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값으로 3억원?”…정치인 출판기념회, 이대로 괜찮나
선관위 '출판기념회 개정의견'…국회 10년째 ‘묵묵부답’
(시사저널=강윤서·정윤경 기자)
'국민 만을 섬기는 OOO 출판기념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출판기념회에 보내주신 성원, 국민의 일꾼이 돼 보답하겠습니다.'
2024년 새해 벽두부터 전현직 정치인을 비롯해 4·10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인사들의 릴레이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간판은 '출판기념회' 또는 '북콘서트'로 내걸렸지만 사실상 '정치 후원금' 모금 행사라는 점에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상 출판기념회가 금지되기 전날인 지난 10일 5선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탈당을 선언한 조응천 의원 등이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총선 출사표를 던지고 직을 내려 놓은 대통령실 출신과 장관 등 여야를 막론하고 1월 초부터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작년부터 각각 전국을 순회하며 북콘서트를 진행했다.
이 같은 행사에서는 10만원부터 많게는 수백만 원씩이 든 '돈봉투'가 오간다. 정치권에서는 '출판기념회'가 아닌 '출금 기념회'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참석자가 원하는 만큼 '책 값'을 명목으로 정치인에게 돈을 지불할 수 있어서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거둔 수익금은 공개나 회계 보고 의무가 없다. 정치인의 출판기념 행사가 '총선 자금 조달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역 의원 출판기념회 수익금은 회당 수억원대"
출판기념회에서 판매되는 '책 값'은 정가보다 저렴하지만 않으면 된다. 정가가 2만원이라면 10만원을 받든, 100만원을 받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청한 현역 의원 보좌관은 시사저널과 통화에서 "현역 의원이나 공천에 관여된 사무총장 등 각 당 주요 당직자들의 출판기념회 수익금은 한 회당 수천만원에서 수 억원대까지 이른다"면서 "정상적인 방식은 출판사 관리 하에 행사장에 설치된 단말기로 책을 판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몇몇 의원들은 후보자가 직접 판매에 관여하고, 돈봉투를 챙긴다"고 귀띔했다.
불법 정치자금 등 혐의로 기소된 노웅래 민주당 의원이 2022년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3억원 현금다발'에 대해 "2020년 출판기념회에서 모은 후원금"이라고 해명했는데, 정치권에서 "가능한 얘기"라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정치인이 자금을 형성해도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치후원금센터에 따르면, 개인이 정치인후원회에 기부할 수 있는 금액은 연간 2000만원을 넘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개인이나 단체가 출판기념회에서 출판물을 구입하는 것에는 한도가 없다.
출판기념회에서 거둔 수익을 외부에 공개할 의무도 없다. 후원금과 달리 수익금은 정치자금이 아닌 데다 경조사비로 구분돼서다. 사용처가 자유롭다는 점에서도 후원금과 성격이 다르다. 과세 대상에서도 빠진다.
논의 제자리걸음…"구체적 금액 기준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출판기념회 수익금이 과세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도 손질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런 행사로 수억 원이 넘는 수익을 거둬들인 것은 사회 통념에 벗어난다"며 "일정 금액 이상의 수익은 기타소득신고 대상으로 보거나 정치자금으로 규정해 회계 보고를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금액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4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출판기념회에서의 금품 수수를 금지하고 개최 사전 신고를 의무화하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냈지만, 10년째 국회에서 제자리걸음이다. 2018년에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 들어서는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출판기념회가 지속적으로 편법적인 정치자금 모금 수단으로 활용되다 보니 개선이 필요하다"면서도 "정치자금은 정치활동을 위해 돈을 받았다는 게 입증이 돼야 성립하는데 출판기념회 등을 통해 거둔 후원금이나 축하금은 정치자금으로 단정하기 어려워 제지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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