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글로벌 호라이즌] 인구소멸, 갈라파고스 규제, 저탄소, 국가개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노트르담 성당과 중세 유럽의 장인
지난 여름 프랑스 파리를 가 보니 몇년전 화재로 소실된 노트르담 성당의 복원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판 외벽에 조성된 역사 전시물을 보다가 노트르담 성당이 1163년 공사를 시작해 1350년 완공, 거의 187년이 걸렸다는 부분에서 문득 발걸음이 멈추었다.
30년 공직생활을 하며 여러 경제정책을 다뤘지만, 우리의 시스템은 바로 몇년 후 혹은 임기 중 성과를 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내 생애를 넘어서는 국가의 대계를 고민하고 설계하도록 되어 있던가? 잠시나마 12세기 중세 유럽의 장인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펴보았다. 내 생애에 이뤄질 지 모르는, 당시 과학기술로 가능할 지도 모르는 대역사를 추진하며, 내 세대에 다 이루겠다는 조바심이나 욕심으로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내 자손들 수대에 걸쳐, 각자 세대에서 조금씩 이루고는 다음 세대로 바통을 터치하며 결국 완성짓겠다는 담대한 스케일의 비전, 철저한 장인정신과 사명감이 있었기에 천년을 이어온 인류의 마스터피스(masterpiece)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2024년 벽두에 워싱턴에서 느끼는 현 대한민국의 위상은 매우 고무적이다. 우리의 60-70년대 세대는 경제개발을 이뤘고, 80-90년대 세대는 민주화를 이루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뤄냈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최첨단 공급망과 기술에서 한국기업들은 혁신을 선도하고 있고, 강남스타일, BTS, 기생충, 떡볶이 등 한류는 1960년대 비틀스 등 영국문화의 미국 공습에 비유되는 등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론 클레인은 급변하는 세계 질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호주를 포함해 현재의 G7(주요 7개국)을 G9(주요 9개국)으로 확대 개편하자는 글을 최근 카네기 재단 웹에 발표했다. 한국이 세계 정치, 경제, 외교의 틀을 만드는 소수 선도, 선진국가로서의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정도면 샴페인을 터트려도 되지 않을까?
징키스칸과 백의민족
샴페인을 터트리면 안 되는 첫번째 이유는 백의민족의 인구 감소 위기다. 전세계를 말발굽 아래 호령하던 몽골 징키스칸의 후예들도 수백년을 지나 300만명을 조금 넘는 소수민족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 연말 뉴욕타임스에서 한국의 인구소멸이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으로 40~50퍼센트의 인구가 소멸된 것을 능가할 것이라 우려한 “한국이 사라지는가(disappearing)?” 칼럼은 한국 사회는 물론 해외에도 큰 충격파를 일으켰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도 한국의 저출산 추세가 계속되면 한세대가 지나면서 매번 인구가 반토막날 것이라고 X(구 트위터)에 경고했다. 결론적으로 인구소멸·저출산 대책은 중장기적 한국경제의 명운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변수다. 한 나라의 국력은 경제력에서 나오고, 특히 경제 강국은 일정 규모의 인구가 뒷받침이 되야 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 5000만명의 인구도 일본의 40% 규모에 불과하고, 내수가 충분한 규모의 경제는 아니라 우리는 생존전략으로 수출에 방점을 두어 왔다. G7 국가들 중 우리보다 인구가 적은 나라는 캐나다에 불과하다. 그나마 캐나다는 수십년간 적극적 이민정책을 통해 1966년 2000만명이던 인구를 두배로 늘려 작년 4000만명을 돌파했다. 외국 노동력, 특히 고급 인재 유치는 적극 필요하지만, 이민은 경제를 넘어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최근 미국과 서유럽에서 급증하는 이민으로 인한 포퓰리즘의 성행, 정치의 극우화 현상 등은 우리 사회에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최근 골드만삭스, PWC 등이 발표한 2050년, 2075년 경제규모 전망의 요지는 브라질, 인도네시아, 멕시코, 파키스탄, 이집트, 나이지리아 등 인구 대국의 신흥시장들이 약진하고 우리나라는 15위권 밖으로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이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핵심광물 보유, 디지털 시장 등의 기회요인을 활용해 합리적인 경제개발을 이룬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인구소멸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싱가포르나 노르웨이처럼 작으면서 잘 사는 나라가 될 수는 있으나,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강국이 되기는 어렵다. 피크를 찍고 내려갈 일만 남는 것이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인구소멸을 방지하기 위한 우리시대의 문샷(Moon shot)이 필요하다. 케네디 대통령이 10여년만에 인간을 달로 보낸 사치의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20-30년을 시계로 백의민족의 생존을 위한 대대적인 국가개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덴마크에 가서 지하철을 탔는데 평일 대낮에 유모차들이 많은 데 놀랐다. 이유를 들어보니 덴마크에서는 질좋은 공교육으로 무료로 대학까지 교육 받고 괜찮은 덴마크 기업들에 크게 어렵지 않게 취직해 안정되다 보니 일찍 결혼하고 데이케어 등 육아정책이 워낙 잘되어 있어 직장 다니면서도 아기들을 많이 낳는다는 것이었다. 미국 동료들 중 한 변호사는 재택근무로 집에서 근무하다가 오후에 집 앞 학교버스 정거장에 아들 마중 나가 손 잡고 같이 걸어 오는데, 그 하루 10분의 투자로 인해 가족의 행복감과 일의 생산성 모두 높아졌다며 만족해 했다.
미혼남녀로 하여금 결혼과 아기 가질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교육, 주거, 취업, 육아 등의 세세한 부분까지 그들의 입장에서 꼼꼼히 챙겨 보고, 우리 사회 전반의 가치관과 사회적 합의까지를 포함하는 대대적인 의식 개선과 시스템 개조가 필요하다면 그리 해야 한다. 인구 문제에 있어서만은 정쟁을 떠나서 여야가 함께 30년 후를 바라보고 정권에 상관없이 일관된 정책을 가져갈 수 있는 비상 체제의 국가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1960~80년대 당시 서구경제학자들과 세계은행 등의 비관론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를 짓고, 철강 및 자동차 산업 등을 일으킨 한국경제의 선각자들 덕분에 오늘 세계 속의 한국 경제가 우뚝설 수 있었듯이 말이다. 이 시대의 우리 정치가 이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재보다 못한 미래를 우리 자식 세대에 물려주는 최초의 부모 세대가 될 것이다.
‘IT 강국’의 실재와 갈라파고스 규제
두번째는 아직도 우리 경제의 많은 부분에 존재하는 갈라파고스적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다. 외국인 거주자 200만, 외국인 관광객 2000만 시대에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첫인상을 물어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IT 강국”과는 다소 뜻밖의 대답을 듣는 경우가 많다. 일본, 동남아 등 아시아 어디를 가도 구글맵으로 목적지를 검색하고, 우버(Uber) 등 공유택시를 불러 합리적인 가격에 목적지까지 편히 갈 수 있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해 보면 구글맵이 안 되고, 우버도 안 된다는 데 놀란다. 어쩔 수 없이 일반 택시를 타려면 해외 신용카드는 안 된다는 경우가 많다. 한국앱을 다운로드 받거나, 한류상품을 온라인으로 사려면 국내 핸드폰번호가 필요한 경우가 많고, 그 인증용 핸드폰 개설을 하려면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외국인들에게는 절망적이다. 우리는 IT 강국이라고 자부심을 갖지만, 아직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적 규제들이 많다. 최근 공정위에서 추진중인 플랫폼 규제법안도 워싱턴에서는 이미 사전규제의 비효율성과 미국기업에 대한 차별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핵심인 우버 등 혁신적 기술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국내 이해집단의 반대와 사회갈등 조정능력 상실로 한국에서는 아직 먼 얘기로 들린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경쟁 촉진, 소비자 혜택 측면의 손실은 물론, 기업가정신에 넘치는 우리의 뛰어난 창업가들이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고 혁신 생태계가 계속 확대 발전할 수 있는 큰 기회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에는 우버가 들어온 후 그랩(Grab), 고젝(Gojek)이라는 비슷한 로컬 비즈니스가 생겨나며 디지털 기술과 생태계가 크게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미국, 동남아 등에서는 기존 택시 기사들도 상당수가 공유 택시로 성공적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다.
2022년 “스타트업 코리아!” 보고서에는 전세계 100대 유니콘기업 중 55개 기업이 한국의 현행 규제체제 하에서는 영업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새로운 분야에서 한국판 차세대 유니콘들이 성장할 기회를 갈라파고스적 규제로 원천적으로 봉쇄 당하는 것이다. 일부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국내의 규제에 막혀 싱가포르 등으로 “디지털 망명”을 하고 그곳에서 신기술과 신비즈니스 모델을 마음껏 시험해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흔히 “IT 강국”이라 할때, 한국이 세계 최고수준의 반도체, 광대역망 등 하드웨어“T(Technology)” 강국인 것은 분명하나, 소프트웨어적인 정보 및 비즈니스 모델 활용 및 응용 “I(Information)” 측면에서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투자가들, 외국인학생 들로 “갈라파고스 규제혁파 자문위원회”를 구성해서, 외국인들의 시각에 비친 한국만의 규제를 하나하나 발굴해 고쳐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저탄소”의 정치경제학: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
세번째는 미래 세계경제의 신동력이 될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것이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전략으로 남들보다 빨리 시작은 했으나, 그때는 정부가 시장을 앞서 갔고, 지금은 시장이 정부를 앞서 가고 있다. 여러 정권을 거치며 에너지 정책이 정치화되고 있는 사이 남들은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최근 두바이에서 막을 내린 UN기후변화회의 (COP28)에서 원전을 최초로 저탄소 에너지의 하나로 인정했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2030년까지 3배로 늘리도록 노력한다는데 동의했다. 이제는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 특히 신재생에너지는 우리나라가 국제수준에서 현저히 뒤져 있는 부분이라 집중적인 경제적, 정치적 투자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7% 내외에 불과하나, 우리와 자연적 여건이 비슷한 일본만 해도 20%를 넘었다. 중국은 그린테크를 향후 경제성장의 핵심축으로 삼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신재생에너지 용량은 50% 이상 확대됐고, 중국의 태양광 확충은 전세계를 합친 것보다 컸다. 2025년까지는 신재생에너지가 석탄을 능가하는 최대 에너지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작년 유럽, 미국의 신재생에너지 확대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향후 5년간 신재생에너지가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을 전망하면서도,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전망치는 40% 이상을 낮춰 잡았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국토가 좁고 사막이 없어서, 우리는 에너지 다소비 제조업 위주로 되어 있어서... 라던 과거의 제약들이 이제는 혁신적 그린 테크의 발전과 가격 하락으로 상쇄가 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 코로나에서 인류를 구한 모더나 백신은 이틀만에 컴퓨터로 설계가 이뤄졌다. 몇년 전만 해도 현재 수억명이 무료로 사용하는 인공지능(AI) 돌파기술의 대중화가 이뤄질 줄 상상이나 했었던가.
오징어 게임과 G7 한국은 위기에 강하다.
현 시점에서 한국 경제가 처한 도전적 과제들, 특히 저출산 인구소멸, 갈라파고스적 규제, 저탄소 경제 등이 공론화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이를 극복하고 미래의 경제강국으로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오징어 게임’은 가장 한국적인 소재와 창의적 아이디어가 넷플릭스라는 서구의 그릇을 만나 세계를 석권한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이상적 모델이다. 2024년이 “오징어 게임”처럼 가장 한국적인 경제개발 모델로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 경제가 글로벌 스탠다드와 새로운 글로벌 리더쉽으로 세계에 우뚝선 G7으로 승천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 前통상교섭본부장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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