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① 중국 일대에서 떠도는 삼성 D램 공정 기술도

배준우 기자 2024. 1. 1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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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간 한국 엔지니어들 "삼성 기술 유출 심각"

SBS 시민사회부 취재팀은 기술코드명 '볼츠만·파스칼'로 불리는 삼성전자 D램 핵심 공정 설계와 기술도 유출 의혹을 비롯해 기술 노하우를 가진 엔지니어 인력이 유출되고 있는 실태와 그 배후 세력의 실체를 추적했습니다. 8뉴스에 이어 [취재파일]을 통해 총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해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삼성 D램 공정 기술이 중국에 떠돌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중국의 민간 정보원 등로부터 이런 제보 내용을 접했습니다. 경찰은 복수의 경로를 통해 해당 제보 내용을 검증했으며, 일정 부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뒤 이들에게 접근해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삼성 고유의 20나노 D램 공정 기술도 등이 중국 청두가오전에 돌아다닌다'는 등 좀 더 구체화된 내용의 첩보도 접수됐습니다. 경쟁업체가 청두가오전 측을 음해할 목적으로 제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경찰은 관련 제보와 데이터를 축적해 나갔습니다. 경찰은 업계 전반을 조사하며, 이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근거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경찰 수사는 어떻게 시작됐나

이렇게 석 달간 여러 제보의 신빙성을 검증한 끝에 경찰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한 건 지난해 5월 무렵입니다. 경찰-제보자들의 주된 소통 수단은 특정 메신저였으며, 경찰은 신원 검증 등을 위해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내사에 착수할 수 있는 근거 자료들을 임의 제출받았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삼성 고유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미지 사진과 각종 파일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자료와 이들의 설명을 종합해 보니 삼성이 2014년 본격 양산하기 시작했던 20나노 D램의 공정 설계 자료와 기술도와 일치했던 것으로 경찰은 잠정 판단했습니다. 경찰은 제보자들에게 '금전적 대가를 바라고 제보하는 것이냐'라고 물었지만 이들은 "바라는 대가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경찰의 수사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당시 첩보를 입수했던 경찰 내부에서도 '일부 기술 자료를 빼돌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공정 관련 자료를 통째로 빼돌린 건 매우 충격적이다'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기술 유출의 핵심은 삼성전자 전직 수석 연구원


이 기밀 자료의 출처를 역추적한 경찰은 삼성전자 수석연구원 출신 A 씨의 소행인 것으로 잠정 판단하고 A 씨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무렵 A 씨의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검증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영장에는 A 씨가 유출한 것으로 판단되는 증거와 진술 내용이 담겼고, 법원도 이를 인정해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중순, A 씨 자택 내부에 있는 디지털 기기를 집중 수색했습니다. 그 결과 A 씨 고유 계정의 클라우드와 각종 드라이브, 이메일 등에서 삼성 20나노 D램 공정 설계 자료와 이미지가 다수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 씨는 압수물 분석 이후 여러 차례 경찰 소환 조사에서 '자체 기억에 의존해 제3자와 협업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취지로 해명했습니다. 경찰은 진술의 대조를 위해 삼성전자 소속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습니다. 경찰이 최초 이들에게 임의 제출받았던 자료와 A 씨로부터 압수했던 증거를 제시하자 삼성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삼성 내부에서 기술 코드명 '볼츠만'이라고 붙여 극비에 개발했던 자료였기 때문입니다.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삼성전자 측이 별도 입장을 내지는 않았지만, 경찰 강제 수사 이후 삼성전자 내부도 발칵 뒤집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 유출 동기 규명 주력…'중국이 삼성 기술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

경찰은 A 씨가 해당 자료를 유출한 동기를 규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무죄 여부가 확정되기 전까지 그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A 씨가 해당 공정 기술 관련 자료를 유출한 추정 시점과 이를 유출해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충분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경찰은 압수물을 토대로, A 씨가 20나노 D램 공정 기술도(코드명 : 볼츠만) 등을 유출한 시점을 2016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A 씨는 삼성전자 상무 출신 최 모 씨가 싱가포르에 설립한 '진 세미컨덕터'라는 반도체 컨설팅 업체로 이직을 하게 됩니다. 해당 회사 홈페이지나 최 씨의 일부 언론 인터뷰를 찾아보면, 해당 업체는 명목상으로는 반도체 개발 및 수요가 있는 해외 국가를 상대로 반도체 생산성을 높이는 컨설팅 업무를 했다고 최 씨가 설명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 씨가 중국 내 삼성 복제공장 건설을 목표로 지난 2018년 대만 폭스콘과 8조 원 투자 유치를 추진하면서 A 씨가 최 씨와 함께 해당 삼성 D램 공정 설계 자료와 기술도 일부를 활용한 정황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포착됐습니다. A 씨는 당시 최 씨와 함께 폭스콘의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사업 설명 자료를 준비하며 PPT 자료에 이 볼츠만 공정도를 언급하며 '중국이 이러한 기술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하겠다'라는 취지로 세일즈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습니다. 퇴직자들이 모여서 새로운 생계를 위해 세일즈를 하는 건 얼마든지 허용 가능하지만, 그 내용에 삼성 고유 기술이 언급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모든 PPT 자료는 제가 작성한 뒤 최 씨가 최종 검증했다'라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과적으로 폭스콘은 투자 도중 계획을 철회했고, 삼성 복제공장 건설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투자 철회 이유에 대한 여러 풍문이 돌았지만 구체적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A 씨와 최 씨는 2018년 후반 무렵, 중국 내 투자처를 집중 물색하게 됩니다. 당시 최 씨는 중국 청두 지방 정부 인사를 접촉해 4,600억 원 투자를 약속 받았는데, 이때도 A 씨 → 최 씨를 거쳐 '중국이 삼성 반도체 기술을 보유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대중국 홍보 PPT를 띄운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최 씨는 이런 과정을 거쳐 2020년 9월 중국에 청두가오전이라는 반도체 제조업체를 설립했습니다. 당초 명목상 내걸었던 '반도체 컨설팅'의 업무를 넘어 '제조'까지 외연을 확장한 겁니다. 최 씨 측은 "불법 행위는 없었다"라는 입장이지만, 경찰 관계자는 최 씨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사기업의 영업 기밀을 유출한 행위를 넘어 국익을 해치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핵심은 '볼츠만' 유출…옛 기술이어서 중요치 않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2014년에 삼성이 양산한 20나노급 D램 기술은 비교적 옛 기술이어서 중요하지 않다는 취지의 해명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판단하고 있는 A 씨의 유출 추정 시점인 2016년 기준에서 보면, 당시 삼성의 20나노급 D램 공정 기술은 최신 기술이었으며, 1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현행법상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돼 있습니다. 산업기술보호법 상 이러한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시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하게 돼 있는데 20나노 D램 공정 유출은 이러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하는 겁니다.
국내 한 반도체학과 교수는 "반도체 공정 자료가 없어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개발할 엄두를 못 내던 중국과 타이완 입장에서 '20나노 D램 공정 설계 자료'를 갖게 된 건 천문학적인 가치를 얻은 것과 다름없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경찰과 업계 및 전문가들은 청두가오전 측이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등 삼성 20나노 D램과 동일한 수준의 D램 양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그 시점이 머지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국 엔지니어 유출' 조직적 카르텔 의심


기술 유출의 핵심 피의자가 A 씨였다면 인력 유출의 핵심은 어떤 인물일까요. 경찰은 국내의 한 컨설팅업체 대표 B 씨를 지목하고 피의자로 입건했습니다. B 씨는 삼성전자 엔지니어를 거쳐 삼성 디스플레이 상무를 지낸 이력이 있습니다. 범행 구조 상,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 청두가오전 측이 한국 반도체 엔지니어를 끌어들이려면 한국 내 징검다리 내지는 브로커 역할을 하는 업체가 필요합니다. 청두가오전 인사팀은 내부 소속인 일명 '행동대장'이라 불리는 차장급 인사를 한국으로 보내 이 업체를 관리하는 한편 인력 풀을 요청하도록 했고, 업체 측은 행동대장에게 인력 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경찰은 의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B 씨처럼 인력 유출의 배후에서 인력 풀을 제공하는 인물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경찰이 강제 수사 대상으로 특정한 국내 업체만 5곳입니다. 업체 면면을 들여다보면 정부기관 고위직 출신을 비롯해 반도체학과 교수, 삼성전자 출신 등이 대표로 포진해 있습니다. 청두가오전은 국내 컨설팅 업체와 헤드헌터 업체들을 매개로 해서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 전‧현직 엔지니어들을 포섭하고 있으며 해당 업체 대표들은 흔히 말하는 '고관대작' 출신에, 청두가오전 대표와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일종의 '인력 유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셈입니다.
 

법원 "증거 상당수 확보…방어권 보장 필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A 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았습니다.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며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고, 주거가 일정하며 수사에 성실히 응해온 점"을 고려했다고 기각 사유를 적었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증거가 상당수 확보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구속 여부가 수사의 성패 또는 혐의의 유·무죄 인정 여부와 직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이 법원에 A 씨에 대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이유는 범행의 중대성과 불구속 수사 시 다른 피의자들과 진술을 맞추거나 관련 참고인 등을 회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법리를 보완해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신청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입니다. 또 최 씨를 조만간 불러 A 씨와의 공모 여부 등 구체적 사실 관계를 확인해 나갈 방침입니다. 이어지는 [취재파일] ②편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조직적 카르텔의 실체와 18~16나노 D램 기술의 중요성' 등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배준우 기자 gat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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