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과 쪽박 사이…FA도 골든타임이 있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지난 12일 오후 에스에스지(SSG) 랜더스는 보도자료를 냈다. 키움 히어로즈에서 사인 앤 트레이드로 에프에이(FA) 포수 이지영(38)을 영입했다는 내용이었다. 키움은 이지영과 2년 총액 4억원(연봉 3억5000만원·옵션 5000만원)에 계약을 마친 뒤, 에스에스지에서 현금 2억5000만원과 2025년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을 받고 이지영을 보냈다. 키움과 이지영의 계약은 에스에스지에 그대로 승계됐다.
이지영은 에프에이 B등급이었는데 보상 선수 문제로 타 팀 이적이 어려웠다. 이지영을 영입하고자 하는 팀은 직전 연도 연봉의 100%(5억원)와 보호 선수 25명 외 선수 1명 혹은 직전 연도 연봉의 200%(10억원)를 키움에 보상해야만 했다. 이와 같은 난제를 푼 것이 구단끼리 미리 교감하는 ‘사인 앤 트레이드’였다.
이지영의 이적에 유탄을 맞은 이는 에스에스지에서 에프에이 선언을 한 김민식(34)이었다. 김민식과 에스에스지 협상은 교착 상태에 있었다. 액수 차이가 많았다. 이지영 영입 전 협상의 주도권은 김민식이 쥔 모양새였다. 에스에스지에는 김민식 외에 즉시전력감 포수가 없다. 차세대 주전으로 평가 받는 조형우(21)와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한 박대온(28) 등은 아직 경험치가 부족하다. 타 팀의 제안이 없어도 김민식이 협상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던 배경이었다. 그러나 에스에스지가 이지영을 데려오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김민식은 2022시즌 팀의 와이어투와이어(개막부터 종료일까지 계속 1위를 유지하는 것) 우승에 기여한 뒤 5+1년 총액 25억원의 다년계약을 제시 받았지만 거부했었다. 그 해 비슷한 또래의 박동원(LG 트윈스·4년 65억원), 박세혁(NC 다이노스·4년 46억원)이 에프에이 대박을 터뜨리는 모습을 봤으니 에스에스지 제시액이 그의 눈높이에 맞을 리 없었다. 하지만 김민식은 예비 에프에이 신분이었던 2023시즌 동안 타율 0.218, 5홈런 34타점, 출루율 0.302로 2020년 이후 성적이 가장 안 좋았고, 에스에스지는 다년계약 제시 때보다 더 낮은 보장액을 제안했다. 김민식은 보상 선수를 내줄 필요가 없는 C등급 에프에이 선수지만 그를 원하는 타 구단은 없었다. 결국 김민식은 16일 오후 에스에스지와 2년 총액 5억원(연봉 4억원·옵션 1억원)에 계약했다.
김민식의 사례에서 보듯 계약도 타이밍이다. 적절한 때를 놓치면 주도권을 뺏겨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쉽다. 2014년 말 에스케이(SK) 와이번스 내야수 나주환(은퇴)이 그랬다. 나주환은 당시 비수도권 팀과 총액 30억원 가량의 에프에이 계약을 구두로 약속 받았다. 에스케이가 제시한 20억원 이하의 제시액이 눈에 찰 리 없었다. 하지만 해당 팀 감독이 갑자기 경질되며 계약은 없던 일이 됐고, 결국 나주환은 에스케이의 기존 제시액에서 절반 이상이나 깎인 1+1년 5억5000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나주환과 반대로 너무 일찍 타 구단과 계약을 했다가 손해를 본 이도 여럿 있다. 서건창(KIA)처럼 에프에이 선언을 늦췄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도 있다. 선수든 대리인(에이전트)이든 시장 판도를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하게 되는 게 스토브리그다. 물론 특A급 선수들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블러핑(허풍, 허세)이 난무한 에프에이 시장에서 협상 전략 부재는 ‘통곡의 벽’이 된다. 협상 테이블에서 유연하지 못하면 더욱 벼랑 끝에 몰린다. 올 겨울 스토브리그는 샐러리캡에 2차 드래프트까지 있던 터라 셈법이 더욱 복잡했다. 스프링캠프 개시(2월1일)까지 남은 시간은 15일 남짓. 아직 에프에이시장에는 미계약자가 남아 있지만 시간은 선수 편이 아니다. ‘계약’이라고 쓰고 ‘투항’이라고 읽힐 시간이 다가온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80대 아버지·50대 아들 숨진 채 발견…15년 치매 간병
- 금융자산가에 서민용 절세상품 가입 허용…또 파격 감세
- 서울 양천·구로 일대 3만여 세대 온수·난방 끊겨
- 눈비 속 영정 닦으며 용산까지…“이태원 특별법 신속히 공포해주길”
- 시스템 공천 강조하더니…한동훈식 깜짝 ‘전략공천’
- 눈·비 그치면 ‘북극 한파’…다음주 영하 14도까지 내려갈 듯
- “엄마 차 7개월 몰래 몰다가…” 400만 마음 흔든 ‘유쾌한 애도’
- [인터뷰] ‘신림동 강간살인’ 피해자 오빠의 호소…“CCTV론 부족”
- 3월, 한반도 ‘위기의 봄’ 온다
- 72살 ‘무사고’ 택시기사님, 1명 살리고 하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