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는 멈추고, 평내 진주는 아예 경매행? [이미연의 발로 뛰는 부동산]
"둔촌주공보다 두배 이상 꼬인 현장이다."
"최악의 경우 청산이나 경매같은데, 조합 측에서 진 부채 해결이 요원하다면 아파트는 커녕 조합원 개인에게도 부채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안녕하세요. 금융부동산부 이미연입니다. 작년 이맘때보다는 덜 추운 듯 하지만, 추위 최약체인 저는 여전히 회색롱패딩으로 중무장하고 돌아다니는 '회색김밥' 모드입니다. 기사 클릭해주신 모두 감기, 몸살, 코로나, 이름모를 바이러스 기타 등등 싹 다 피하는 겨울나시길 바랍니다.
이번 시간에도 밝은 이슈를 모셔오지 못했습니다. 뭔가 엄청 꼬인 내용이라 이것저것 알아보다보니 시간이 벌써!
서두가 길었습니다. 다짜고짜 경기 남양주 평내호평지구로 함께 가보시죠. 경춘선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호평동이, 남쪽으로는 평내동이 펼쳐진 이 곳은 20여년 전 지구단위계획으로 조성되어 1시 신도시처럼 구획정리가 잘된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형마트는 물론 멀티플렉스에 먹자골목까지 자리잡아 상권도 안정화됐고, 초·중·고 등 학교도 많아 주거환경도 괜찮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구축 단지도 적지 않지만 북쪽에는 최근 입주한 단지들이 많아 어느 수도권 신도시와 다름없는 모습도 갖췄습니다. 평내호평역에 GTX-B 정차 이슈까지 나오면서 들썩이기도 했는데, 이 지역에 '묵은 재건축' 현장이 있습니다. 그냥 묵기만 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도 상처투성이 상태인 평내 진주아파트입니다.
평내1구역(진주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얼마 전 대주단에게 브릿지론 대출 이자를 지급하지 못해 오는 1월 29일 기한이익상실로 인해 대출 만기 연장 불가와 함께 같은 날 경매가 진행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니 평내호평이 신축 어쩌구 하더니 갑자기 너무 분위기가 확 바뀐 것 아니냐-고 항의하실 분들을 위해 배경 설명부터 가겠습니다.
기존 1231가구 규모의 구축 아파트를 전용면적 46~84㎡, 1843가구으로 탈바꿈하는 평내 진주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2012년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2014년 이주 및 철거도 마쳤습니다.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나 싶었지만 조합 및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와의 끊임없는 이권 다툼으로 소송이 반복되며 1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 전혀 삽(착공)을 뜨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시공사 교체' 시도라는 악재까지 덮쳤는데요. 애초 두산건설이 맡았던 이 현장은 2015년 서희건설로 바뀌었다가, 다시 대우건설·포스코이앤씨·두산건설 컨소시엄이 시공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공사비 인상 이슈와 관련 조합과 비대위 간 이견이 커지면서 벌어진 일인데, 어라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서희건설이 소송을 통해 시공사 지위를 다시 되찾았고,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고금리 브릿지론의 이자는 눈덩이의 눈덩이로 커진 상태입니다.
답답함이 10여년 넘게 쌓인 1200여명의 조합원들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현재 이 현장의 감정평가예상가는 2500억원인데 부채는 1600억원에 달한다고도 합니다. 이 현장을 거쳐간 시공사들이 사업 대여비 명목 등으로 수십~수백억원의 가압류도 걸어놓은 상황이라 그간 여러차례 대출 만기를 연장해줬던 대주단이 이번에는 연장 불가 통보를 한 겁니다.
아이고야 이미 작년에도 경매설이 돌았던 걸보니 당시에도 어렵사리 만기가 연장됐던 것으로 추정되네요. 조합이 어떻게든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의지가 있기는 했는지 작년 5월 교보자산신탁을 사업대행자로 선정하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까지 온 걸보니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신탁방식도 조합원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습니다. 김문수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신탁방식은 조합에서 개발사업에 전문성이 있는 신탁사에 사업권을 위탁하는 형태로, 사업 자체는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으나 신탁보수가 예상보다 많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조합원들이 이 비용 역시 분담해야 하므로 조합원들의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라고 설명합니다.
경매통보까지 받아 그야말로 절벽 끝까지 내몰린 진주아파트 조합원들은 대주단이 경매를 1~2달 정도 조정해주거나, 정부나 지자체가 관선조합장을 선정해 사업을 진행시키거나 혹은 LH가 매입해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좀 개입해달라는 목소리인 듯 합니다만, 이미 부채가 상당한 현장이라 업계에서는 이 방안들이 그다지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경매로 넘어가면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몫이 되버리는 만큼, 경매만큼은 막고 사업을 진행하는 편이 낫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김문수 변호사는 "대체시공사를 선정해 대체시공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기존 시공사에 대한 채무를 변제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방법도 있으나, 공사도급계약을 다시 체결하는 과정에서 현재 시점의 원가 및 금리가 반영되어 공사대금이 예상보다 높게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며 "신탁사와 시공사가 공사대금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협상해서 사업을 진행시키거나, 협상이 안 될 경우 합리적인 공사대금을 제시하는 시공사를 선정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조합원 한 관계자는 "진주아파트 일반조합원들은 조합과 비대위의 싸움에 너무도 지치고 그들만의 싸움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조합이 왜 그렇게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며, 집행부의 비리와 방만, 시공사인 서희건설의 비협조로 일반조합원들만 피해를 보게된 상황"이라고 토로합니다.
경매를 코 앞에 둔 현장의 조합원들이 '서희건설의 비협조'라는 주장을 하시니 시공사 입장도 싣어야 공평하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경매로라도 넘겨서 이 현장을 정리하려는 목적인지, 아니면 어떻게라도 시공사 역할을 위해 방안을 구상 중이신지 이도저도 아니면 어떤 판단 중인지를 여쭈...었으나 서희건설 쪽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것이 없다. 할 말이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하시네요. 흠...
조합과 비대위의 싸움이라, 어라 나 최근에 어디서 본 적 있다-는 기억이 떠오르신다면 아마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아닐까 합니다. 지난 12일이었죠. 재건축 추진 27년 만에 뽑힌 첫 번째 조합장이 법원으로부터 직무집행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본격 재건축을 향해 달리려던 은마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작년 8월 은마아파트 조합장 선거에서 당시 최정희 재건축추진위원장과 이재성 은마소유자협의회(은소협) 대표가 맞붙었는데, 투표절차에 하자가 있었다며 이 대표가 최 조합장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는데 이번에 인용된 것입니다.
최 조합장은 곧바로 항고했고, 조합 측은 새로운 조합장 선출을 위한 공고를 냈지만 선거가 순조로울지 여부는 미지수라고 합니다. 추가 소송 진행시 선거 자체가 멈출 가능성도 있다는데요. 이런 법적 다툼이 길어지면 정비계획 변경을 필두로 한 후속절차는 당연히 밀릴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거기말고 비슷한 다른 현장 또 알고 있다-고 말씀하실 분을 위해 또 찾아왔습니다. 지난해 공사를 시작했지만 공사비 문제로 현재 공사가 멈춰버린 '힐스테이트메디알레'(대조1구역 재건축)입니다. 이 현장도 사업 초기부터 조합과 비대위 싸움으로 조합 설립 후 12년간 조합설립 변경인가를 무려 13번이나 신청했고, 임원 변경마다 소송이 이어져왔다고 합니다.
아 물론 이 케이스로 가장 유명한 곳은 두둥~네 맞습니다. 지금 열심히 한층두층 올라가고 있지만 2022년 공사 중단으로 인한 손실 비용이 무려 약 1조원 정도로 추산된 전력이 있는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입니다.
진행되던 공사가 멈추면 타워크레인 철수부터 사업비와 이자 등 금융비용 증가, 후속절차 지연 등의 문제가 곧바로 뒤따라오고, 이는 조합원들에게 비용부담과 입주 지연 등 직격타로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구를 위한, 아니 무엇을 위한 소송인지는 현장별로 복잡한 사연을 안고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최우선은 조합원들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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