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이 예술과 만났을 때

양재필 매경비즈 온라인기자(sohnsb@naver.com) 2024. 1. 17. 10: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 기업가 정신 담은 전시회
참신한 스토리와 탄탄한 구성력 호평
[인터뷰] 김범상 글린트(GLINT) 대표
회사만들기
서울시 중구 남창동에 위치한 피크닉(piknic)에서 ‘회사 만들기: Entrepreneurship’ 전시가 10월 말부터 열리고 있다. 전시 주제도 생소하거니와 국내 최초로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스토리 라인을 구성한 전시는 1층 시작지점부터 예사롭지 않은 경험과 감동을 선사한다.

이 전시를 통해 누구나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기업가 정신을 발견하고, 내재되어 있는 열정과 의지력을 되살려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피크닉을 운영하는 전시기획자 김범상 글린트 대표는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기업가 정신을 인문학적 예술로 자연스럽게 승화시켰다. 서울 회현동 고즈넉한 자락에 자리 잡은 피크닉을 찾았다.

Q1.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한 전시는 처음이다.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

아산나눔재단(이사장 장석환)은 기업가 정신에 대해 교육, 경진대회등 지속적으로 많은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기업가 정신에 대해 전파할 수 있는 전시를 열어보고 싶다고 했다. 평소에 관심 있는 주제였고,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이기도 해서 제안을 받아 들였다.

그동안 훌륭한 예술가뿐만 아니라 훌륭한 기업인 역시 존경했었다. 스티브 잡스, 잭 웰치, 이본 쉬나드, 정주영, 이건희, 혼다 소이치로, 이나모리 가즈오 등 기업가들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기업가와 예술가는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같지만, 위대한 사업이나 위대한 예술은 모두 독창성과 노력, 그리고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상의 효율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기업가의 열정에 공감하고 관객 스스로의 도전 의지가 솟아나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이라는 주제를 전시장 안으로 가져오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모두에게 너무나 낯설고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전시장을 둘러보니, 흔한 ‘리더십개론’ 서적처럼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참여한 많은 작가의 노력이 더해져 쉽고 좋은 전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Q2. 공간은 어떻게 꾸며졌으며, 감상 포인트는 무엇인가

지상 1층부터 4층까지 차례로 ▲프롤로그: 모험하다, 시도하다 ▲시작은 나를 이해하는 일로부터 ▲해답은 질문 안에 있다 ▲협력하고 소통하라 ▲영웅의 여정 ▲실패하라 ▲기업과 사회 ▲에필로그: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등 오로지 기업가 정신을 이루는 핵심 키워드와 테마만으로 공간이 구성됐다.

전시가 시작되는 1층 공간에서는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Henry Shackleton)의 남극 탐험기를 담은 사진 작품으로 스토리 라인을 잡았다. 섀클턴은 신개척지인 남극 탐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과 희생을 아끼지 않은 리더이자, 극한의 상황에서도 탐험대원들을 이끌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가 보여준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현재에도 여전히 유용한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섀클턴에 대한 사진이나 동영상 자료들은 영국의 탐험가들의 기록을 소장하고 있는 영국 왕립지리학회 보존자료를 취합해 재구성했다.

전시회장 입구 새클턴의 남극 탐험대원 모집공고
2층에서는 기업가 정신의 개념을 이해하는 여정이 펼쳐진다. 인포그래픽은 직장을 선택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미래에는 어떤 직업이 떠오르거나 사라지는지 등 현대인들이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것을 조사해서 담아냈다. 이어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며 ‘질문하기’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챗 GPT’를 활용한 프로그램 체험이 가능하다.
인공지능 작품 ‘옵티컬 미, 포텐셜 미’. 9개 질문에 답하면 본인 성향을 확인할 수 있는 수치들이 나온다.
3층에서는 ‘실패’를 담은 사진 작품을 보여준다. 실수에서 영감을 얻고 실패해도 격려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 주요 스타트업 대표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기업이 추구해야 할 사회적 책임·사회적 자산으로서의 기업의 면모를 전달한다.
스타트업 대표들의 인터뷰 영상(왼쪽)과 유수 기업들의 시초 모습을 전시한 루프트탑 라운지 모습(오른쪽)
마지막 루프탑 라운지에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라는 주제로 공간을 채웠다. 유명 기업 맥도날드, 구글, 스타벅스 등의 1호점과 정주영 현대 회장의 사진을 전시해 세계적인 기업 역시 그 시작은 평범한 우리들의 시작과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아울러 전시 기간 피크닉 별관 4층 ‘겨울 책방’에서 김봉진 전 배달의민족 의장이 추천하는 도서를 수 십여권 소개하고 있다. 기업가적 태도와 주체적인 삶을 주제로 한 다양한 서적들을 만나볼 수 있다.

당장 매출 확장도 중요하고 당장 닥친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이 기업가의 생리지만, 어느 순간 내가 왜 이 일을 하며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하며 성장한다. 그래서 전시 작품들을 보면서 처음에 일을 시작했던 순간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반추하는 기회로 활용하면 유익할 것이다.

“이번 생은 망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같이 지금 우리 시대에는 삶을 냉소하는 말이 유행처럼 난무하고, 성취의 기쁨을 체험하지 못한 채 작은 권리에만 집착하며, 워라벨만 지향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만히 있으면 이 세상은 절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세상은 자신의 일에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전시를 관람하면 좋을 것 같다.

Q3.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전시를 찾고 있다. 오프닝날에 기업가 정신을 전공으로 하는 경영학과 교수님들이 방문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많은 교수님들이 오셔서 자신이 오랫동안 공부하고 연구한 부분이 이런 형태로 소개되고 있는 것에 엄청 좋아하셨다. 가족 및 커플 단위로도 많이 오지만, 창업을 꿈꾸거나 미래의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이나 직장인이 와서 관람하기에도 좋은 전시라고 생각한다. 관람객들이 와서 느끼는 반응을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단순하게 시작한 관람이 스토리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마음을 움직이고 기업가정신이 말하는 도전과 의지력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기업가 정신에 관심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최근 전시나 팝업을 즐겨 찾는 젊은 세대까지 이번 전시를 즐기고, 기업가 정신을 보다 심도 있게 경험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추천한 도서들을 모아 놓은 ‘기업가의 서재’ 코너
Q4. 피크닉만의 특별한 전시 기획 방법론이 있는가

특별히 없다. 평소 관심사나 좋아하는 주제나 작가 중에 여러 조건이 맞고, 시대적 관심과도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 중에 선택해서 하는 편이다.

전시의 구성이나 구성의 단계들이 만드는 드라마를 중요시한다. 많은 콘텍스트가 필요한 작품은 조금 친절하게 배경을 설명하려고 한다. 어떤 조형적인 예술적인 취향보다 조금이라도 삶을 변화시키고 도움이 되는 전시였으면 한다.

Q5. 앞으로의 계획은

공간을 조금 더 확장하고 싶다. 기존에 해오던 ‘소설극장’이나‘무성영화 극장’도 조금 더 공연장 같은데서 하고 싶고 좀 더 큰 설치 작품들도 전시하고 싶다.

이제 5년을 지나 6년차로 접어드는데, 그 동안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런 관심을 어떻게 커뮤니티화해서 더 좋은 콘텐츠와 경험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독특하고 독보적인 한국의 문화예술공간로 만들고 싶다.

[전시 공간 소개]

피크닉은 전시 기획사 글린트(GLINT)가 운영하는 문화공간이다. 회현동에 1970년대 지어진 제약회사 건물을 현대적인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이곳에는 전시 외에도 소품 편집샵 카페, 미쉐린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루프탑에는 정영선 선생의 정원 전시 작품이 그대로 있어 남산타워가 보이는 풍경과 어우러진다.

*회사 만들기: Entrepreneurship 전시는 월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 2024년 2월 18일까지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운영된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