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공제·글로컬대···교육부 밀어붙이기에 선택권 잃은 대학들
서울대는 현재 123명인 자유전공학부의 입학정원을 내년에는 400여명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대는 내년 전체 모집인원의 30~40%를 무(無)전공 체제로 선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양대는 자유전공학부인 ‘한양인터칼리지’를 신설하고 330명을 선발한다.
교육부는 2022년 11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한 후 ‘대학 자율권’을 확대하는 정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정부가 주도하는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가 폐지됐고, 국립대 사무국장 임용에서 관료를 배제하기로 했다.
무전공제도 그 일환으로 꼽힌다. 그러나 ‘공짜’는 아니다. 무전공제와 글로컬대학,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등 일부 규제완화는 사실상 교육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학을 구조조정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교육부는 신입생을 일정 수준 이상 무전공으로 선발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는 ‘국립대학 육성사업 개편안’과 ‘대학혁신지원사업 개편안’을 검토 중이다. 무전공제는 융합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인기 학과 쏠림과 기초학문 고사 등의 부작용도 크다. 대학도 인문학이나 기초과학 관련 학과 구성원의 반발로 고심이 클 수밖에 없지만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서는 ‘반강제’로 무전공제를 시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개편안 시안에 따르면 대학들이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는 대학혁신지업사업비(수도권대)와 국립대학육성사업비(국립대) 총액의 50~60%(수도권 4426억원·국립대 3426억원) 수준이다. 대학 한 곳당 수도권 대학은 약 76억원, 국립대는 약 155억원을 지원받는다.
지방 국립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6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구성원 중 학문적 특성상 무전공제에서 제외해 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대학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라며 “안 하면 돈을 안 주겠다고 하니 이 제도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어도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호 전국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 공동회장(목포대 교수)도 “무전공제는 자율적으로 지역 현실에 맞게끔 시행해야지 이걸로 재정을 나눠주겠다고 하면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2년 차 사업 공모를 앞둔 글로컬대 사업도 사실상 ‘국공립대 통합’을 종용하는 기제가 됐다. 지난해 글로컬대로 선정된 10곳 중 4곳은 통합을 전제로 지원한 대학이었다. 올해 글로컬대 사업을 준비하는 대학들도 통합 논의를 서두르고 있다. 공주대·공주교대, 부경대·한국해양대 등 상당수 대학이 글로컬대 공동 추진을 위한 통합 논의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격렬한 반발 끝에 통합이 무산된 경북대와 금오공대처럼 진통을 겪는 대학도 있다.
김병국 대학노조 조직국장은 “구조조정 기로에 서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부가 재정을 지원하면 장려하는 정도겠지만, 지금은 통폐합을 안 할 수 없는 구조”라며 “재정 지원을 하나의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글로컬대 선정 여부에 따라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대학이다, 아니다 하는 상징성도 있기 때문에 지방대가 통폐합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정한 등록금 ‘동결’ 기조도 대학이 거스르기 어려운 사실상의 규정이다. 올해 등록금 인상률 법정 상한은 5.64%로 높아졌지만 교육부가 직간접적으로 동결 기조를 강조하면서 대학들은 눈치를 보고 있다. 국가장학금 II유형뿐 아니라 글로컬대 등 각종 교육부 지원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2년간 등록금을 올렸다가 올해는 동결할 예정인 한 국립대 고위 관계자는 “모든 대학이 재정 압박을 받는 건 똑같지만 올해는 교육부에서 선제적으로 강력하게 모든 대학에 (동결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고 말했다. 한 지방 국립대 관계자도 “등록금을 2~3% 올리려다가 글로컬대나 육성사업비, 국가장학금 등 여러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올리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401021623001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311131658001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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