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상인의 초상이 이탈리아의 조선인 '안토니오 코레아'가 된 사연 [송주영의 맛있게 그림보기]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베스트셀러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기억하는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진 못했어도 오세영이 쓴 ‘베니스의 개성상인’(2023년 개정판 문예춘추사 발행)을 읽은 사람은 많을 것이다. 1993년 초판 발행된 이 책은 2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유명해졌다.
이 책의 초판과 2002년 개정판 표지는 17세기 바로크미술의 거장인 페테로 파울 루벤스(1577~1640)가 그린 동양인 남성의 초상화다. 이 그림은 1983년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소묘 부문 최고가인 32만4,000파운드(약 5억4,600만 원)에 낙찰됐다.
동시에 그림 속 동양인 남성의 정체에 대한 설이 분분했는데, 돌연 조선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1979년 한국일보 파리주재 특파원의 보도로 '코레아'라는 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사는 이탈리아 알비(Albi) 마을의 존재가 알려지면서다. 성이 '코레아'인 주민들이 조선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조선인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예들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1992년에는 문화부(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임진왜란 400주년 기념행사로 알비 주민을 한국으로 초청했을 정도였다. 하나 훗날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이 마을과 안토니오 코레아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즈음 베스트셀러가 된 오세영의 소설은 루벤스의 동양인 모델이 조선인이라는 인식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2013년 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게티뮤지엄에서는 이 그림을 중심으로 루벤스 전시회를 개최하며 대규모 한복 패션쇼까지 열었다. 그렇게 20년 동안 많은 이들이 루벤스의 동양인이 안토니오 코레아라고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미술사학자는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Man in Korean Costume)’는 한국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 그림이 ‘한복 입은 남자’가 된 사연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는 1617년 무렵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루벤스가 1618년에 완성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적’ 작품 속 동양인 묘사를 위한 연습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루벤스의 동양인 소묘화는 약 130년이 지난 1746년 영국인 조나단 리처드슨(1667~1745)의 유품으로 처음 경매장에 등장했는데, 당시 제목은 ‘사이암(Siam·현재의 태국)의 사제’였다. 이로부터 28년 후 다른 영국인의 집에 걸려 있던 이 그림을 아마추어 판화가가 베껴 제작한 후 “영국을 방문한 사이암 대사. 루벤스가 영국 왕실을 위해 그렸다”고 부풀려 기재했다. 이 때문에 이후 수백 년 동안 루벤스의 동양인은 태국인 또는 중국인 고위관리로 여겨졌다.
160년이 지나 1934년 미국 미술사학자 클레어 스튜어트 위틀리가 사이암 사람이 영국을 방문한 적이 없음을 밝히면서 그림 속 의상이 중국이 아닌 조선의 것이라고 처음 주장했다. 1983년 소더비 경매로 이 그림을 소장하게 된 게티뮤지엄은 위틀리의 주장을 받아들여 제목을 ‘한복 입은 남자’로 명명했다. 루벤스의 동양인은 18세기에는 태국인이었고, 19세기에는 모든 동아시아인을 중국으로만 인식했던 탓에 중국인으로 불렸다가 20세기가 되면서 한국인이 됐다.
안토니오 코레아, 그리고 또 다른 익명의 조선인 노예
루벤스 그림 속 동양인이 한국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 근거들 중 하나가 17세기 실존 인물 안토니오에 대한 기록이다. 이탈리아 피렌체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1573~1636)의 ‘나의 세계여행기(1701)’에는 1602년에 일본에서 데려온 조선인 안토니오와 함께 네덜란드 미델부르크에 도착했고 이후 안토니오가 로마로 이주했다는 내용이 있다. 카를레티의 여행기는 그가 죽고 65년 후에 만들어졌기에 정확한 사료가 될 수 없다는 문제점, 즉 공식 문서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루벤스가 조선인 안토니오를 만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지역도 맞지 않는다. 또한 그림 속 의상과 모자가 조선과 다르다는 반론도 있었다.
네덜란드 거주 사학자 지명숙은 저서 '보물섬은 어디에'에서 루벤스 그림의 남성이 안토니오가 아닌 또 다른 익명의 조선인이라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1628년 문서에 따르면, 일본에서 활동한 네덜란드 무역상 자크 스펙스에게 익명의 조선인 노예가 있었는데 그는 1615년부터 혼자 네덜란드에서 일했다. 지명숙은 이 조선인이 네덜란드어와 일어를 구사하는 뛰어난 상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미술사학자들은 이 조선인이 루벤스를 만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학자들이 다양한 추측을 내놓는 동안 한국에서는 ‘루벤스의 동양인은 조선인’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2017년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루벤스의 그림은 신사임당을 사랑했던 왕족 이겸이 소년 시절 이탈리아에서 지낼 때 그려진 초상화로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가 이 모든 것을 뒤집는 그림이 나타났다.
“나는 명나라에서 온 이퐁입니다”
2016년 ‘네덜란드미술사연보’에 실린 논문 한 편이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의 미술사학자 테이스 베스트스테인이 발표한 이 논문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동양인의 초상화가 상세히 소개됐다.
네덜란드 미델부르크의 변호사 니콜라스 드 프리서가 1595년부터 1609년까지 수집한 ‘앨범 아미코룸'(지인들의 글, 서명, 그림을 모아둔 모음집)에 중국인이 한자로 쓴 이 문장에 주목해보자. “내 이름은 ‘이퐁(興浦)’. 명나라 상인이다. 반탐(인도네시아)을 거쳐 제란트(네덜란드)에 왔고 반탐을 거쳐 다시 명나라로 간다. 1601년 1월 14일 제란트에서 쓴다.”
종이 뒷면에는 라틴어로 이퐁이 6개월 전 후추를 선박료로 지불하고 왔다는 이야기, 한자 문장을 쓰고 읽는 순서, 의상과 신발 이야기, 그리고 작별인사를 나누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그의 한자 이름 ‘흥포(興浦)’는 중국 표준어 발음으로는 ‘싱푸(xingpu)’인데 ‘이퐁(Yppong)’으로 적혀 있다. 중국 남방식 발음이었거나 라틴어 작성자가 잘못 들어 표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퐁의 이후 행적은 비교적 상세하다. 그가 1602년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인포’라는 중국인이 1602년부터 약 10년 동안 동인도회사에서 활약했고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 여성과 결혼하여 아들 낳고 살다가 많은 유산을 남기고 1614년에 사망했다는 동인도회사 문서가 있다. 연구자들은 ‘인포’와 ‘이퐁’을 동일인물로 보고 있다. 이퐁이 직접 작성한 글로 미루어 보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지는 못했던 비교적 낮은 신분으로 추정된다.
이퐁의 모습과 루벤스가 1617년 무렵에 그린 동양인, 그리고 루벤스가 이듬해 1618년에 완성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적’의 동양인 모습은 명백하게 유사하다. 소묘화 속 말총 모자는 위아래가 잘린 탓에 조선 양반의 갓처럼 보였지만, 중국 평민들도 사용했던 것이다. 이퐁의 신발과 제단화 속 동양인의 신발도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긴 어렵다. 루벤스는 이퐁이 도착하기 3주 전에 네덜란드를 떠나고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퐁을 만나지 못했고, 훗날 예수회가 의뢰한 제단화를 위해 동양인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앨범 아미코룸’을 참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미 중국 베이징을 드나들던 예수회의 유럽 사제들이 중국에서 가져온 의상 중에 조선의 의상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간 ‘한복 입은 남자’로 알려진 루벤스의 소묘화는 그 중간 단계에서 연습처럼 그린 일종의 ‘몽타주’인 셈이다.
이제서야 중국인 이퐁의 초상화가 알려진 이유
한눈에 봐도 이퐁의 모습은 루벤스의 소묘화를 떠올리게 만드는데, 어째서 이 진실은 최근에서야 알려졌을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앨범 아미코룸’은 공개적 학술자료가 아닌 개인 소장품이기 때문이다. 이퐁의 초상화가 연구자들의 눈에 처음 든 것이 2008년이었고 2012년에 이미지가 공개된 적 있지만 연구된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던 이퐁이 쓴 문장은 네덜란드 연구자들이 해석하기에는 난해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루벤스의 동양인 모델이 이퐁임을 밝힌 베스트스테인 교수는 자료 조사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앨범을 소장하고 있는 미국인 개인 소장자를 찾아냈지만 책을 보여주거나 자신의 이름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이에 고문서 판매사로부터 디지털 이미지 자료를 입수하고 경매 공개자료 및 관련문헌 비교 조사를 실시했다.”
베스트스테인 교수는 '앨범 아미코룸'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디지털 자료 및 축적된 다양한 데이터베이스 활용할 수 있었기에 동양인 초상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디지털 자료 및 네트워크가 부족했던 20세기의 연구자들이 모를 수밖에 없다. 베스트스테인 교수는 2018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실망스럽겠지만 더 이상 영화나 소설 속 안토니오 코레아 서사에 속지 말라”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그는 2016년의 논문 말미에 “그러나 안토니오 코레아의 존재가 부정될 수는 없다”며 이퐁과 안토니오가 1년 반 간격으로 차례로 네덜란드 미델부르크에 머물렀기 때문에 중국과 조선을 구별하지 못했던 네덜란드인들의 시선 안에서 뒤섞여 있다가 15년 후 루벤스가 동양인의 이미지를 조사할 즈음 혼용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어이 거기! 나를 보고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당신, 제대로 보라!”
루벤스의 동양인 초상화가 한국인이라며 들떴던 모습을 돌아볼 필요는 있지만, 지나치게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오염된 정보는 신속히 폐기하되 양질의 새로운 데이터를 성실하게 살피려는 자세는 학술연구자들에게만 국한된 덕목은 아닐 것이다.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학술적 자세가 늘 열려 있어야 함을 믿는다면, 루벤스의 동양인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놓쳤을지도 모를 과거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갔음에 설레야 한다.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는 한국인이 아닐 것이 확실시되나 17세기 유럽인들에게 낯선 이방인에 대한 창조적인 시선이 담긴 경이로운 예술작품이며 동서 교류의 역사를 밝혀줄 좋은 사료임에는 틀림없다. 이퐁의 초상화 우측 하단에는 라틴어로 이렇게 쓰여져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답답했던 이퐁의 문장이었을 것이다. 이는 그의 존재와 정체를 두고 갑론을박한 후손들을 향해서도 유효하다.
"어이 거기! 나를 보고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당신, 제대로 보라! (Heus tu, qui me vides. nec quid sim capis.)"
미술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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