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문제 있었다"…성범죄 피의자의 '2차 가해' 왜 반복될까
(서울=뉴스1) 임윤지 기자 = 불법촬영 혐의를 받는 축구선수 황의조(32)와 그의 변호사가 영상 피해자를 2차 가해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아직 경찰 수사 중이라 황씨의 2차 가해 여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2차 가해가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차 가해는 범죄 피의자 등 사건 관련자가 주로 자신의 혐의를 방어하는 논리를 펼치다가 발생한다. 자신은 무고하고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다며 피해자 신상이나 개인사, 성범죄 당시 정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식이다. 사회적으로도 피해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2차 가해의 개념이나 심각성을 인지하는 못하는 분위기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집단 따돌림 △폭행 △폭언 △그밖의 정신적 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 등을 2차 피해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피해를 일으키는 행위가 '2차 가해'인 셈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4조2항에서는 누구든지 피해자를 특정해 파악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동의 없이 신문이나 인터넷에 공개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신원 유출을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하게 된다.
2차 가해는 통상 피해자를 비난하고 의심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이에 따른 피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의된다. 문제는 범위가 추상적이고 모호해 그 틈을 파고들어 2차 가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지난 2020년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피해자를 2차 가해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해당 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클리앙·FM코리아·이토렌트·디시인사이드 등 웹사이트 4곳을 압수수색했다. 이 같은 강제수사에도 해당 사이트에서는 "어차피 피해자 이름 안 써서 명예훼손 안 걸린다" 같은 비아냥이 계속 올라와 논란이 증폭했다.
재판에서도 피고인 등 관련자의 진술이나 증거 제출에 따른 2차 가해가 빈번히 발생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강간피해자보호법을 통해 상대방의 성적 이력과 과거 성적 행위에 관한 증거를 법적 증거로 쓸 수 없다고 규정한다. 재판 중 방어 논리로도 쓰는 것이 제한된다.
한국에서는 성폭력 범죄 특례법이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정확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재판 과정에서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한국의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성범죄 2차 피해를 야기하면 양형 가중요소로 판단하는 등 형벌을 강화하는 추세다. 판례에서도 "피해자가 2차 피해를 호소하며 엄벌을 탄원한 점 등을 고려했다"는 식의 표현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21년 서울서부지법에서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70대 남성 A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2020년 7월 산책하던 10대 여학생 손등에 입을 맞추는 등 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정식재판 없이 약식으로 기소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지만 A씨가 판결에 불복하며 정식재판이 진행됐다. A씨가 재판에서 "피해자가 유도한 것"이라 주장하자 재판부는 "범행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건 2차 가해"라며 벌금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성범죄 처벌·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지난 2020년 충남에서는 동네 주민에게 추행당한 60대 여성이 2차 피해에 시달렸지만 재판부는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감형해 가해자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장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2차 가해가 불러오는 파장을 최소화하고 또 다른 범죄를 막으려면 수사 초기부터 신상정보 등을 보호가 필요한 경우 보호의무를 부여하고 위반 시 처벌을 고지하는 규정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2차 가해와 관련해 "궁지에 몰릴 경우 '상대가 잘못됐고 난 어쩔 수 없었다, 또는 정의롭다' 이런 걸 확인하기 위해서 반대급부적인 우월감을 보이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며 "일종의 보복심리도 반영된 것"이라 말했다.
immun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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