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ETF 승인]⑤개미는 '불장' 이끌었는데…법인 투자는 '하세월'

편지수 2024. 1. 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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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검찰은 실명계좌 열어도…법인은 갈 길 멀어
"법인 실명계좌 신중해야" vs "한국만 법인투자 불허"

금융당국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를 막으며 국내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는 더욱 요원해졌다. 가상자산업계는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외국인과 법인, 기관의 투자를 허용해야 한다고 꾸준히 목소리를 냈지만, 규제를 풀어주기는커녕 비트코인에 간접 투자할 수 있는 ETF 거래 중개마저도 꽉 막힌 상황이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 마련까지 시간 걸릴듯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은 일제히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 거래를 중단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비트코인 선물 ETF 거래까지 제한하는 등 부랴부랴 선제 조치에 나섰다. 금융당국이 해외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가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른 투자 중개 상품의 범위에서 벗어났고, 정부 입장과도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주가지수나 채권지수, 금이나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나 파생상품 가격 등이 기초자산이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은 비트코인이 기초자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법을 해석했고, 그렇기에 현물 ETF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단 비트코인 가격을 쫓아가는 비트코인 선물 ETF는 따로 규제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통령실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과 관련해 다각적으로 검토할 것을 지시했지만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려면 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한데, 올해 총선을 앞두고 있는데다 총선 이후 상임위를 구성하려면 추가적인 시간이 소요된다.

금융당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의 국내 거래를 허용했다가 기존 자본시장에서 상당한 자금유출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는 "거시금융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전통금융에서의 자본이 유출돼 가상자산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정부 입장에서는 리스크"라면서 "한동안 국내서 투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미들이 이끄는 비트코인 불장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호재로 인정받은 것은 비트코인이 제도권 금융에 편입되고, 기관·기업이 간접적으로 투자할 길이 열리면서 자금이 대거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반면 국내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개 거래조차도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으면서, 법인이 가상자산에 투자할 길이 아예 막혔다.

국내는 법인이 직접 가상자산에 투자하기도 어렵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으로는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을 제한하지 않지만, 은행에서 법인에 거래소 이용을 위한 실명계좌를 사실상 발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거래가 불가능하니 가상자산을 매입하거나 현금화할 수가 없다. 

법인과 기관의 참여가 불가능해 사실상 '개미'(개인투자자)로 이뤄져 있는 셈이다. 한계가 분명하지만 한국이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지난해 하반기 비트코인 랠리를 주도한 것은 한국 투자자들이었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씨씨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거래된 비트코인의 법정화폐 중 원화 비중은 42.8%에 달한다. 무려 전세계 비트코인 투자자 10명 중 4명은 한국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검찰·국세청 등 정부기관만 제한적 허용

국내 가상자산 업계는 가상자산거래소를 중심으로 법인, 기관의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해줄 것을 오랫동안 요구해왔다. 기관과 법인의 참여가 있어야 투기 세력이 정리되고 시장이 투명해질 수 있다는 이유다.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가 막히다보니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B2B(기업간거래) 산업인 커스터디(수탁) 사업이 성장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정부기관의 실명계좌를 발급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검찰청은 몰수·추징한 가상자산을 현금화하기 위한 가상자산 계좌를 개설했고, 국세청도 실명계좌 개설을 위해 현재 금융당국과 협의 중이다. 그러나 일반 법인의 실명계좌 발급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입장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법인 투자를 허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고민해보겠다"고 밝혔으나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정보분석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자금세탁방지(AML) 우려가 크기 때문에, 법인의 실명계좌 발급은 시장 상황을 보면서 신중하게 검토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석진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 거래량 상위권을 보면 미국, 일본, 한국 순인데 우리나라만 법인 투자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면서 "지금 국내는 개인투자자들에 의해서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데,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이려면 법인, 기관 같은 전문투자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편지수 (pjs@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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