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파키스탄 괴물' 무라드, 대한항공 통합 4연패 이끌까
코트 안에선 매섭게 공을 내리치는 아포짓 스파이커가 취재진 앞에선 수줍음 많은 소년으로 변했다.
프로배구 남자부 2위 대한항공이 1위 우리카드와 승점 동률을 이뤘다. 비록 우리카드가 대한항공보다 1경기를 덜 치른 데다, 승리 수에서도 밀려 순위 변동은 없지만 올스타전 휴식기를 앞두고 기분 좋은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대한항공이 승점을 쌓아 올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를 하고 있는 선수가 있다. 바로 파키스탄 출신 아포짓 스파이커 무라드 칸(등록명 무라드·205cm)이다.
무라드는 지난 1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4라운드 삼성화재와 홈 경기에서 처음 스타팅 멤버로 코트에 섰다. 선두 우리카드가 4연패에 빠진 상황에서 2위와 3위의 격돌이라 더욱 중요성이 큰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 선발로 중용된 것이다.
무라드는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이날 경기에서 홀로 23점을 뽑아내며 팀의 세트 스코어 3 대 0 완승을 이끌었다. 특히 2세트와 3세트에선 모두 역전 포인트를 기록해 내며 계양체육관을 찾은 홈팬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무라드는 경기가 끝난 뒤 수훈 선수 자격으로 취재진 앞에 앉았다. 경기장 안에서 보여줬던 매서움은 온데간데 없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쑥스러워 하며 답변하기 일쑤였다.
무라드는 이날 경기에 대해 "1세트가 시작되자마자 제 범실로 경기가 잘 안 풀렸다"고 돌이켰다. 실제로 1세트에서 무라드의 범실은 4개로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수치였다.
이에 틸리카이넨 감독은 무라드를 벤치로 불러들이고 임동혁을 코트에 세웠다. 무라드는 "임동혁이 잘해줘서 1세트를 가져올 수 있었다"며 "경기에서 이겨서 좋다"고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매 경기를 다 잘할 수는 없다. 벤치에 있다가 다시 들어갔을 때 잘하려고 생각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경기를 총평했다.
하지만 2세트부턴 무라드의 원맨쇼가 시작됐다. 임동혁을 대신해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간 무라드는 2세트에 5점을 기록했다. 무라드가 올린 득점들은 모두 팀이 필요할 때 터진 점수들이어서 더 눈에 띄었다. 3세트에선 홀로 13점을 만들어 내며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득점을 내기도 했다.
사실 무라드는 대한항공의 외국인 선수 링컨 윌리엄스(등록명 링컨·200cm)가 부상 재활 중이라 급하게 수혈된 '일시 교체 선수'다. 국적은 파키스탄. 무라드는 V-리그에서 뛰는 1호 파키스탄 선수가 됐다.
무라드는 이전 소속팀인 불가리아 리그 네프토치믹 부르가스에서 주전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했다. 공격 지표 대부분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국제 대회에서 한국 배구 대표팀을 상대한 경험도 있다. 무라드는 2018년부터 파키스탄의 연령별 국가대표를 거쳤는데, 특히 작년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팀과 경기에 출전해 높은 결정력을 뽐낸 바 있다.
무라드는 "크게 기억이 나는 건 없다"며 "파키스탄이 이겼던 것만 기억난다"고 말했다. V-리그에 대해선 "적응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며 "한국 배구는 토스가 빨랐다. 또 블로킹에서도 애를 먹었다"고 평가했다.
한국 생활은 어떨까. 무라드는 "훈련과 일상 생활을 함께 하기 때문에 대한항공 선수단이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전했다. 이어 "모두가 잘 챙겨준다"며 "모두와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한국에서 더 긴 커리어를 이어 나가고 싶다는 마음도 드러냈다. 무라드는 "당연히 내년에도 한국에서 머무르고 싶다"며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어 "한국에서 더 뛸 수 있다면 기술적으로 많은 준비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12일 현대캐피탈전 52득점 이후 바로 다음 경기에서도 팀의 승리를 견인한 무라드. 사상 첫 통합 4연패를 노리는 대한항공의 목표 달성에 큰 힘을 보탤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계양=CBS노컷뉴스 이우섭 기자 woosubwaysandwiche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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