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불 지핀 ‘한반도 핵전쟁 위기설’…위험한 도박, 왜?
김정은 韓 4월 총선·美 11월 대선 겨냥 의도적 긴장 고조 시도
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 전쟁 등 국제정세 요동 틈타 새판 짜기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한반도에 ‘핵전쟁 위기설’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북한은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면에 나서서 연일 대남 고강도 위협을 쏟아내는 동시에 연초부터 신형 극초음속 고체연료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시험발사와 잇단 포사격 등 무력도발까지 감행하고 있다.
한국 역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북한의 도발에는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강대 강’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의 대남 협박 수위가 치솟은 가운데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함(10만t급)이 한반도에 전개됐고, 한미일은 이를 계기로 해상훈련을 실시하며 대북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최근 김 위원장의 대남 위협 발언은 예사롭지 않다.
그는 지난해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조선 전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 준비’로 포문을 연 데 이어 최근 군수공장을 찾은 자리에서는 ‘대한민국 완전 초토화’를 운운하며 전쟁을 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위협했다.
급기야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헌법에 전쟁이 일어날 경우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일련의 과정에서 선대 수령인 조부 김일성 주석과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관계와 통일노선을 뒤집기까지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리고 미중갈등 격화 등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핵보유국’을 자처할 만큼 고도화된 핵무력을 바탕으로 한반도 정세 판 자체를 아예 새로 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를 유도하겠다는 노림수도 읽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환한 표정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을 맞이한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한국의 4월 총선과 미국의 11월 대선을 겨냥한 포석이기도 하다.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평화냐 전쟁이냐’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남남갈등을 촉발시키려는 것이다.
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시나리오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향후 윤석열 정부를 철저히 배제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직거래를 하는 이른바 ‘통미봉남’을 통해 대북 제재와 압박에서 벗어나겠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유세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똑똑하고 터프하다. 그는 나를 좋아했고 나는 그와 잘 지내서 미국이 안전했다”고 말했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판단을 ‘몽상’으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추구해온 핵무력 고도화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지만 체제불안과 경제난 등이 여전히 해소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를 외부, 특히 한국에 돌리려는 의도도 내포됐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북한의 도발에는 강력히 대응한다는 대원칙 아래 한미동맹과 한미일 공조 강화로 응수하고 있다.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 등 2척과 미 해군 제1항모강습단 소속 항공모함 칼빈슨함 등 5척, 그리고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 콩고함 등 2척, 총 9척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제주남방 공해상에서 실시하는 한미일 해상훈련이 일례다.
훈련은 한미일 국방당국이 지난해 12월 다년간의 3자 훈련계획을 공동 수립한 이후 올해 처음 시행된 3자 해상훈련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수중 위협 등에 대한 한미일의 억제·대응능력을 향상하고 대량살상무기(WMD) 해상운송 해양차단 등 해양안보 위협 대응과 규칙기반의 국제질서 구축을 위한 3자간 협력을 증진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명수 합참의장은 훈련 첫날인 지난 15일 한미일 해상훈련 중인 미 칼빈슨함을 찾아 훈련 상황을 점검하고 한미일 장병을 격려했다.
김 의장은 이 자리에서 “한미일 해상훈련은 날로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 대응하는데 핵심적으로 기여해왔다”며 앞으로도 다년간 3자 훈련계획에 따라 한미일 공조태세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북한의 대남 위협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남북 간 강대 강 국면이 지속되면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마냥 배제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북한문제와 한반도문제에 정통한 미들베리국제연구소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최근 “김정은이 언제, 어떻게 방아쇠를 당길지 모르지만 지금의 위험은 한미일이 늘 경고하는 도발 수준을 넘어섰다”며 “김정은이 1950년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전쟁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1990년대 북핵위기 당시 미 협상대표로 나섰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 역시 최근 “2024년 동북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경계했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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