인이 남아돌기 시작했고 랑그도크는 '잉여와인' 생산지로 전락합니다. 유럽연합은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해 잉여와인을 매입·증류해 공업용 알코올로 가공했습니다. 랑그도크는 소위 '와인 호수(Wine lake)'라 불리는 잉여와인의 주범이 됩니다.
최근 들어서는 랑그도크루시용에서 생산되는 '프리미엄'급 와인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다른 지역에 비해 덜 유명해서 아직은 가격이 싸면서도 고품질의 와인들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제라르 베르트랑(Gerard Bertrand)이 대표 사례입니다. 2008년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최고의 가성비 와인(Best Value Winery)에 선정됩니다.
와이너리 소유주인 제라르 베르트랑은 프랑스 유명 럭비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와인 사업을 이어가게 됩니다. 1992년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딴 와이너리를 설립합니다. 제라르 베르트랑 와인에 그려진 십자가는 '랑그도크 십자가'입니다. 지역의 특성을 고수하면서도 바이오다이내믹과 유기농법을 도입하는 등 진보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은 달의 변화와 움직임을 포도 농사에 도입해 포도밭의 생명력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포도 재배부터 와인 생산까지 전 과정을 달의 주기에 맞춰 진행합니다. 부르고뉴의 최고급 와인 생산자인 르루아 여사가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와인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랑그도크의 '강풍'은 와인에 또 다른 특성을 부여합니다. 미스트랄(mistral)이 론밸리 아래로 불며 북서쪽 보르도 방향에서도 트라몽탄(tramontane)이 마시프 상트랄과 피레네 사이의 틈으로 붑니다. 또 지중해에서 부는 14개의 다양한 '해풍'이 유명합니다.
'습기'가 많으면 곰팡이와 해충 때문에 유기농법을 도입할 수 없습니다. 랑그도크의 유명한 '바람'은 포도를 병들게 하는 곰팡이와 해충을 날려버려 유기농법을 가능케 합니다.
랑그도크 와인의 또 다른 특징은 가리그(Garrigue)라는 '아로마'입니다. 가리그는 원래 덤불 숲을 의미하는데 랑그도크의 포도밭 주위에 자라는 낮은 작은 덤불은 이 지역 와인에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허브향과 흙내음을 선사합니다.
이러한 테루아의 특징을 잘 살린 와인이 제라르 베르트랑의 아이콘 와인 로스피탈리타스(L'Hospitalitas)입니다. '감초' 또는 '후추' 향이라고 할 수 있는 독특한 아로마를 제공합니다. 단일 포도밭에서 재배한 시라와 무르베드르(Mourvedre)를 수확해 만듭니다. 부드러운 타닌과 기분 좋은 피니시가 특징으로 20년 이상 숙성 잠재력을 갖춘 와인으로 평가받습니다. 한정된 수량만 생산해 병 라벨에서 고유번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샤토 로스피탈레 그랑 뱅 루즈(Chateau L'Hospitalet Grand Vin Rouge)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만찬주로 선정됐을 정도로 그 품질을 인정받았습니다. 시라, 그르나슈, 무르베드르를 개별적으로 양조한 뒤 테이스팅을 통해 고품질의 배럴만 골라 블렌딩하고 최종 병입합니다.
제라르 베르트랑의 얀 비쎄 세일즈 디렉터는 "프랑스 시라의 섬세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와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제라르 베르트랑은 '오렌지 골드(Orange Gold)'라고 불리는 '오렌지' 와인도 생산합니다.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으로 레드 와인을 양조하는 방법으로 만드는 걸 '오렌지 와인'이라고 부릅니다. 와인의 색은 포도껍질이 결정합니다. 레드 와인은 적포도를 껍질째 침용·발효해 만듭니다. 화이트 와인은 청포도를 껍질을 벗기고 맑은 포도즙으로 만듭니다. 제라르 베르트랑의 오렌지 와인은 샤르도네, 그르나슈 블랑, 비오니에 등 청포도 품종을 레드 와인을 만드는 방식처럼 포도껍질과 함께 침용·발효해 만듭니다.
와인의 발상지로 불리는 조지아의 크베브리 와인이 대표적인 오렌지 와인입니다. 제라르 베르트랑은 조지아 와인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오렌지 와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와 동시에 랑그도크의 포도밭을 달구는 지중해의 태양과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얀 비쎄 디렉터는 "오렌지 와인은 지중해의 석양을 생각나게 하는 와인"이라며 "바다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오렌지 와인을 마셔볼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습니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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