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이젠 피해가기 어렵습니다”… ‘워스트 상사’ 선정 방식 바꾼 기재부 노조
기획재정부에서는 새해마다 주목되는 하나의 이벤트가 있습니다. 바로 ‘닮고 싶은 상사’ 투표입니다. 일명 ‘닮상’(닮고 싶은 상사·BEST)과 ‘안닮상’(안 닮고 싶은 상사·WORST)으로도 불리는데요. 전체 실·국장 그리고 과·팀장이 평가 대상입니다.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공무원 조직에서 해당 투표가 그나마 ‘직장 내 갑질’을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번 주 그 투표가 한창입니다.
해마다 정기적으로 하는 행사라지만 올해 치르는 ‘2023년도 닮고 싶은 상사’는 좀 다르다고 합니다. 바로 투표 방식의 변화가 있어서입니다. 그간 베스트 상사보단 워스트 상사에 선정되는 ‘허들’이 높다는 지적이 일었는데, 이번에 이를 개선하기로 한 것이지요.
1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가공무원노동조합 기재부 지부는 최근 내부망을 통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우선 ‘닮고 싶은 상사 투표가 필요하느냐’는 질문에는 ‘필요하다’란 답변에 96%의 선택이 압도적으로 몰렸습니다. 투표 방식 변경에 따른 설문 항목도 있었는데요. 투표 결과에 따라 올해부턴 다수결의 선택을 받은 아래 방식으로 개편됐습니다.
먼저 현행 오프라인 투표 방식에서 더 간편한 ‘QR코드 및 링크’를 통한 전자 투표로 바뀌었습니다. 그간은 정식 선거처럼 청사 건물 층층이 ‘닮고 싶은 상사 투표함’을 설치해 종이 투표를 받아 왔습니다. 또 ‘베스트’와 ‘워스트’ 간 득표를 상계하지 않고 각각 독립적으로 평가하기로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동안엔 워스트 10표와 베스트 4표를 받은 사람이 있으면 워스트 6표를 받은 것으로 취급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워스트 선정 때 일정 기준의 득표율을 넘어서야 충족된다는 규정도 바뀌었습니다. 원래는 실·국장의 경우 투표 대상 직원의 10% 이상을 받아야, 과·팀장은 5% 이상을 받아야 ‘워스트’로 꼽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득표 기준을 두지 않고, 득표수를 기준으로 일정 인원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꿨다는 것이죠.
한 기재부 직원은 “평소 악명이 높은 사람이라도 득표율을 충족하지 못해 워스트를 간신히 피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더욱이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워스트에 선정되기 어려운 구조였는데, 이제는 다소나마 그 부당함이 해소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상사에 대한 더욱 냉철한 평가가 이번에 이뤄질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다만 이런 투표 방식의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워스트로 뽑힌 상사들의 태도일 것입니다. “내가 일을 너무 꼼꼼하게 해서 인기가 없는 것이다”, “닮고 싶은 상사 투표는 큰 의미가 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하는 이들이 늘 존재해 왔기 때문입니다. 반성이 없다면 조직 문화의 변화는 요원하겠지요.
참고로 기재부는 해당 투표 결과에 관해 베스트는 공표하고, 워스트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다만 워스트 상사 리스트는 추후 소문으로 ‘공공연히’ 돕니다. 지난해 투표에선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베스트 상사로 꼽혔는데요. 현직 부총리가 닮상에 뽑힌 건 최경환 전 부총리 이후 7년 만에 처음이어서 화제가 됐습니다.
김동연·홍남기 전 부총리는 모두 워스트 상사에 뽑힌 전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 투표는 지난해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라, 투표 리스트에 최상목 부총리는 올라있지 않다고 하네요. 대신 이름을 올린 추 전 부총리가 장관 닮상 2관왕을 달성할지, 달라진 기준으로 선정된 워스트는 누구일지 곧 발표되는 개표 결과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덧붙이자면 투표 시즌 때마다 기재부가 아닌 다른 부처에서는 ‘우리도 닮상 투표를 하고 싶다’는 볼멘소리가 들려오는데요. 이참에 전 정부 부처에 해당 제도를 도입해 보는 건 어떨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 국토교통부 사무관은 “기재부가 그나마 제일 꾸준하고 투명하게 상사에 대한 투표를 한다”며 “이런 투표가 없는 부처가 대부분이다. 답답함을 이렇게라도 해소할 수 있는 기재부가 부러울 따름”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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