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신현빈 덕분에 편안했고 따뜻했고 먹먹했다('사랑한다고 말해줘')
[엔터미디어=정덕현] "우리가 너무 다르다는 게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한 팔을 잃은 사람은 팔이 하나인 사람끼리 사랑하면 괜찮은 걸까? 얼마 못 가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게 될 거라는 말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 그렇다고 하자. 그럼 원망하고 미워지기 전까지는 옆에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 모든 게 싫어지기 전까지는 열심을 다해봐도 되는 건 아닐까. 똑같은 모양 똑같은 크기의 마음은 아닐 지라도. 그래서 조금은 공평하지 못할지라도 그때까진 우리 사랑해도 되지 않을까?"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정모은(신현빈)은 그렇게 자신이 선 연극무대에서 말한다. 그건 정모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고 그래서 그 대사는 자신의 이야기 그대로다. 마침 그 연극을 보러 온 차진우(정우성) 앞에서 정모은이 하는 연기는 그래서 연기가 아니라 헤어졌던 차진우에게 건네는 진심으로 다가온다. 정모은은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차진우와 사랑했지만 두 사람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결국 헤어졌다. 하지만 헤어진 후 아픈 나날들을 지나 그녀는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꺼내놓는다. 다르지만 우리 사랑해도 되지 않을까 라고.
이 인상적인 엔딩 장면은 <사랑한다고 말해줘>가 그려온 사랑의 서사가 가진 특별한 면들을 잘 보여준다. 듣지 못하는 사람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만나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드라마는 차진우와 정모은의 소통의 장벽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보편적인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라는 정모은의 대사가 그걸 말해준다. 차진우와 정모은처럼 극적이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는 다르다. 그래서 원망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싫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그렇게 될 걸 알기에 두려워하고 피하기보다는 그렇게 될 때까지는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마음이 똑같을 수 없고 그래서 누구는 더 사랑하고 누구는 덜 사랑하는 불공평함이 있을 지라도 사랑해야 한다고.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담는 멜로드라마가 이처럼 보편적인 인간애에 대한 서사까지를 담아내려 했다는 건 이 작품이 얼마나 삶에 대한 깊이를 담으려 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차진우가 그림으로 세상에 사라져간 이들을 기억하려 하고, 그 누구도 배우라 불러주지 않던 정모은에게 그림과 함께 '배우님'이라고 써서 그 마음을 전하는 장면이나, 정모은이 연극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대목을 보면 이 작품이 가진 예술에 대한 생각 또한 드러난다. 예술은 결국 그렇게 인간의 온기가 필요한 곳에 마음을 쓰는 데서 나오는 것이고, 그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럴 듯하게 표현하면 이 작품은 '사랑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를 보여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을 완성해낸 정우성과 신현빈의 연기 또한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청각장애를 가진 인물로서 말이 아니라 표정으로 몸짓으로 때론 글과 그림과 수어로 마음을 표현해야 했던 정우성은 이 작품의 불가능해 보이는 뼈대를 세웠다. 그의 표정 하나, 몸짓 하나 때문에 우리는 실로 오랜만에 침묵 속의 편안함을 공유했고, 마음이 따뜻해졌으며, 나아가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슬픔에 먹먹해졌다.
도무지 소통이 불가능할 것 같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조금씩 마음이 나눠지고 이끌리고 사랑하면서 때론 노력하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고 슬퍼했던 그 일련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해줬던 신현빈에게도 고마움이 느껴진다. 정모은의 연기에 진심이 담겨 차진우에게 전해졌듯, 그녀의 연기에 담긴 진심들은 우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연기자들로서 그들의 연기가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걸 두 배우는 이 작품을 통해 경험하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보는 잔잔하지만 폭풍 같은 감정과 세상과 예술에 대한 새삼스런 깨달음까지 전해준 드라마다. 표피적인 사랑과 자극들이 콘텐츠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오히려 침묵 속에 더 큰 여운을 남기는 드라마라고나 할까. 그 여운은 차진우가 막 정모은과 헤어지고 돌아섰을 때 가졌던 마음을 담은 내레이션처럼 우리의 귓가를 맴돈다. '헤어졌다는 건 얼마 전까지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다는 뜻이다. 떠난다는 건 방금 전까지 누군가 내 옆에 머물렀다는 뜻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곁에 두지 않았던 이전의 시간들보다 훨씬 따뜻하니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지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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